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부터 대한제국까지 궁중에서 청사자 황사자 탈을 쓰고 추는 춤
청사자(靑獅子)와 황사자(黃獅子)의 탈을 쓰고 궁중에서 춘 두 마리의 사자춤이다. 평안남도 성천지방의 사자춤이 1887년 궁중 연향에서 처음 추어진 후, 대한제국 시기까지 연행되었다. 여령이나 무동이 아닌 민간의 재인들이 출연했고, 4~6인 구성이다. 사자의 동작들을 흉내내며 몸을 흔들거나 얼굴로 땅을 두드리고, 이빨을 부딪히며 춤을 춘다. 궁중 나례에서 추어졌기 때문에 역귀(疫鬼; 돌림병을 퍼뜨리는 귀신)를 내쫓는 구나(驅儺; 궁 안의 역귀를 쫓는 의식)적 의미도 있었다.
궁중에서 추어진 사자무의 유래는 민간의 사자춤이다. 평안남도 성천(成川)지방의 잡극이었던 사자춤이 궁중에 유입되어 고종 24년 (정해(丁亥), 1887) 신정왕후의 팔순을 축하하는 진찬에서 처음 추어졌다. 민간에서 사자춤의 연원은 깊다. 가야의 가실왕(嘉實王)이 우륵에게 명하여 지은 열두 곡 가운데 여덟 번째 곡이 사자기(獅子伎)에 대한 것이었으며,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 중 <산예(狻猊)>는 사자 가면을 쓰고 추는 사자춤이다.
고려시대에도 나례에서 사자춤이 연행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지방에서 재인들이 사자춤을 추었다. 김홍도(金弘道, 1745-?)가 그린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의 〈낙성연도(落成宴圖)〉에 사자춤이 보인다.
궁중에서 사자무를 출 때도 여령이나 무동이 추지 않고 재인(才人)들을 불러들여 추게 했다. 고종 『(신축)진연의궤』(1901) 권3 상전(賞典)에 ‘사자무 재인(獅子舞才人) 최복동 등 4명에게 무명 2필씩 지급한다(獅子舞才人 崔福東等四名 各木二疋.)’는 내용이 남아있다. 청사자(靑獅子)와 황사자(黃獅子)가 등장하는 사자무는 정해진찬(1887), 임진진찬(1892), 신축5월진찬(1901), 신축7월진연(1901), 임인4월진연(1902), 임인11월진연(1902)에서도 연희되었다. 1887년에 이양석(李良錫), 1892년에 강지홍(康之弘), 1901년과 1902년 연향에 최복동(崔福東) 등이 참가했는데, 이들은 모두 재인이었다. 다만 정재악장이나 의주(儀註)에 사자무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그 양상을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근대 이후에는 사자무가 연행되지 않다가 1992년에 ‘심소 김천흥선생 무악생활 70주년 기념공연’에서 궁중무의 형태로 무대에 올랐다.
사자무는 액을 쫓는 구나(驅儺)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춤은 청사자와 황사자의 탈속에 각각 2인이 들어가는데, 머리 쪽이 앞사자, 꼬리 쪽이 뒷사자 역을 맡는다. 대개 4인이 출연했으나, 1892년 임진 진찬에서 재인 6인이 포상을 받은 것으로 보아 사자 한 마리에 3인이 사자탈을 쓰고 춤추는 사자무를 추었을 가능성도 있다.
춤의 전개는 국립국악원 소장 『(계사)정재무도홀기』에서 볼 수 있다.
樂奏萬方寜之曲 靈山會上(악주만방녕지곡 영산회상)
만방령지곡을 영산회상으로 연주하면
獅子一雙隨樂節搖身足蹈(사자일쌍수악절요신족도)
사자 한쌍이 악절에 따라 몸을 흔들며 걸어나온다.
而進分東西北向而俛伏(이진분동서북향이면복)
나아가 동쪽과 서쪽에 나누어 서고 북향해서 엎드린다.
擧首以口啄地(거수이구탁지)
머리를 들어 입으로 땅을 두드린다.
矔目翻○?起 (목번○?기)
눈을 부릅떴다가 번드쳐 일어난다.
而隨樂節揮尾足蹈(이수악절휘미족도)
악절에 따라 꼬리를 흔들며 걷고,
顧視左右(고시좌우)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본다
隨樂節開口鼓齒(수악절개구고치)
악절에 따라 입을 벌려 이빨을 딱딱 치고
進退旋轉懽舞(진퇴선전환무)
앞뒤로 크게 돌면서 즐겁게 춤춘다.
而退樂止(이퇴악지)
퇴장하면 악이 멈춘다.
청사자와 황사자 한 쌍이 장단에 맞춰 몸을 흔들며 등장하면, 동쪽과 서쪽에 나누어 섰다가 연향의 주인공을 향하여 북향해서 엎드린다. 곧 머리를 들어 춤추며 입으로 땅을 두드리다가, 눈을 부릅떴다가 날듯이 일어난다. 장단에 따라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걷거나, 사자탈 얼굴을 좌우를 움직여 두리번거리듯이 춤춘다. 또 장단에 따라 입을 벌려 이빨을 딱딱 치기도 한다.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갔다 하며 무대를 크게 돌면서 즐겁게 춤추다가 퇴장하면 악이 멈춘다. 이 춤 중에서 요신족도(搖身足蹈), 탁지(啄地), 관목(矔目), 휘미(揮尾), 개구고치(開口鼓齒)는 사자의 동작들을 흉내 내는 춤동작이다.
악곡명은 〈만방령지곡(萬方寜之曲)〉이고, 실제 음악은 〈영산회상(靈山會相)〉을 연주한다.
청사자 탈과 황사자 탈을 각각 2인이 뒤집어쓴다.
『신축진연의궤』 권3, 1901. 『임인진연의궤』 권3, 1902. 『임진진찬의궤』 권3, 1892. 『정해진찬의궤』 권3, 1887. 조경아, 「조선 후기 의궤를 통해 본 정재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논문, 2009.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