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모대(王母隊)
고려 문종(文宗, 1019~1083, 재위 1046~1083) 때 들어온 송나라 교방가무(敎坊歌舞)의 하나로, 천하태평(天下太平)이라는 네 글자를 만들며 추는 춤
<포구락〉, 〈구장기별기〉, 〈답사행가무〉와 함께 고려 때 송나라의 교방악사(敎坊樂師)가 전한 당악정재이며, 1077년(문종 31) 2월 연등회에서 공연되었다. 1대가 55명으로 ‘군왕만세(君王萬歲)’ 또는 ‘천하태평’이라는 글자를 만드는 춤이다.
왕모대가무에 대한 기록은『고려사』권71에 전한다.
이에 따르면, 1077년(문종 31) 2월 을미(乙未)일에 연등회를 할 때 왕이 중광전(重光殿)에 행차하여 악무를 관람하였는데, 교방 여제자 초영(楚英, ?~?)이 왕모대가무를 공연하였다고 한다. 1대가 쉰다섯 명으로, 군왕만세(君王萬歲) 또는 천하태평(天下太平)이라는 네 글자를 만드는 춤이다. 고려 이후에 이러한 가무가 지속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1999년 국립국악원이 ‘국립국악원 정재 제전’에서 재현하여 공연한 적이 있다. 당시 국립국악원 원로사범이었던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이 1987년 초안한 무보를 바탕으로 국립국악원 무용단 하루미가 안무하여 발표하였다.
마흔 명의 무원들이 국가번영을 노래하고 천하태평의 네 글자를 직접 형상화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쉰다섯 명이 1대가 되어 군왕만세 또는 천하태평이라는 네 글자를 만든다. 세부 구성과 춤사위ㆍ음악ㆍ창사ㆍ복식ㆍ의물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왕모대가무는 오늘날 매스게임과 유사한 형태의 춤이 고려시대에도 추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의미가 있다. 고려의 교방은 송나라와 적극적인 교류를 하였고, 송나라에서 파견한 교방악관들로부터 전해진 당악정재가 연등회에서 연행되었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고려 궁중 공연예술이 발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고려사』 송방송, 『증보 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07. 김영희 외, 『한국춤통사』, 보고사, 2014. 「국립국악원 정재 제전-궁중의 한나절 정취를 찾아서」, 1999. 11. 25.~26., 국립국악원 예악당 공연 팸플릿
권혜경(權惠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