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소(鳳簫)
길이가 다른 열여섯 개의 대나무 관대를 일렬로 꽂은 나비 모양의 나무틀을 손으로 잡고 관대에 입김을 불어 넣어 연주하는 관악기
소는 아악(雅樂) 연주에 편성되는 악기로, 삼국시대의 고고학 자료에서부터 나타나지만, 통일신라 시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가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전래 된 이후 조선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서양의 팬파이프(panpipe)와 유사한 관악기이다.
소는 삼국시대 사료에서부터 등장한다. 고구려의 〈안악 제3호분 벽화〉ㆍ〈오회분 5호묘 벽화〉ㆍ〈통구 제17호분 벽화〉에 그려져 있으며,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의 윗부분에 새겨진 다섯 악사 중에도 소 연주자가 보인다. #1 이미지(유물) 백제금동대향로
즉 그림과 유물 자료를 통해 소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삼국 시대의 소가 통일신라로 전승된 이력을 확인하기 어렵다.
고려 시대에 소가 다시 등장하니, 1114년(예종 9)과 1116년(예종 11) 두 차례에 걸쳐 송(宋)에서 보낸 악기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고, 이때부터 제례에서 아악을 연주할 때 편성되었다.
조선 시대에도 아악이 수반되는 사직(社稷)ㆍ풍운뇌우(風雲雷雨)ㆍ선농(先農)ㆍ선잠(先蠶)ㆍ우사(雩祀)ㆍ문묘(文廟) 등에 제사를 올릴 때 소를 사용하였고, 세종대의 조회(朝會)와 회례(會禮), 영조의 71세[望八] 기념 연향처럼 일시적으로 아악이 사용된 궁중 행사에서도 사용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조선 시대로부터 이어진 제례뿐 아니라 새로 제정된 하늘 제사에 따른 〈환구제례악(圜丘祭禮樂)을 연주하는 데까지 그 쓰임이 확장되었다. 그러나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인해 궁중의 제례가 축소된 이후 아악을 연주하는 제향은 문묘만 존속됨으로써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소는《문묘제례악》을 연주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아울러 근래에 복원된〈사직제례악〉에도 편성된다.
○구조와 형태
삼국 시대의 소는 악기 틀 없이 대나무 관대를 짧은 것부터 길이 순으로 가지런하게 정렬하여 엮은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용하는 소는 나비 모양의 나무틀에 맞추어 짧고 긴 대나무 관대 열여섯 개를 꽂은 모양이다. 그 모습이 봉(鳳)의 날개 같다고 하여 봉소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형태는 조선 시대부터 나타난다.
『세종실록』「오례」에서는 관대가 모두 노출되어 있고,『악학궤범』에서는 관대의 위와 아랫부분이 악기 틀에서 조금씩 드러나 있으며, 『시악화성』에서는 취구(吹口)가 있는 관대의 윗부분만 보이고 나머지 관대는 나무틀 속에 모두 삽입되어 있다. 현행 소는 조선 시대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시악화성』처럼 취구가 있는 관대의 상단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악기 틀 안에 들어간 형태이다. 국립국악원 소장 악기의 경우, 관 지름(내경)이 약 1.0cm, 나무틀 위로 드러간 관대 상단부가 약 6.9cm이고, 악기 전체 너비와 길이는 각각 약 40.7cm, 약 33.8cm이다.
○음역과 조율법
소는 밑이 막히고 지공이 뚫리지 않은 열여섯 개의 대나무 관대를 사용한다. 한 관대에서 한 음만 낼 수 있으며, 한 옥타브 내의 열두 음[十二律]과 옥타브 위의 네 음[四淸聲]으로 구성되어, 음역이 한 옥타브를 약간 넘는다. 대나무 관대를 배열하는 방법은 문헌에 두 가지로 나타난다. 『악학궤범』에서는 연주자를 중심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황종(黃,C4)부터 청협종(浹,D#5)까지 반음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시악화성』에서는 바깥쪽 좌우에 긴 관대를 꽂고 안쪽으로 갈수록 짧아지도록 하되, 황종(黃,C4)부터 청협종(浹,D#5)까지를 좌우로 번갈아가며 위치시켰다. 현행 소의 겉모습은 『시악화성』을, 관대 배치는『악학궤범』 체제를 따른다. 즉, 틀 모양은 봉소의 형태이고 관대 배열은 배소와 같다.
○연주방법과 기법
악기 틀을 양손으로 잡고, 각 관대의 취구 쪽을 아래 입술로 막고 마치 단소를 불 듯이 U자형 취구에 입김을 불어 넣어 소리 낸다. 선율을 연주할 때 관대를 옮겨가며 취구를 찾아 입김을 불어 넣어 소리를 내야 하므로, 선율 진행 속도가 느리거나 길게 음을 뻗어내는 악곡을 연주할 수는 있어도 빠른 악곡을 연주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연주악곡
〈문묘제례악〉
○제작 및 관리방법
조선 1424년(세종 6)에 국내에서 제작된 이래로 국산화가 실현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악기 틀은 피나무에 검은 칠을 하고, 열여섯 개의 관대는 바닷가에서 자란 대나무[海竹]를 채취한 후 붉은 칠을 해 만든다. 관대의 밑바닥에 납(蠟)을 넣어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데, 납의 양을 늘리면 관 속의 공기 기둥(air column) 길이가 짧아져 음이 높아지고, 납의 양을 줄이면 음이 낮아진다.
고려 시대부터 음 하나하나를 길게 뻗어내는 아악을 연주하는데에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사직제례악》 등에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지닌다.
『고려사』 『대한예전』 『세종실록』「오례」 『시악화성』 『악학궤범』, 『을유수작의궤』 『춘관통고』
『한국의 악기 2』, 국립국악원, 2016. 서정록,『백제금동대향로』, 2001.
이정희(李丁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