조선 후기에 창제된 당악정재로, 군왕의 높은 덕과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태평성대를 송축하는 춤
제수창은 조선 후기 1829년(기축, 순조 29) 6월,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부왕인 순조의 탄신 40주년을 경축하는 진찬(進饌)에 송축하는 창사(唱詞)를 지어 올리며 처음 추어졌다. 이후 제수창의 연행 기록은 많지 않으나 1892년(임진, 고종 29)과1901년(신축, 고종 광무 5) 고종황제 탄신 50주년을 경축하는 만수성절(萬壽聖節)의 진연(進宴), 1902년(임인, 고종 광무 6)의 진연까지 궁중 잔치에 몇 차례 연행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연행되지 않았고, 현대에는 1981년 국립국악원에서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의 안무로 재현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무동정재(舞童呈才)로는 공연되지 않고 있다.
○내용 군왕의 높은 덕(德)과 나라의 융성이 영원하기를 송축하는 창사를 부르며 추는 춤이다.
○구성
제수창의 무용수는 죽간자(竹竿子) 두 명과 족자(簇子) 한 명, 선모(仙母/中舞) 한 명, 좌무(左舞) 네 명, 우무(右舞) 네 명, 황개(黃蓋) 한 명 등 총 열세 명으로 구성된다. 앞줄에 족자 한 명과 죽간자 두 명이 늘어서고 그 뒤에 선모를 중심으로 협무 네 명이 사방에 선다. 황개는 선모 뒤를 따르며 다른 협무 네 명이 뒤에 늘어서는 독특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춤의 구성은 전체를 인도하는 죽간자의 진구호(進口號)로 시작하여 퇴구호(退口號)로 끝이 난다. 춤의 절차는 시대별로 큰 변화가 없으며, 대체로 좌우 협무(挾舞) 여덟 명이 남북 2열을 만들고, 다시 줄을 바꾸어 가며 선모와 각각 마주 보거나 등대고 춤을 춘다. 동서 2열을 만들어 마주 보고 춤추다가 원으로 돌며 춤추다가 맨 처음 위치로 돌아오면 끝이 난다. 춤사위 용어는 별도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제수창 창사는 1829년(순조 29) 순조의 탄신 40세 및 즉위 30년을 경축하기 위해 효명세자가 지어 올렸다. 임금의 높은 덕(德)과 만수무강을 송축하는 죽간자 진구호를 시작으로, 선모 치어(仙母致語), 협무의 「제수창사」ㆍ「천자만년사」에 이어 마지막으로 태평성대가 대대손손 영원하기를 축원하는 죽간자 퇴구호를 하면 춤이 끝난다. 한문시(漢文詩)로 된 창사는 조선말까지 큰 변화 없이 전승되었으나 때로는 협무 창사가 생략되거나, 무동정재에서 죽간자 구호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었다. 족자에는 선모 치어(致語)가 기록되어 있다.
[죽간자 구호]
帝德協和, 方見河淸之祥.
제덕협화, 방견하청지상.
聖壽無疆, 普切山斗之頌.
성수무강, 보절산두지송.
敢冒宸顔, 庸陳口號.
감모신안, 용진구호.
[죽간자 구호]
우리 임금님 덕이 만방을 화목하게 하셨으니
이제 황하(黃河) 물이 맑아지는 상서를 보게 되고
성수(聖壽)가 한이 없으시니
태산북두처럼 송축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여
감히 용안을 뵙고 구호(口號)를 올립니다.
[선모 치어]
帝壽昌, 賀聖明也.
제수창, 하성명야.
洪惟我陛下,
홍유아폐하
德耀寰表, 如天之統物,
덕요환표, 여천지통물
如地之載物.
여지지재물
乃至於壽域春臺,
내지어수역춘대
金膏玉燭,
금고옥촉
以萬壽無疆,
이만수무강
歌之頌禱也
가지송도야.
[선모 치어]
제수창은 성명(聖明, 여기서는 명나라 황제)께 올리는 하례(賀禮)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폐하께서는, 덕이 온 누리에 찬란하여
하늘이 만물을 거느리는 것 같고 땅이 만물을 싣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이에 사람마다 장수하는 태평성대가 되었으니,
금고(金膏, 신선이 마시는 약)와 옥촉(玉燭, 신선이 사는 세상을 밝히는 촛불)으로
만수무강을 비옵고, 노래하여 송축하나이다.
[전대 창사](제1대)
惟邦籙之無疆兮, 慶百世而綿綿.
유방록지무강혜, 경백세이면면.
傳子及孫兮, 彌于憶千.
전자급손혜, 미우억천.
彰聖德之孔明兮, 統萬物而象天
.
창성덕지공명혜, 통만물이상천.
帝膺壽以昌兮, 景福圓全.
제응수이창혜, 경복원전.
俾延吉祥兮, 其瑧如川.
비연길상혜, 기진여천.
臣拜稽首兮, 吾君萬年.
신배계수혜, 오군만년.
[전대 창사](제1대)
앞으로 나라가 누릴 좋은 운수 한이 없어
백세(百世)를 이어지고 또 이어질 것을 경하하오니
자자손손 전해져
억만년에 이르기를 비옵나이다.
거룩한 덕(德) 밝디 밝음을 더욱 드러내시고
만물을 거느리시며 하늘을 본받으시매,
상제께서 수(壽)를 내리시고 창성하게 하시니,
큰 복이 원만하고 온전하나이다.
길하고 상서로운 일 이어지게 해 주시니
그런 일들이 냇물처럼 모여 드나이다.
신(臣)이 머리 조아려 절하노니,
우리 임금님 만년 수를 누리시기를
[각대 병창사](전원창사)
天子萬年兮, 介爾昭明.
천자만년혜, 개이소명.
昭明有融兮, 寰海永淸.
소명유융혜, 환해영청.
嘉樂吉慶兮, 頌騰山聲
가락길경혜, 송등산성.
子孫千億兮, 景福太平.
자손천억혜, 경복태평.
[각대 병창사](전원 창사)
천자가 만년을 누리시매,
그 덕을 더욱 밝게 가지시리라.
밝고 또 더욱 밝아
사해(四海)가 영원히 맑도다.
큰 경사 즐기시매
칭송하는 소리가 산을 울리나이다.
자손이 천억이 될지니
큰 복에 태평을 누리시리이다.
[죽간자 구호]
奏九曲而告成, 祝萬歲而有永.
주구곡이고성, 축만세이유영.
幸値昇平之會, 用伸懽慶之悃.
행치승평지회, 용신환경지곤.
拜辭華筵, 式宴譽處.
배사화연, 식연예처.
[죽간자 구호]
모든 곡 연주해 음악이 끝났음을 아뢰고
영원히 만세를 누리시기를 비옵니다.
다행히 태평성대의 잔치를 맞아
기뻐 축하하는 정성을 폈나이다.
연석(筵席)에 절 올리고 물러나니
편안히 잔치를 즐기소서.
제수창의 복식은 별도로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반적인 여령 복식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여령은 화관(花冠)을 쓰고, 초록단의(草綠丹衣)ㆍ황초단삼(黃綃單衫), 안에는 남색 치마[남색상(藍色裳)]에 겉은 홍색 치마[홍초상(紅綃裳)]를 입고,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 오채한삼(五彩汗衫)에 초록혜(草綠鞋)를 신었다.
한편, 1901년(고종 광무 5, 신축) 이후에는 여령의 단삼이 녹색으로 바뀌는 변화가 있었고, 『(신축)진연의궤』에는 녹초단삼(綠綃單衫)으로 기록되어 있으나,〈신축진연도병〉에는 제수창을 연행하는 여령이 여전히 황초단삼을 착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무동은 1902년(임인)에 화관을 쓰고 홍화주의(紅禾紬衣)ㆍ홍화주상(紅禾紬裳)ㆍ백단의(白單衣)에 홍남야대(紅藍也帶)를 두른 것으로 의궤 복식도에 기록되었으나 〈임인진연도병(壬寅進宴圖屛)〉(1902)에는 족자와 죽간자, 후대인(後隊人)이 다른 색상의 복식을 착용하고 있어, 연행 상황에 따라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제수창에는 죽간자와 족자(簇子), 황개(黃蓋) 등 당악정재에 사용되는 의물이 등장한다. 족자(簇子)에는 제수창 창사의 일부가 적혀있으며 황개는 햇빛을 가리기 위한 일종의 차양으로, 황색으로 만든 개(盖)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춤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여령 정재15)에서는 선모(仙母 또는 왕모), 무동정재에서는 중무(中舞)라고 표기하는데, 제수창에서는 무동정재에도 중무와 선모를 혼용해서 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제수창과 같은 시기에 창작된 〈장생보연지무〉ㆍ 〈연백복지무〉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연백복지무〉 무동 복식조에는 ‘선모와 죽간자’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기축) 진찬의궤』 『(임진) 진찬의궤』 『(신축) 진찬의궤』 『(임인) 진연의궤』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집: 시용무보, 정재무도홀기』,국립국악원, 1980. 서인화ㆍ박정혜ㆍ주디반자일 편저,『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35집: 조선시대진연진찬진하 병풍』, 국립국악원, 2000. 정신문화연구원, 『정재무도홀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남후선ㆍ김순영,「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복식에 관한 연구」,『한국 의류산업학회지』 15/6, 2013.
심숙경(沈淑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