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진보』에 수록된 「전출사표」를 현토(懸吐)하여 부르는 송서
출사표는 『고문진보』에 수록된 「전출사표」를 현토하여 노래한다. 정조대 함흥의 기녀가 출사표를 잘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20세기 초에는 경성방송국을 통해서 방송되었으며 현재 전승되지 않는다.
『고문진보』에 수록된 제갈량((諸葛亮, 181~234)의 「전출사표」가 전통사회에서 기녀나 가객에 의해 불리면서 송서의 한 곡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송서 출사표는 『고문진보』에 수록된 촉(蜀)나라 제갈량의 「전출사표」를 현토하여 부른다. 「전출사표」는 중국 삼국 촉나라 제갈량이 출정(出征)하며 황제에게 올린 표문(表文)으로, 주군과 나라를 향한 충심을 담은 내용이다.
정조대의 정승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번암집(樊巖集)』에는 가련(可憐)이라는 함흥의 노기(老妓)가 출사표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불렀다고 기록되었다.
1930년대에는 경성방송국을 통해 출사표가 방송되었다.
1936.03.12(목) 21:15- | 時調와 誦書 | 時調, 出師表 | 張玉花 | 1937.04.05(월) 21:15- | 誦書 | 歸去來辭, 出師表 | 張玉花 | 1937.11.18(목) 20:55- | 誦書 | 後赤壁賦, 出師表 | 劉聖玉 | 1938.05.08(일) 21:15- | 誦書 | 出師表前後篇, 歸去來辭 | 張玉花 |
고문(古文)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송서와 마찬가지로 출사표도 전통사회가 해체되고 음악 문화가 재편되면서 점차 불리지 않았으며 현재는 전승되지 않는다.
선제창업미반(先帝創業未半) 이중도붕조(而中道崩殂)하시고 금천하삼분(今天下三分)에 익주파폐(益州罷弊)하니 차성위급존망지추야(此誠危急存亡之秋也)라 연(然)이나 시위지신(侍衛之臣)이 불해어내(不懈於內)하고 충지지사망신어외자(忠志之士忘身於外者)는 개추선제지수우(蓋追先帝之殊遇)하야 욕보지어폐하야(欲報之於陛下也)니이다 성의개장성청(誠宜開張聖聽)하사 이광선제유덕(以光先帝遺德)하며 회홍지사지기(恢弘志士之氣)오 불의망자비박(不宜妄自菲薄)하야 인유실의(引喩失義)하야 이색충간지로야(以塞忠諫之路也)니이다 궁중부중(宮中府中)이 구위일체(俱爲一體)니 척벌장비(陟罰臧否)를 불의이동(不宜異同)이라 약유작간범과(若有作姦犯科)와 급위충선자(及爲忠善者)어든 의부유사(宜付有司)하야 논기형상(論其刑賞) 이소폐하평명지리(以昭陛下平明之理)오 불의편사(不宜偏私) 사내외이법야(使內外異法也)니이다 시중시랑(侍中侍郞) 곽유지비위동윤등(郭攸之費褘董允等)은 차개양실(此皆良實)하고 지려충순(志慮忠純)이라 시이(是以)로 선제간발(先帝簡拔)하사 이유폐하(以遺陛下)하시니 우이위궁중지사(愚以爲宮中之事)는 사무대소(事無大小)히 실이자지연후(悉以咨之然後)에 施行(시행)이면 필능(必能) 비보관루(裨補闕漏)하야 유소광익(有所廣益)이리이다 장군향총(將軍向寵)은 성행(性行)이 숙균(淑均)하고 효창군사(曉暢軍事)하야 시용어석일(試用於昔日)에 선제칭지왈능(先帝稱之曰能)이라 하사 시이(是以)로 중의거총위독(衆議擧寵爲督)하니 우이위영중지사(愚以爲營中之事)는 사무대소(事無大小)히 실이자지(悉以咨之)하시면 필능(必能)사행진화목(使行陣和睦)하고 우열득소야(優劣得所也)리이다 친현신원소인(親賢臣遠小人)은 차선한소이흥륭(此先漢所以興隆)이요 친소인원현신(親小人遠賢臣)은 차후한소이경퇴야(此後漢所以傾頹也)라 선제재시(先帝在時)에 매여신(每與臣)으로 논차사(論此事)에 미상불탄식통한어환령야(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니다 시중상서장사참군(侍中尙書長史參軍)은 차실정량사절지신(此悉貞亮死節之臣)이니 원폐하(願陛下)는 친지신지(親之信之)하시면 즉한실지륭(則漢室之隆)을 가계일이대야(可計日而待也)니이다 신본포의(臣本布衣)로 궁경어남양(躬耕於南陽)하야 구전성명어난세(苟全性命於亂世)하고 불구문달어제후(不求聞達於諸候)러니 선제불이신비비(先帝不以臣卑鄙)하시고 외자왕굴(猥自枉屈)하사 삼고신어초려지중(三顧臣於草廬之中)하시고 자신이당세지사(諮臣以當世之事)하시니 유시감격(由是感激)하야 수허선제이구치(遂許先帝以驅馳)러니 후치경복(後値傾覆)하야 수임어패군지제(受任於敗軍之際)하고 봉명어위난지간(奉命於危難之間)이 이래이십유일년의(爾來二十有一年矣)라 선제지신근신(先帝知臣謹愼)이라 고(故)로 임붕(臨崩)에 기신이대사야(寄臣以大事也)니이다 수명이래(受命以來)로 숙야우탄(夙夜憂嘆)하며 공탁부불효(恐託付不效)하야 이상선제지명(以傷先帝之明)이라 고(故)로 오월도려(五月渡瀘)하야 심입불모(深入不毛)러니 금남방(今南方)이 이정(已定)하고 갑병(甲兵)이 이족(已足)하니 당장솔삼군(當奬率三軍)하야 북정중원(北定中原)하고 서갈노둔(庶竭駑鈍)하야 양제간흉(攘除姦凶)하야 흥복한실(復興漢室)하야 환어구도(還於舊都)니 차신소이보선제(此臣所以報先帝) 충폐하지직분야(忠陛下之職分也)요 지어짐작손익(至於斟酌損益)하고 진진충언(進盡忠言)은 즉유지의윤지임야(則攸之褘允之任也)이다 원폐하(願陛下)는 탁신이토적흥복지효(託臣以討賊興復之效)하사 불효칙치신지죄(不效則治臣之罪)하야 이고선제지령(以告先帝之靈)하시고 약무흥덕지언(若無興德之言)이어든 즉책유지의윤등지구(則責 攸之禕允等之咎)하사 이창기만(以彰其慢)하시며 폐하(陛下)도 역의자모(亦宜自謀)하야 이자추선도(以諮諏善道)하고 찰납아언(察納雅言)하야 심추선제유조(深追先帝遺詔)하소서 신불승수은감격(臣不勝受恩感激)이라 금당원리(今當遠離)에 임표체읍(臨表涕泣)하야 부지소운(不知所云)이로소이다. 노랫말 출처: 하응백 편저, 『창악집성』, 휴먼앤북스, 2011.
출사표는 조선 후기 정조대에 가창되었다는 기록과 1930년대에 경성방송국을 통해 전송된 기록이 있다. 출사표를 통해 조선 후기의 송서 연행 문화가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蔡濟恭, 『樊巖集』, 권8 詩.
성기련, 「‘글 읽는 소리’의 전통 속에서 살펴 본 송서의 개념 변화 및 사설붙임의 특징」, 『국악원논문집』 32, 2015. 하응백 편저, 『창악집성』, 휴먼앤북스, 20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민속원, 1999.
임영선(林映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