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전해온 당악정재의 하나로, 백성과 함께 평화롭게 연회를 즐기는 풍경을 노래하며 두 사람이 추는 춤
송나라 대곡(大曲) 중의 하나인 석노교(惜奴嬌) 곡파를 부르며 추는 춤으로, 『악학궤범(樂學軌範)』(1493) 권4에 전하고 있다. 여러 악곡들이 차례로 연주되는 대곡의 형식에 맞춰 앞으로 갔다가 다시 뒤로 움직이는 무진(舞進)ㆍ무퇴(舞退)를 반복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곡파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당악정재이다. 중국 송나라 대곡 중 석노교 곡파에 추는 춤으로 오랫동안 추어지지 않아 거의 단절되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가 조선 세종 7년(1425)에 복원되었다. 『세종실록』29권에 의하면, “임금이 악차(幄次)에 거둥하여 곡파무(曲破舞)로 정재(呈才)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이 무악(舞樂)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기억하는 자가 없었는데, 두 기생이 그 악곡을 잊지 않았으므로 특히 상을 준 것이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당시의 춤과 노래가 『악학궤범』에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는 1970년대와 1980년대 국립국악원 주도하에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의 재현 안무로 무대 예술화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곡파의 내용은 음력 정월 대보름을 맞아 백성들과 함께 즐거운 놀이를 하며 평화로운 가운데 연회를 즐기는 풍경을 노래하는 것이다. 죽간자 두 명이 두 명의 무용수를 인도하여 들어와 죽간자 두 명은 북쪽에 서고, 무용수 두 명은 그 뒤에 좌우로 나란히 선다. 곡파의 춤은 일렬대형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무진, 뒤로 물러나는 무퇴를 반복하여 추는 구조로 진행된다. 무진ㆍ무퇴와 무진ㆍ상대ㆍ상배ㆍ무퇴, 무진ㆍ상대ㆍ상배ㆍ창사ㆍ무퇴 등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춤사위는 외수ㆍ내수ㆍ염수이다. 구호는 〈포구락〉의 진구호(進口號)와 퇴구호(退口號)를 그대로 가져와 썼다. 음악은 여러 악곡들이 차례로 연주되는 대곡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곡파의 춤 진행은 ① 죽간자의 진구호 후 무용수 두 명이 염수족도하며 무진ㆍ무퇴한다. ② 석노교에 무용수 두 명이 무진하여 상대ㆍ상배하고 물러나 바깥쪽 소매를 들고 미전사(尾前詞)를 부르고, 안쪽 소매를 들고 미후사(尾後詞)를 부르고 무퇴한다. ③ 전편(攧遍)에 무용수 두 명이 무진하여 상대ㆍ상배하고 무퇴한다. ④ 입파(入破)에 무용수 두 명이 무진하여 상대ㆍ상배하고 동과 서의 위치를 바꾸어 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⑤ 허최(虛催)ㆍ최곤(催袞)ㆍ최박(催拍)ㆍ중곤(中袞)ㆍ헐박(歇拍)ㆍ쇄곤(煞袞)에 무용수 두 명이 무진ㆍ무퇴한다. ⑥ 죽간자 두 명이 무진하여 퇴구호하고 물러난다. ⑦ 무용수 두 명이 무진ㆍ무퇴하고 춤을 마치는 절차이다.
곡파는 당악정재로 처음과 끝부분에 죽간자의 진구호와 퇴구호가 있으며, 무용수가 부르는 미전사와 짝을 이루는 미후사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문 | 해설 | |
진구호(進口號) | 雅樂鏗鏘於麗景, 妓童部列於香階. 아악갱장어려경, 기동부열어향계. 爭呈綽約之姿, 共獻蝙躚之舞. 쟁정작약지자, 공헌편선지무. 冀容入隊, 以樂以娛. 기용입대, 이락이오. |
청아한 음악 아름다운 경치에 맑게 울리는데, 어린 기녀 향기로운 섬돌에 늘어서서 서로 고운 자태 뽐내며 함께 당실당실 춤을 추니 들라고 하시어서 즐겁게 누리소서. |
미전사(尾前詞) | 春早皇都氷泮, 宮沼東風布輕暖. 춘조황도빙반, 궁소동풍포경난. 梅紛飄香, 柳帶弄色. 매분표향, 유대롱색. 瑞靄祥烟凝淺, 正値元宵. 서애상연응천, 정치원소. 行樂同民摠無間, 肆情懷, 何惜相邀. 행락동민총무간, 사정회, 하석상요. 是處裡容款. 시처리용관. |
서울의 이른 봄 얼음이 풀렸나니 궁궐 연못에는 샛바람 따스하게 불어오는구나. 매화꽃 가루 향기 흩날리고 버들은 고운 빛을 뽐내는데, 상서로운 안개 흐릿하게 어렸구나. 원소절(元宵節)[정월 대보름날]을 맞이하여 백성들과 한데 얼려 즐기면서 속마음을 털어놓는데, 어찌 서로 초대하는 일을 아까워하랴? 이곳에서 한없이 다정히 지내리니,1 |
미후사(尾後詞) | 無算,2 仗委東君遍,3 有風光, 占五陵閑散. 무산, 장위동군편, 유풍광, 점오릉한산. 從把千金, 五夜繼賞, 並徹春宵遊玩. 종파천금, 오야계상, 병철춘소유완. 借問花燈, 차문화등. 金瑣․瓊瑰果曾罕. 금쇄․경괴과증한. 洞天裏, 一掠蓬瀛. 동천리, 일략봉영. 第恐今宵短. 제공금소단. |
동군(東君)[봄의 신]이 두루 돌아다니는 대로 내맡겨 아름다운 풍광을 차지하고, 오릉(五陵)[당나라 장안 부근 다섯 황제의 능 일대]의 한가로운 경치를 차지하도록 하자. 천금을 쥐고서 닷새 밤을 내리 구경하고 봄밤이 새도록 놀고 즐겨보자. 물어보노라, 화등(花燈)[꽃 장식을 한 원소절의 등]과 금쇄갑(金瑣甲)[대장이 입는, 금사(金絲)로 엮은 화려한 갑옷]․경괴(瓊瑰)[옥과 비슷한 아름다운 돌]가 일찍 드문 적이 있었는지. (?)신선의 사는 곳에서 봉래산(蓬萊山)과 영주산(瀛洲山)을 스쳐 지나가는 인생이라, 다만 오늘 밤 짧은 것이 두려울 뿐. |
퇴구호(退口號) | 七般妙舞,4 已呈飛燕之奇. 칠반묘무, 이정비연지기. 數曲淸歌, 且冀貫珠之美. 수곡청가, 차희관주지미. 五音齊送, 六律上催 오음제송, 육률상최 再拜階前, 相將好去 재배계전, 상장호거 |
칠반무(七盤舞)[7개의 쟁반을 놓고 그것을 밟거나 주위를 돌며 추는 춤] 묘한 춤으로 비연(飛燕, 한나라 成帝의 후궁, 가무에 뛰어났다고 함)의 기이한 재주를 보였고 몇 곡 맑은 노래도 구슬을 꿴 듯한 아름다움을 바랐지요. 오음(五音)이 일제히 떠나라 하고 육률(六律)이 서로 재촉하매, 섬돌 앞에서 두 번 절하고 함께 어울려 떠나렵니다. |
원문 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1) 아래에 이어지는 ‘無算’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뜻이다. 이것은 위쪽으로 붙여 번역해야 하기에 이곳으로 옮겨 ‘한없이’로 번역했다. 2)원문에는 ‘弄’으로 되어 있으나 ‘算’의 오자이다.‘無算’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뜻으로, 앞 문장에 붙이는 것이 맞다. 3)『어정사보』에는 ‘遍’이 ‘徧’으로 되어 있다. 4)‘七般妙舞’의 ‘般’은 ‘盤’의 오자로 보인다. ‘七盤舞'란 춤이 있기 때문이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죽간자의 두 명의 반주음악은 회팔선인자이다. 무용수 두 명의 반주음악은 석노교ㆍ전편(攧遍)ㆍ입파(入破)ㆍ허최(虛催)ㆍ최곤(催袞)ㆍ최박(催拍)ㆍ중곤(中袞)ㆍ헐박(歇拍)ㆍ쇄곤으로 각 곡이 연주될 때 마다 무용수 두 명은 무진․무퇴를 한다.
곡파에 사용되는 의물로는 죽간자, 인인장ㆍ용선ㆍ정절ㆍ봉선ㆍ미선ㆍ작선ㆍ개가 있다. 무용수는 조선 전기 여기의 복식으로 머리에는 잠ㆍ차ㆍ수ㆍ화를 꽂고, 이마에 대요를 두른다. 상의로는 남저고리 위에 단의를 입고, 하의로는 말군을 입고 그 위에 상을 두르며, 혜아를 신는다.
곡파는 고려 때 유입된 당악정재로 그 전까지 없었던 대곡이 반주곡으로 사용되어, 음악의 변화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춤에 있어서는 기본적인 무진, 무퇴, 서로 마주보거나 등을 대고 춤추는 간단한 춤사위가 반복되며, 다음 곡이 연주되기 전에 춤과 음악을 그쳤다가 다시 시작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정은혜 편저, 정재연구Ⅰ, 대광문화사, 1993, 223쪽. 이혜구 역주,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301-304쪽. 김영희 등, 『한국춤통사』, 보고사, 148쪽.
김경숙(金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