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슬(錦瑟), 삼슬(三瑟)
고려 예종 때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궁중 의식에서 사용된 이래, 지금까지 아악에 편성되는 대표적인 현악기
고려 예종 11년(1116)에 송나라로부터 대성아악이 유입될 때 들어와 제례악에 사용되었다. 슬은 스물다섯 줄을 가졌고, 열다섯 줄을 가진 대쟁(大箏)과 형태가 비슷하나 그보다 크며, 학ㆍ구름 등의 화려한 문양으로 채색한다. 연주할 때 왼손과 오른손을 동시에 사용하되, 주로 검지로 한 옥타브 간격의 개방현(開放絃) 둘을 뜨는 주법을 사용한다.
『삼국지』위지 동이전 기록에 한반도 진한에 축을 닮은 악기 슬이 있다고 하여 슬이란 악기명칭이 처음 보인다. 이후 고려시대까지 슬의 존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전하지 않으며, 한반도 고유의 현악기 유물과의 연관성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 슬은 고려 예종11년(1116년), 송에서 보내온 대성아악의 등가와 헌가에 사용되면서 다시 나타난다. 조선 태종 때는 두 틀을 명나라로부터 수입하였고, 세종대에 열 틀을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주로 〈사직제례악〉과 같이 아악을 사용하는 제례악 등가에 편성하였으며, 조선 후기 이후 한동안 연주하지 않고 진설만 하였다. 최근 문묘제례악의 등가에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종묘제례에는 진설만 할 뿐, 연주하지 않는다참고로 중국에서 들어온 슬의 중국측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의 『시경』에, 슬은 복희씨가 만들고 금은 신농씨가 만들었다고 하였다. 당나라의 슬은 비단으로 임악(臨岳) 부분을 장식하고 ‘금슬(錦瑟)’이라고 이름 지었다. 음고에 따라서 대ㆍ중ㆍ소의 슬을 일컬어 ‘삼슬(三瑟)’이라고도 하였다. 슬의 악보(譜)가 실전(失傳)되어 연주법이 전하지 않자 사람들이 금을 숭상(崇尙)하게 되었다고도 전한다.
○구조와 형태 〈윗판〉 임악: 머리 쪽 현을 올려놓는 부분. 수악(首岳)이라고도 하며, 현침에 해당함 악: 꼬리 쪽 현을 올려놓는 부분. 미악(尾岳)이라고도 한다. 임악과 악을 양악이라고 칭함 몸통: 슬의 몸통을 무(武)라 칭함 은간: 양악(임악과 악)의 가운데를 말함 윤현: 스물다섯 개 줄 중 한가운데 위치하며 실제 연주에는 사용되지 않음. 윤현을 중심으로 열두 개의 대현(大絃)은 중성(中聲)이고, 열세 개의 소현(小絃)은 청성(淸聲). 주(안족): 스물다섯 개 줄을 걸어놓은 작은 기둥[柱] 〈밑판〉 용은(龍齗) : 악기의 꼬리 쪽 줄을 넘기는 부분 활(越): 밑판의 머리 쪽과 꼬리 쪽, 그리고 악기 가운데에 만든 구멍. 그 중, 미활은 윗 판의 25현을 모아서 넣는 구멍. 미활(尾越): 악기의 꼬리 위치의 활. 윗 판에 얹은 스물다섯 개 줄을 모아 넣는 구멍 수활首越): 악기의 머리 부분의 활 운족(雲足): 악기의 몸체를 받쳐 바닥에 평평하게 놓기 위한 구름모양의 부속.
○음역과 조율법
『악학궤범』 산형
슬은 한 줄당 한 음씩 소리 낸다. 총 25현 중 가장 굵은 제1현(황종)부터 제12현(응종)까지는 기본음역인 정성(正聲) 현재 청성과 탁성의 중간에 있는 기본 음역을 ‘정성’이라고 하는데, 『시악화성』에서는 ‘중성’이라고 하며, 『악학궤범』에서는 ‘본율’ 로 표현하였다.
십이율(十二律)로 조율하며, 제13현은 사용하지 않는 윤현(閏絃)으로 붉은색으로 칠한다. 제14현(청황종)부터 제25현(청응종)까지는 정성보다 한 옥타브 위, 청성으로 조율하여 윤현 아래 열두 줄과 옥타브 관계를 이룬다. 즉, 연주에 사용하지 않는 윤현을 중심으로, 12율의 두 옥타브를 배열한다.
○구음과 표기법
슬은 아악을 사용하는 음악에 편성되며, 아악은 율자보(律字譜)로 기보하였으므로, 구음은 사용하지 않는다.
○연주방법과 기법
『시악화성』에 의하면, 슬을 타는 법에 ‘용지지법(用指之法)’과 ‘상현심음지법(上絃審音之法)’이 있다. 열 손가락을 모두 펴고, 소지를 굽히지 않도록 한다고 하였다.
『악학궤범』에서는 본율(本律) 즉 정성을 오른손으로 뜯고, 왼손으로 한 옥타브 위 청성을 뜯는데, 양손 식지(食指)로 동시에 줄을 떠서 ‘쌍성(雙聲)’이 나게 한다고 하였다. 다만 사청성(四淸聲)에 해당하는 음을 낼 때는 쌍성을 쓰지 않고 단독으로 소리낸다.
슬은 한 줄에 한 음씩 개방현 소리를 그대로 내는 악기이므로, 왼손으로 현을 짚는 위치에 따라 진동하는 길이 및 그 음높이를 달리하는 금(琴)과 연주법에서 차이가 있다.
이처럼 식지만 사용하고, 줄을 안쪽으로 뜨는[勾] 주법만 사용하고, 왼손으로 음높이를 짚지 않으므로 시김새나 장식음 없이 담백한 음을 내며, 아악에만 쓰인다.
○연주악곡
고려 시대부터 궁중의 제례음악에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사직(社稷)ㆍ풍운뇌우(風雲雷雨)ㆍ산천(山川)ㆍ성황(城隍)ㆍ선농(先農)ㆍ선잠(先蠶)ㆍ우사(雩祀), 문묘(文廟) 제향 등 아악의 등가에 사용되었다. 현재는 《사직제례악》, 《문묘제례악》의 등가에 편성한다.
○제작 및 관리 방법
『악학궤범』과 『시악화성』에 기록된 슬 제작 방법은 다음과 같다.
오동나무로 된 윗판과 가래나무나 엄나무의 아랫판을 결합하여 울림통을 만든 뒤, 네 변은 검게 칠하고, 앞면에는 구름과 학을 그려서 색을 채우며, 양 끝에는 금문(金文)을 그린다. 현침 부분과 미단 쪽에도 조각과 단청을 하여 현악기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스물 다섯 줄 전체를 모아 활이라는 구멍으로 넣는 것이 가야금, 거문고의 부들 기능과 다르다.
제1현(황종)이 가장 굵고 제25현(청응종)으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며, 안족은 점차 낮아지는데, 제13현인 윤현의 굵기는 황종과 같다. 『악학궤범』에서 윤현의 안족은 담괘(현침)의 앞으로 물려 세워 놓는다고 하였다. 전체 모양과 부속은 사진 설명을 참조한다.
목재와 현 재료의 특성상, 직사광선을 피해 습도에 유의하여 보관한다.
고려 이전 슬과 관련한 뚜렷한 고대사 문헌이나 도상 자료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1116년 대성아악과 함께 한반도에 유입되어 제례 아악에 사용되었다. 슬의 조율과 연주법의 특성으로 인해 아악 외의 다른 음악 연주에 잘 어울리지 못하였으며, 이 점은 슬과 쌍을 이루는 또 다른 현악기인 금과 다른 점이다. 조선 후기에 금이 완상용 악기였다면, 슬은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연주양식으로 인하여, 가장 아악다운 면모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하면서 큰 악기의 외형과 달리 음량이 매우 적어 진설만 하고 연주하지 않는다는 표현이무리도 아니다. 슬은 음악 계통 중 아부(雅部)에 들고 팔음 중 사부(絲部)에 속하며, 스물다섯 줄을 가진 현명악기이다. 예로부터 ‘금슬상화(琴瑟相和)’라 하여 금(琴)과 함께 연주됨으로써 서로 조화를 이룬다고 알려졌다.
『고려사』 「악지」 『삼국사기』 『시악화성』 『악학궤범』 『이왕가악기』
장희선(張希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