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향악정재의 하나로, 태조(太祖, 1335~1408, 재위 1392~1398)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악장)를 부르며 추는 춤
조선 초기에 창제된 향악정재이다. 1393(태조 2)에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태조의 문덕 정치를 칭송하고, 그 위업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가사를 지어 올린 후, 춤의 형태로 확장되었다. 한 명이 치어(致語; 송축의 내용을 담은 한문 가사)를 하고, 네 개의 악장 중 개언로장(開言路章)에서는 한 명의 무용수, 나머지 세 개의 악장에서는 네 명의 무용수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문덕곡은 일명 유보록(維寶錄)으로,『태조실록』권4에 의하면 태조 2년 7월 정도전이 태조의 공덕을 칭양하여 유보록을 태조에게 올렸고, 1393년(태조 2) 10월27일에 관습도감 판사 정도전과 왕강(王康, ?~1394)이 전악서의 무공방(武工房)을 거느리고 문덕 등 새 음악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402년(태종 2) 6월 5일에 예조에서 의례상정소 제조와 의논하여 의례에 쓰이는 정재를 정하였는데, 국왕연종친형제악(國王宴宗親弟樂); 국왕이 종친 형제들과 더불어 연향을 베풀 때 사용하는 음악)에서 여섯 번째 잔을 올릴 때 문덕곡을 노래한다고 되어 있다. 이후 『악학궤범(樂學軌範)』(1493) 권5 「시용향악정재도설」에 문덕곡의 춤과 음악 내용이 수록되어, 문덕곡이 악가무가 결합된 정재 형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894년(고종 31) 강녕전 외진연에서는 왕세자가 첫 번째 술잔(1작)을 올리기 전 악사들이 문덕곡 제1장을 부르기도 하였으나, 조선후기의 정재홀기에는 전하지 않는다. 현대에는 국립국악원 주도하에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의 재현 안무로 무대 예술화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1) 무공(武工)들이 소속되어 아악과 무무(巫舞)를 익히던 곳
문덕곡의 창사는 여기 한 명의 치어로 시작하여 개언로장․ 보공신장․ 정경계장․ 정예악장의 총 4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은 한문으로 된 가사를 노래하기도 하고 국한문 혼용의 가사를 노래하기도 한다. 첫 번째 개언로장에서는 태조가 언로를 크게 열어 여론을 파악함으로써 그 덕이 순임금과 같다는 내용을 노래하고, 두 번째 보공신장에서는 꾀와 힘을 다해 개국공신을 도운 신하들을 보전하는 덕이 무궁함을 노래하고, 세 번째 정경계장에서는 토지의 경계를 바로잡아 창고가 가득 차서 백성이 편하게 된 치덕을 노래했다. 마지막 정예악장에서는 예악을 새로 정하여 질서가 바르고 화평하고 기쁘게 한덕을 노래했다. 문덕곡의 창사 내용은 태조의 공덕을 칭송함과 동시에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한 경계의 의도를 담아내고 있다.
원문 | 해설 | |
[치어] | 文德曲美文德也. 太祖初卽位, 立經陳紀, 與民更始, 可誦者多矣. 擧其大者, 作開言路, 保功臣, 正經界定禮樂 문덕곡미문덕야. 태조초즉위, 입경진기, 여민갱시, 가송자다의. 거기대자, 작개언로, 보공신, 정경계정예악. | 문덕곡(文德曲)은 문덕을 찬미한 것입니다. 태조께서 처음 즉위하셨을 때 법과 원칙을 세우시고, 백성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셨으니, 욀 만한 것이 많습니다. 그 중 큰 것을 들자면, 언로를 열고, 공신(功臣)을 보전하고, 토지의 경계(經界)를 바로잡고, 예악(禮樂)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
[창사] | 「창 문덕곡 개언로장(開言路章)」 法宮이 有嚴(儼)深九重 ᄒᆞ시니 법궁 유엄심구중 一日萬機紛其叢ᄒᆞ샷다 일일만기분기총 君王이 要得民情通ᄒᆞ샤 군왕 요득민정통 大開言路達四聰ᄒᆞ시다 대개언로달사총 開言路君不見가 개언로군분견 我后之德이 與舜同ᄒᆞ샷다 아후지덕 여순동 아으 我后之德이 與舜同ᄒᆞ샷다 아후지덕 여순동 | 정전(正殿)이 장엄하고 구중으로 깊은데 하루 만 가지 정무 어지러이 몰려든다. 군왕은 백성들의 사정에 통달해야 하는지라 언로(言路)를 활짝 열어 사방의 소리를 들으시네. 언로 여신 것을 그대 보지 않았던가? 우리 임금의 덕이 순임금과 같으시도다. 아아, 우리 임금의 덕 순임금과 같으시도다. | 「창 보공신장(保功臣章)」 聖人受命乘飛龍ᄒᆞ시니 성인수명승비룡 多士ㅣ 競起如雲從ᄒᆞ샷다 다사 경기여운종 騁謀効力이 成厥功ᄒᆞ시니 빙모효력 성궐공 誓以山河로 保始終ᄒᆞ샷다 서이산하 보시종 保功臣君不見가 보공신군불견 我后之德이 垂無窮ᄒᆞ샷다 아후지덕 수무궁 아으 我后之德이 垂無窮ᄒᆞ샷다 아후지덕 수무궁 | 성인이 천명 받아 나는 용을 타시니 많은 선비가 다투어 일어나 구름처럼 따랐도다 꾀를 쏟고 힘을 바쳐 그 공을 이루시니, 태산과 황하를 두고 맹세하여 시종을 보전하셨도다. 공신 보전하신 것을 그대 보지 않았는가 우리 임금의 덕이 무궁히 전해질 것이로다. 아아, 우리 임금의 덕이 무궁히 전해질 것이로다. | 「창 정경계장(正經界章)」 經界壞矣라 久不修ᄒᆞ야 경계괴의 구불수 强幷弱削相包休커늘 강병약삭상포휴 我后 ㅣ 正之ᄒᆞ샤 期甫周ᄒᆞ니 아후 정지 기보주 倉稟이 克富코 民息休ᄒᆞ두다 창품 극부 민식휴 正經界君不見가 정경계군불견 烝哉樂愷享千秋ᄒᆞ샷다 증재락개향천추 아으 烝哉樂愷享千秋ᄒᆞ샷다 중재락개향천추 | 토지 경계가 무너져도, 오래도록 바로잡지 않아 강자는 삼키고 약자는 깎이어서 서로 으르렁 대거늘 우리 임금이 바로잡은 겨우 일년 만에 창고가 풍성하고 백성은 편안하네. 경계를 바로잡은 것을 그대 보지 않았는가? 임금다우시도다, 즐겁게 천추를 누리시도다 아아, 임금다우시도다, 즐겁게 천추를 누리시도다 | 「창 정예악장(定禮樂章)」 爲政之要 ㅣ 在禮樂ᄒᆞ니 위정지요 재예악 近自閨門이오 達邦國ᄒᆞ니라 근자규문 달방국 我后 ㅣ 定之ᄒᆞ사 垂典則ᄒᆞ시니 아후 정지 수전칙 秩然以序코 和以懌ᄒᆞ샷다 질연이서 화이역 正禮樂君不見가 정예악군불견 功成治定이 配無極ᄒᆞ샷다 공성치정 배무극 아으 功成治定이 配無極ᄒᆞ샷다 공성치정 배무극 | 정치하는 요체가 예악에 있으니 가깝게는 규방(閨房)에서 시작하여 나라 전체에 이르리라. 우리 임금 예악을 정하시어 법칙을 전하시니, 질서가 정연하고, 조화롭고 즐겁도다. 예악을 정하신 것을 그대 보지 않았는가? 공이 이루어지고 정치가 안정되어 무극(無極)과 짝하시도다. 아아, 공이 이루어지고 정치가 안정되어 무극(無極)과 짝하시도다. |
원문: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2』 , 번역: 강명관
『악학궤범』에 전하는 문덕곡의 반주음악은 소포구락령(小抛毬樂令)이다.
문덕곡의 복식은 조선 초기 여기의 복식을 착용했다. 머리에는 잠(箴)ㆍ차(釵)ㆍ수화(首花)를 꽂고, 이마에 대요(臺腰)를 두른다. 상의로는 남저고리 위에 단의를 입고, 하의로는 말군을 입고 그 위에 상을 두르며, 혜아를 신는다.
문덕곡은 조선 초기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밝힌 내용이 아닌 덕치(德治)의 내용을 간략한 춤 구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태조의 즉위 이후 언로를 열어 상하 간에 소통하도록 하고, 개국에 공을 세운 신하들의 업적을 보전하고, 토지제도를 바로 잡고, 예악을 갖춘 태조의 공덕을 기리며, 조선왕실에서 그러한 문덕 정치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노래와 춤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신태영, 「조선 태조조 창작 정재의 악무와 예악사상」, 『동방한문학』59, 2014. 이혜구 역주,『신역 악학궤범』, 2000. 조경아, 「정도전 악장 정재의 가무악 요소에 담긴 상징과 비유」, 『무용역사기록학』33, 2014
김경숙(金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