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사에 나오는 유명한 인물의 이야기를 나열한 짝타령을 부르는 송서(誦書)
짝타령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을 4명씩 짝지어 열거하는 노랫말을 지닌다. 20세기 초에 이문원(李文源)에 의해 송서의 한 곡으로 자리 잡았다.
○ 역사 변천 과정
짝타령은 4명씩 사람을 묶어 그들이 남긴 글귀나 고사를 언급하면서 “~하던 …로 한 짝 하고 / ~하던 …로 한 짝 하고 / ~하던 …로 웃짐 쳐서 / ~하던 …로 말 몰리고”라고 하는 사설을 노래한다. 판소리 삽입 가요 〈바리가〉로부터 파생되었으며, 19세기에 인기를 얻게 되면서 판소리ㆍ단가ㆍ가야금병창 등 여러 갈래에서 노래되었다. 20세기 초에 이문원에 의해 송서로 불리게 되었다.
가창 갈래에 따라 사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에 차이가 있으며, 악기의 구음이나 특정 관용구가 붙는 경우도 있는데, 송서 짝타령의 사설에는 악기 구음이나 관용구가 없다. 1930년대에 이문원이 부른 짝타령이 경성방송국에서 방송되었고 유성기음반에 취입되었다.
방송 일시 | 분류 | 곡명 | 연주자 | 1935년 10월 31일 21:00~ | 시조(時調)와 송서 | 평시조, 지름, 짝타령, 삼설기(三說記) | 이문원 |
1933년 | Columbia40435-B | 詩朗吟 | 짝타령 | 李文源 |
묵계월(墨桂月, 1921~2014)은 1930년대에 이문원을 만나 〈삼설기(三說記)〉ㆍ〈등왕각서(滕王閣序)〉 등을 배웠지만, 당시 이문원이 고령이었던 탓에 짝타령은 완전히 전수받지 못하였다.
짝타령은 현재 전승되지 않는다.
이문원이 부른 짝타령은 경토리로 되어 있으며, 가사 붙임새는 대개 1자 1박이다. 선율은 몇 개의 기본 선율형을 변주하거나 조합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虛照碧山月)이요 고목(古木)은 진입창오운(盡入蒼梧雲)이라 하던 이태백으로 한 짝 하고 삼년적리(三年笛裏) 관산월(關山月)이요 만국병전(萬國兵前) 초목풍(草木風)이라 하던 두자미(杜子美)로 한 짝 하고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하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이라 하던 왕자안(王子安)으로 웃짐 치고 백로(白露)는 횡강(橫江)하고 수광(水光)은 접천(接天)이라 하던 소동파(蘇東坡)로 말 몰리고 좌무수이(坐撫樹而) 종일(終日)하고 탁청천이자결(濯淸川而自潔)이라 하던 한퇴지(韓退之)로 한 짝 하고 삼입낙양(三入洛陽) 인불식(人不識)하니 낭음비과(朗吟悲過) 동정호(洞庭湖)라 하던 여동빈(呂洞賓)으로 한 짝 하고 유상곡수(流觴曲水)에 혜풍(惠風)이 화창(和暢)이라 하던 왕희지(王羲之)로 웃짐 쳐서 부광(浮光)은 탁금(濯金)하고 정영(靜影)은 침벽(沈璧)이라 하던 범중엄(范仲淹)으로 말 몰리고 어양비고(漁陽鼙鼓) 동지래(動地來)하니 경파예상(驚罷霓裳) 우의곡(羽衣曲)이라 하던 백낙천(白樂天)으로 한 짝 하고 분수탈상증(分手脫相贈)하니 평생일편심(平生一片心)이라 하던 맹호연(孟浩然)으로 한 짝하고 청산(靑山)은 수첩(數疊)이요 벽계(碧溪)는 일곡(一曲)이라 하던 도연명(陶淵明)으로 웃짐 쳐서 통만고지(通萬古之) 득실(得失)하고 감백왕지흥망(鑑百王之興亡)이라 하던 사마천(司馬遷)으로 말 몰리고 위빈어부(渭濱漁父)로서 주천하(周天下) 팔백기업(八百基業)을 창개(創開)하던 강태공(姜太公)으로 한 짝 하고 운주유악지중(運籌帷幄之中)하며 결승천리지외(決勝千里之外)하던 장자방(張子房)으로 한 짝 하고 대몽(大夢)을 수선각(誰先覺)고 평생(平生)을 아자지(我自知)라 하던 제갈양(諸葛亮)으로 웃짐 쳐서 백일공사(百日公事)는 뇌양일조(耒陽一朝)요 연환묘계(連環妙計)는 적벽(赤壁)의 수공(首功)이라 하던 방사원(龐士元)으로 말 몰리고 용성오채(龍成五彩) 망기(望氣)하고 옥결(玉玦)을 자주 들던 범아부(范亞父)로 한 짝 하고 백등해위(白登解圍)하고 육출기계(六出奇計)하던 진평(陳平)으로 한 짝 하고 팔십만 수륙대도독(水陸大都督) 적벽오병(赤壁鏖兵)하던 주공근(周公瑾)으로 웃짐 쳐서 강남(江南)에 개가(凱歌) 불러 금릉(金陵)으로 돌아오던 조빈(曹彬)으로 말 몰리고 백수변정(白首邊庭)에 탕소요진(蕩掃妖塵)하던 마원(馬援)으로 한 짝 하고 광초구군(誑楚救君)하여 망사보국(忘死報國)하던 기신(紀信)으로 한 짝 하고 미보국은(未報國思)하고 공사절의(空死節議)하던 장순(張巡)으로 웃짐 쳐서 신사수절(身死守節)하여 충관백일(忠貫白日)하던 허원(許遠)으로 말 몰리고 연백만지수(連百萬之帥)하여 전필승(戰必勝) 공필취(攻必取)하던 한신(韓信)으로 한 짝 하고 두발(頭髮)이 상지(上指)하고 목자진렬(目眦盡裂)하던 번쾌(樊噲)로 한 짝 하고 남궁운대(南宮雲臺) 중흥공신(中興功臣) 이십팔장(二十八將) 중 제일공신(第一功臣) 등우(鄧禹)로 웃짐 쳐서 충의정성(忠義精誠) 앙관백일(仰貫白日)하던 곽자의(郭子儀)로 말 몰리고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는 초패왕(楚覇王)의 버금이요 추상절(秋霜節) 열일충(烈日忠)은 오자서(伍子胥)의 우희로다 봉금괘인(封金掛印)하고 독행천리(獨行千里)하던 관운장(關雲長)으로 한 짝 하고 장판파변(長板坡邊)에 퇴병백만(退兵百萬)하던 장익덕(張翼德)으로 한 짝 하고 당양장판(當陽長板) 만군중(萬軍中)에 아두(阿斗)를 품에 품고 백만진중(百萬陣中) 횡행(橫行)하여 도시담(都是膽)이라 하던 조자룡(趙子龍)으로 웃짐 쳐서 서량 명장(西涼名將)으로 보전육장(步戰六將)하던 마맹기(馬孟起)로 말 몰리고 오호(五湖)에 편주(扁舟) 타고 범소백(范少伯)을 따라가던 서시(西施)로 한 짝 하고 회두일소백미생(回頭一笑百媚生)하니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이라 하던 양귀비(楊貴妃)로 한 짝 하고 월궁옥장하(月宮玉帳下)에 추파(秋波)에 눈물짓던 우미인(虞美人)으로 웃짐 쳐서 영웅의 친근지의(親近之義) 일조(一朝)에 이간(離間)하던 초선(貂嬋)으로 말 몰리고 사마상여(司馬相如) 봉구황(鳳求凰)에 깨달아서 들어가던 정경패(鄭瓊貝)로 한 짝 하고 춘심궁액백화번(春心宮掖百花繁)한데 영작비래보희언(靈鵲飛來報喜言)하던 이소화(李蕭和)로 한 짝 하고 안소부대남비거(安巢不待南飛去)하니 삼오성희정재동(三五星稀正在東)이라 하던 진채봉(秦彩鳳)으로 웃짐 쳐서 위주충심(爲主忠心)은 보보상수(步步相隨) 부점사(不暫捨)라 위선위귀(爲仙爲鬼)하던 가춘운(賈春雲)으로 말 몰리고 월중단계(月中丹桂)를 수선절(誰先折)이냐 금대문장(今代文章)이 자유인(自有眞)이라 하던 계섬월(桂蟾月)로 한 짝 하고 하북명창(河北名唱)으로 삼절색천명(三絶色擅名)하던 적경홍(狄驚鴻)으로 한 짝 하고 북파영중(伏波營中)에 월영(月影)이 정류(正流)하고 옥문관(玉門關)의 춘색(春色)이 의희(依稀)라 하던 심요연(沈嫋烟)으로 웃짐 쳐서 청수담(淸水潭)에 수절(守節)하여 음곡(陰谷)에 생춘(生春)이라 하던 백릉파(白綾波)로 말 몰릴까 하노라. 노랫말 출처: 하응백 편저, 『창악집성』, 휴먼앤북스, 2011.
19세기 인기를 얻은 짝타령은 여러 성악 갈래에서 불렸으며, 가창갈래나 집단에 따라 전승 양상과 음악적 특징이 다르다. 송서로 불린 〈짝타령〉은 1자 1박으로 사설이 붙고 기본 선율형을 변형시키며 선율이 진행되는 송서의 보편적인 음악적 특징을 지닌다.
성기련, 「서울 송서형 짝타령 연구」, 『선화김정자교수화갑기념 음악학논문집』, 선화김정자교수화갑기념음악학논문간행위원회, 2002. 성기련, 「짝타령의 가창방식과 전승양상 연구」, 『한국음악연구』 52, 2012. 성기련, 「〈바리가〉와 짝타령 연구」, 『판소리연구』 28, 2014. 하응백 편저, 『창악집성』, 휴먼앤북스, 20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민속원, 1999.
임영선(林映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