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창작된 향악정재로, 궁중 연향에서 여섯 명의 무용수가 쌍쌍으로 노니는 봄 나비를 형상하며 추는 춤
박접무는 조선 후기 1828년 효명세자가 새로 지은 향악정재 중 하나이다. 채색 나비가 봄볕을 찾아 쌍쌍이 날아와 꽃을 스치며 노니는 모습을 묘사했다. 여섯 명의 무용수가 나비가 수놓인 녹색의상[녹라포(綠羅袍)]을 입고 마치 나비가 이리저리 짝을 지어서 날아다니듯 두 팔을 펼쳐 들고 맞춤을 춘다.
박접무는 순조(純祖) 28년(1828)에 효명세자가 예제(睿製; 세자가 지은 시나 악장)한 「박접(撲蝶)」을 토대로 완성된 춤이다. 채색 나비가 쌍쌍이 봄볕을 즐기며 노니는 모습이 마치 주렴(珠簾) 밖 미인(美人)들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내용을 비유로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나비들이 쌍을 이루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듯한 모습을 춤으로 표현하였다.
순조 『(무자)진작의궤(進爵儀軌)』(1828) 「악장」조의 〈박접〉 해설에 따르면, 중국 당(唐)나라 때 2월 15일은 나비를 잡는 날로 이를 박접회(撲蝶會) 혹은 화조일(花朝日)이라 불렀다. 나비를 잡는다는 것은 빨리 봄이 오기를 기원하는 풍속으로, 박접무는 봄날에 나비 놀이를 했던 화조박접회(花朝撲蝶會)라는 세시풍속을 본떠 만든 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국립국악원 디지털국악아카이브>
박접무는 1828년 6월 1일,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의 40세 생일을 축하하는 연경당(演慶堂) 잔치에서 초연되었으며, 차(茶)를 올릴 때 여섯 명의 어린 남자 무용수(무동)에 의해 추어졌다. 이후 박접무가 공연된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고종(高宗, 1852~1919, 재위1863~1907) 연간의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세 편의 박접무 무보가 전하고 있어서, 박접무가 고종대에 전승되었음이 확인된다. 우선 국립국악원 소장 『정재무도홀기』(1893)에는 여령(女伶: 여자 무용수) 여섯 명이 춤춘다고 되어 있다. 반면, 장서각 소장 『정재무도홀기』 중 약칭 「갑오외진연홀기(甲午外進宴笏記)」와 연대 미상의 「무동홀기(舞童笏記)」두 편에 무동의 박접무가 수록되어 있다. 즉, 박접무는 여령 또는 무동이 춘 정재로 전승되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의 박접무는 1981년 11월 9일 ‘심소 김천흥 무용생활 60년 기념: 궁중무용발표회’ (심무회 주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김천흥(金天興, 1909~2007)의 복원ㆍ재현으로 초연되었다. 이후 국립국악원 정기공연(1982. 10.13)에서 공연되면서, 무동과 여령이 추는 춤으로 지속 전승되고 있다.
박접무는 무용수 여섯 명으로 구성된다. 무용수는 여러 마리의 나비가 그려진 녹색포를 입고, 두 명 또는 네 명이 짝을 지어 날갯짓하며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동작을 연행한다. 봄날 꽃과 나비가 어우러진 주렴 밖의 아름다운 풍광을 마치 주렴 안에서 감상하고 있는 내부자적 시각으로 묘사한 악장 내용에 맞춰, 춤은 주렴 밖의 봄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나비가 쌍쌍으로 가볍게 꽃을 스치며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다.
박접무는 무용수들이 북쪽에 두 명, 남쪽에 두 명, 동쪽에 한 명, 서쪽에 한 명이 십(十)자 대형으로 나뉘어 선 자세로 춤을 시작한다. 무용수 전원이 한 원이 되어 돌면서 춤추고[회선이무(回旋而舞)], 남쪽과 북쪽의 무용수, 동쪽과 서쪽의 무용수가 대(隊)를 나누어 좌우 대칭의 형식으로 등을 보이고 춤을 추고[상배이무(相背而舞)], 마주 보고 춤을 추며[상대이무(相對而舞)], 처음 대형으로 돌아가고[환복초열이무(還復初列而舞)], 남· 북, 동ㆍ서의 무용수가 서로 대열을 바꾸고[환기대이무(換其隊而舞)],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구성이다. 박접무는 대칭과 자리바꿈, 회무, 향내(向內)ㆍ향외(向外) 등 다양한 춤 구성으로 봄날의 나비가 쌍쌍이 노니는 모습을 형상하도록 안무 되었다.
팔동작으로는 불수(拂袖: 소매를 뿌리다)ㆍ번수(飜袖: 소매를 날리다)ㆍ대수(擡袖: 소매를 들어 올리다)ㆍ염수(斂手: 손을 여미다)가 있다. 발동작은 진(進: 나가다)ㆍ퇴(退: 물러나다)ㆍ환전(歡轉: 기쁜 듯 돌다)ㆍ족도(足蹈: 걷다)가 있다.
효명세자(孝明世子)가 1828년 6월 1일 연경당 진작을 위해 예제한 노래이다. [창사] 彩蝶雙雙探春光, 花拂金翅撲. 채접쌍쌍탐춘광, 화불금시박. 隔珠簾美人, 一般花灼爍. 격주렴미인, 일반화작삭. <창사> 고운 나비 쌍쌍이 봄빛을 찾아 날자 꽃이 흔든 금빛 날개 팔락이게 하는데, 주렴 너머 미인은 꽃인 양 밝게 빛나는구나. - 원문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1』번역: 강명관 현재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는 박접무 창사로 “채접쌍쌍탐춘광” 만 노래하고 있다.
박접무 무동 복식은, 아광모(砑光帽)를 머리에 쓰고, 녹라화접포(綠羅花蝶袍: 녹색비단에 나비가 세겨진 포),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 백색에 흑색선이 둘러진 단의), 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 홍색에 남색선이 둘러진 치마), 주전대(珠鈿帶: 장식이 달린 허리띠)를 착용하고 무우리(無憂履)를 신는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는 박접무를 출 때, 여령은 남색치마를 입고 그 위에 홍초상을 허리에 두르고, 녹색비단에 나비가 수놓아진 녹라화접포를 입고, 홍색으로 된 가슴띠를 매고, 머리에 화관이 있는 큰머리를 쓰며, 오색한삼을 착용한다. 무동은 흰색 한삼을 사용하고 있다.
국립국악원,『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집: 시용무보, 정재무도홀기』, 국립국악원, 1980. 김천흥,『심소 김천흥 선생님의 우리춤 이야기』, 민속원, 2005. 김천흥,『정재무도홀기 창사보』, 민속원, 2002. 이의강ㆍ김은자ㆍ이재옥,『국역 순조무자진작의궤』, 보고사, 2006.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권2』, 민속원, 2005.
김혜영(金惠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