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서(誦書)로 불리는 악곡 중 하나로 중국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 BC 343?~BC 278?)이 지은 어부사(漁父辭)를 소리하듯이 읽는 송서
굴원이 지었다는 어부사를 노래하는 송서의 하나로, 12가사 중 하나인 <어부사(漁父詞)>와는 다른 노래이다. 송서는 산문으로 된 글을 낭송조로 부르는 것을 이른다. 굴원의 어부사가 언제부터 송서로 불렸는지는 미상이며, 기록에만 남아 있다. 일정한 형식 없이 자유롭게 부르고, 경기민요 창법 또는 서도식 창법으로 되어 있다. 현재는 전승이 거의 단절되었다.
어부사는 굴원이 정계에서 쫓겨나 강남에 머물며 집필한 작품이다. 창강(滄江)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깨친 바를 집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정에서 추방되어 초조히 강가를 방황하는 굴원이 어부의 물음에 답하여 이 세상의 오탁(汚濁)에 물들지 않으려는 깨끗한 자기의 의지를 말하는데, 은자(隱者)인 어부는 이 세상의 청탁(淸濁)에 구애받지 마라 하며 「창랑가(滄浪歌)」를 부르면서 떠나간다는 내용이다.
굴원의 어부사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송서로 불렸는지는 알 수 없고 『청구영언』등 기록에만 남아 있고 현재는 거의 불리지 않는다.
○ 역사변천 과정
송서는 산문으로 된 글을 낭송조로 부르는 것을 이르며, 오언이나 칠언으로 된 한문시를 낭송조로 부르는 시창(詩唱) 혹은 율창(律唱)과 대비된다.
20세기 전반기에 전문 음악인들에 의해 불리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출판된 기사집이나 잡가집, 그리고 유성기 음반 목록 등을 살펴보면 현재는 전승되지 않은 다양한 송서가 수록되어 있어 당시 유행하던 가창 양식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만 하더라도 송서를 즐기는 향유층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는데,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 송서 문화도 약화되었다. 1960년대까지도 면면히 이어져왔으나 최근에는 전문 음악인들에 의해 연주회장에서 불리는 경우조차 흔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양한 송서 악곡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삼설기>ㆍ<짝타령>ㆍ<등왕각서>ㆍ<추풍감별곡> 등이 불리고, 어부사는 불리지 않는다.
○악대와 악기편성
송서는 반주가 필수적이지 않다. 반주를 곁들일 때에는 주로 대금과 같은 관악기 하나만 사용하고, 정해진 가락 없이 소리에 맞춰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으로 반주한다.
○음악 형식, 선법 및 음계, 장단
송서는 주로 경기와 서도지역에서 많이 부르는데, 경기지역에서는 경기민요 창법과 서도식 창법이 혼재되어 있고, 서도지역에서는 서도식 창법으로 부른다. 오늘날 송서 형태로 어부사가 거의 불리지 않기 때문에 음악 형식이나 선법, 장단 등을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긴 사설로 된 가사 내용을 슬픈 느낌을 주는 간단한 곡조에 얹어서 불렀을 것으로 여진다. 그러한 이유로 서도식 창법으로 글 읽듯 읖조렸다고 본다 송서는 시김새도 절제된 형태로 쓰이고, 일정한 형식이나 장단이 없고 자유롭게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원문 | 해설 |
굴원(屈原)이 기방(旣放)에 유어강담(遊於江潭)하고 행음택반(行吟澤畔)할 새안색(顔色)이 초췌(憔悴)하고 형용(形容)이 고고(枯槁)러니 | 굴원이 쫓겨나 강호에서 노닐며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안색이 초췌하고 모습은 야위어 보였다 |
어부 견이문지왈(見而問之曰) 자비삼려대부여(子非三閭大夫與)아 하고지어사(何故至於斯)오 |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오, 어찌하여 여기까지 이르렀소? |
굴원(屈原)이 왈(曰) 거세개탁(擧世皆濁)이어날 아독청(我獨淸)하고중인(衆人)이 개취(皆醉)어늘 아독성(我獨醒)이라 시이견방(是以見放)이로다 | 굴원이 말하기를 온 세상 모두가 다 흐려있는데 나 혼자 맑고 깨끗했으며,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취해 있는데 나 혼자만 맑게 깨어 있어서 이것 때문에 추방되었소 |
어부왈(漁夫曰) 성인(聖人)은 불응체어물(不凝滯於物)하고 이능여세추이(而能與世推移)하나니세인(世人)이 개탁(皆濁)이어든 하불굴(何不淈) 기이양기파(其泥揚其波)하며중인(衆人)이 개취(皆醉)어든 하불포기조이(何不餔其糟而) 철기리(歠其醨)하고하고(何故)로 심사고거(深思高擧)하여 자령방위(自令放爲)요 |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능히 세상과 함께 변화할 수 있소.모든 사람이 다 흐리다면 그 흙탕물을 흔들어 그 파도를 일으키지 않으며,세상 사람들이 다 취했다면 그 지게미를 먹고 그 술을 마시지 않았는가?무엇 때문에 깊이 생각하여 고상하게 행동하여 추방되었는가? |
굴원(屈原)이 왈(曰) 오문지(吾聞之)니 신목자(新沐者)는 필탄관(必彈冠)이요 신욕자(新浴者)는 필진의(必振衣)라안능이신지찰찰(安能以新之察察)로 수물지문문자호(受物之汶汶者乎)아영부상류(寧赴湘流)하여 장어강어지복중(葬於江魚之腹中)이언정안능이호호지백(安能而皓皓之白)으로 이몽세속지진애호(而蒙世俗之塵埃乎)아 | 굴원이 말하기를 내 들으니 새로이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을 털고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낼지언정어찌 이 희고 깨끗한 내 몸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
어부(漁夫) 완이이소(莞爾而笑)하고 고예이거(鼓枻而去)하여 내가왈(乃歌曰) |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겠네, 라고 노래하며 다시 말하지 않고 가버렸다 |
송서는 20세기 전반기 유행하던 가창 양식의 하나였다.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 송서 향유 문화가 약해졌고, 최근에는 전문 음악인조차 송서를 부르는 이가 많지 않다. 많은 송서 악곡이 사라졌고, 어부사도 지금은 불리지 않는다.
송서 <어부사>는 12가사에 속하는 <어부사>와 전혀 다른 곡이며, 오늘날에는 거의 불리지 않고 있다.
『청구영언』
장기근, 『굴원』, 명문당, 2003. 하응백, 『창악집성』, 휴먼앤북스, 2011 하정욱, 『굴원』, 거원, 1997.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