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에서 유입되었거나, 그 형식을 빌려 창작된 중국 계열의 궁중춤
당악정재는 고려시대에 처음 중국 송나라로부터 유입되었다. 통일신라 이후 당나라 음악이 수용되면서 우리 것과 구별하기 위해 우리 음악을 향악, 중국 음악을 당악, 중국 악기는 당악기, 중국에 뿌리를 둔 춤은 당악정재라고 불리게 되었다. 문종(文宗, 1019~1083, 재위 1046~1083) 때에 당악정재가 연행된 최초의 기록이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에 전한다. ‘문종 27년(1073) 2월에 교방(敎坊) 여제자 진경 등 열세 명이 연등회에 〈답사행가무〉를 쓸 것을 아뢰어 왕이 허락하였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팔관회에서 교방 여제자 초영이 새로 전해 온 〈포구락〉과 〈구장기별기〉를 아뢰었다.’ 또 문종 31년(1077) 2월에는 연등회에서 교방 여제자 초영이 〈왕모대가무〉를 왕에게 올렸다. 쉰다섯 명이 추는 〈왕모대가무〉는 ‘군왕만세(君王萬世)’ 또는 ‘천하태평(天下太平)’이라는 글자를 만들며 추는 자무(字舞) 형식의 춤이었다. 『고려사』「악지」에는〈헌선도〉ㆍ〈수연장〉ㆍ〈오양선〉ㆍ〈포구락〉ㆍ〈연화대〉 무보(舞譜)가 수록되어 있다.
송나라 대곡(大曲)에 속하는 이들은 양국의 문화 교류가 활발했던 고려 문종과 송나라 신종 시기에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송나라 교방악사가 고려 왕조에 파견되거나 고려에서 사신과 함께 건너가 배우는 형식으로 교류가 이루어졌다. 당악정재는 연등회ㆍ팔관회 등의 국가 제전에서 산대잡희와 함께 연행되기도 하였고, 서긍(徐兢,?~?)의『선화봉사고려도경』에 의하면 중국 사신을 위로하기 위한 사신연(使臣宴)에서도 추어졌다.
조선초기에는 당악정재의 양식을 도입한 새로운 당악정재가 창작되었다. 〈금척(몽금척)〉ㆍ〈수보록〉ㆍ〈근천정〉ㆍ〈수명명〉ㆍ〈하황은〉ㆍ〈하성명〉ㆍ〈성택〉 등 일곱 종으로 대부분 조선 개국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외에 고려시기에 유입된 〈곡파〉ㆍ〈육화대〉가 다시 재현되었으며, 춤의 절차가 『악학궤범(樂學軌範)』(1493) 권 4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후기 순조 대는 궁중무용의 황금기를 이룬 시기로, 〈장생보연지무〉ㆍ〈연백복지무〉ㆍ〈제수창〉ㆍ〈최화무〉 등 네 종의 당악정재가 창작되었다. 이들은 1829년(순조 29)에 순조의 탄신 40주년을 경축하는 진찬(進饌)을 위해 만들어진 춤으로,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송축하는 창사를 지었다. 고려시대부터 전승된 당악정재는 18세기 김홍도(金弘道, 1745~?)의 〈평안감사환영도〉와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의 『교방가요(敎坊歌謠)』(1865)등 여러 자료를 통해 궁중 연향 뿐 아니라 전국의 교방에서도 폭넓게 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1923년 3월 25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마지막 황제 순종(1874~1926)의 오십 세 경축 만수성절(萬壽聖節)에 〈포구락〉과 〈장생보연지무〉ㆍ〈연백복지무〉가 추어졌다. 1931년 조선총독부에서 촬영한 《조선무악》에는 〈포구락〉과 〈장생보연지무〉 외에 향악정재 몇 종이 전해진다. 대부분의 당악정재는 1980년대를 전후로 국립국악원의 김천흥(金千興, 1909~2007)28)에 의해 재현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①고려 당악정재: 〈헌선도〉는 정월 15일 원소절(元宵節)에 곤륜산에 기거하며 불로장생을 관장하는 왕모〔西王母〕가 내려와 선계의 복숭아를 바치며 장수를 축원하는 춤이다. 왕모와 협무 2인이 등장하는 비교적 간단한 구성이다. 〈수연장〉도 군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내용으로 16명이 4대(隊)를 이루어 춤추며, 조선시대에는 8명의 무용수로 변화하였다. 〈오양선〉은 중국 광주지역에 전해지는 고사(古事)에서 유래된 것으로, 『태평환우기』에 의하면 “고고(高固)가 초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다섯 신선이 오색 양(羊)을 타고 내려와 효성이 지극한 효자에게 한 줄기에 여섯 이삭이 달린 육수거(六穗秬)를 주었다’고 전한다. 다섯 신선을 의미하는 5명이 일렬ㆍ 사방ㆍ 회무 등의 구성을 이루며 춤을 춘다. 〈포구락〉은 두 편으로 나뉘어 공(채구)을 던지며 즐기는 일종의 유희성 궁중무용이다. 송나라 심괄(沈括, 1031~1095)의『몽계필담』에는 “해주 선비 이신언이 꿈에 본 수궁(水宫)에서 궁녀들이 한 포구 유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연화대〉는 두 동녀가 연꽃 속에 숨어있다가 나와서 추는 아묘한 춤이다. 본래 서역 지역 석국(石國, 현 타슈켄트 일대)의 민속무용 〈자지무(柘枝舞)〉에서 유래되었다. 경쾌하고 빠른 수고(手鼓)의 장단에 맞춰 추던 〈자지무〉는 중국 당ㆍ송시대에 매우 성행하였고 고려에 그 일부가 다른 풍격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②조선 초기 창작된 당악정재: 〈금척〉 및 〈수보록〉은 태조 이성계가 천명(天命)으로 조선 개국함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근천정〉ㆍ〈수명명〉은 태종이, 〈하황은〉은 세종이 명나라 황제로부터 왕의 인준을 받아 만백성이 기뻐한다는 내용이며, 〈하성명〉은 명나라 황제가 등극한 이후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나 백성들이 기뻐한다는 내용의 춤이다. 〈성택〉은 중국 사신을 위로하는 사신연(使臣宴)에 추어졌으며 세종 때에 창제되었다. 이 시기에 창작된 당악정재는 조선 건국의 당위성과 왕조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③조선 후기 창작된 당악정재: 〈장생보연지무〉ㆍ〈연백복지무〉ㆍ〈제수창〉은 군왕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융성을 축원한 내용이며, 〈최화무〉는 아름다운 봄날에 피어난 꽃들을 찬미하는 내용의 춤이다.
당악정재에는 죽간자가 등장하여 춤의 시작과 끝에 송축하는 내용의 구호(口號)를 낭송한다. 『송사』 「악지」에 의하면 ‘치어는 치사와 같은 것으로 대체로 4ㆍ6 변려체(騈儷體)로 되어있으며 구호는 칠언사구의 한시일장(漢詩一章)’이라 하였다. 고려 당악정재에는 이를 혼용하여 구호치어라 하였으며 조선후기로 가면서 이러한 형식이 더욱 무너져 오늘날에는 선모 치어ㆍ협무 창사 등을 통칭하여 창사(唱詞)라 부르기도 한다. 송에서 유입된 당악정재는 작품 전체에서 창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특징이 있는데 조선 후기에는 가사가 일부 바뀌거나 상당수 생략되는 현상을 보인다.『전송사(全宋詞; 명나라 모진(毛晉) 외 여러 사람이 엮은 송나라의 문학서적』에는 죽간자 구호를 제외한 고려 당악정재 다섯 종의 창사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 시대 여기는 〈헌선도〉ㆍ〈수연장〉에서는 흑삼(黑衫)에 홍대(紅帶)를 착용했으며 〈오양선〉ㆍ〈포구락〉ㆍ〈연화대〉는 단장(丹粧)을 하였다.
조선 전기의 여기 복식은 연향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모든 예연(禮宴)에서 여기[염발기]는 단장(丹粧/단의)에 백말군(白襪裙)ㆍ보로(甫老/裳)를 입고 홍대(紅帶)를 두르며, 머리에 수화(首花)와 칠보잠(七寶簪)ㆍ금차(金釵)를 꽂고 단혜아(段鞋兒)를 신었다. 단, 나이 어린 여기[年少妓/피발기]는 여기의 머리장식 중에 금차를 빼고, 칠보 대요(臺腰)를 쓰고 자흑색 비단의 수사지(首沙只: 유소의 속칭)를 드리웠다.
또 곡연(曲宴), 무과전시(武科殿試), 관사(觀射), 관나(觀儺), 사신동궁연 이하 각 연향, 주봉배(晝奉杯), 유관(遊觀), 사악(賜樂), 예조후대왜연(禮曹厚待倭宴)에서는 여기가 흑장삼(黑長衫)ㆍ남저고리(藍赤古里)ㆍ백말군ㆍ홍대를 착용하고 머리에 칠보잠ㆍ금차를 꽂고 단혜아를 신는다. 나이 어린 여기는 금차를 빼고 칠보 대요와 수사지를 꽂고 남단대(藍段帶)를 두른다. 이외에 예조왜야인연(禮曺倭野人宴)에서는 여기가 상복(常服)을 착용한다. 상세 내용은 『악학궤범』권 2와 권9에 전한다.
○의물ㆍ무구
당악정재에는 대체로 죽간자(竹竿子)와 각종 형태의 의물이 등장한다.
당악정재의 일반적인 특징은 ①춤 전체를 인도하는 죽간자가 등장하여 구호(口號/구호치어)를 부르며 의물이 등장한다. ②반주음악은 당악을 당악기로 연주하며, ③순한문 가사의 치어(致語) 및 창사를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향ㆍ당악의 구분은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점차 없어지고 죽간자나 의물이 생략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는 순한문 가사의 창사를 부르는 향악정재가 다수 창제되었으며, 〈봉래의〉는 향악정재이나 죽간자와 의물이 등장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0호 학ㆍ연화대 합설무(1971년)
『송사(宋史)』「악지」에는 송나라 궁중 연악(燕樂) 중에 ‘여제자대무’와 ‘소아대무’가 각 10종목씩 있는데 여제자대무 세 번째에 〈포구락대(抛毬樂隊)〉가 있다.
『고려사』 『교방가요』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집: 시용무보, 정재무도홀기』,국립국악원, 1980. 정신문화연구원, 『정재무도홀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92. 차주환, 『고려당악의 연구』, 동화출판공사, 1983.
심숙경(沈淑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