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진보』에 수록된 「전적벽부」를 현토(懸吐)하여 부르는 서울식 송서
전적벽부는 『고문진보』에 수록된 소식의 「전적벽부」에 현토하여 부르는 서울식 송서이다. 20세기 초 경성방송국을 통해 방송되었으며, 현재는 전승되지 않는다.
『고문진보』에 수록된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 1036~1101)의 「전적벽부」가 20세기 초 전문음악인들이 부르면서 송서의 한 곡으로 자리잡았다.
○ 역사 변천 과정
송서 전적벽부는 『고문진보』에 수록된 북송(北宋)의 소식이 지은 「전적벽부」를 현토하여 부른다. 『고문진보』에는 「전적벽부」와 「후적벽부」가 전하는데, 「전적벽부」는 소식이 황주(黃州)에 유배 가서 1082년에 장강(長江)을 유람하면서 『삼국지(三國志)』의 적벽대전(赤壁大戰)을 떠올리며 7월에 지은 것이고, 「후적벽부」는 석 달 뒤에 지은 것이다.
「전적벽부」를 노랫말로 삼는 송서로는 서울식 송서인 전적벽부외에 서도식 송서 〈적벽부〉도 있다. 서도식 송서 〈적벽부〉가 우리말로 재구성된 가사를 부르는 것에 비해, 서울식 송서 전적벽부는 원문에 토만 달아 부른다.
전적벽부는 20세기 초 경성방송국을 통해 방송되었다. 당시 〈삼설기〉나 〈추풍감별곡〉 등 소설을 바탕으로 한 송서가 인기를 얻어 방송으로 송출되고 유성기음반에 취입된 것에 비해, 고문을 바탕으로 하는 전적벽부는 대중매체를 통해 유통된 횟수가 적다.
1935.08.13(화) 21:00- | 誦書 | 時調, 지름, 前「赤壁賦」 | 李文源/金永根(大笒) | 1937.07.19(월) 21:55- | 誦詩及 誦書 | 琵琶行, 赤壁賦(前篇) | 趙娘子 | 1937.08.21(토) 21:15- | 誦書 | 前赤壁賦 | 趙娘子 | 1939.08.20(일) 21:15- | 誦書와 詠詩 | 誦書, 詠詩 前赤壁賦 | 金龍雲 |
○ 전승 현황
평민 가객 집단 출신 이문원(李文源)을 비롯하여, 역시 평민 가객으로 추정되는 조낭자(趙娘子)ㆍ 유성옥(劉聖玉)ㆍ김용운(金龍雲) 등이 전적벽부를 불렀다. 현재 전적벽부는 전승되지 않는다.
임술지추칠월(壬戌之秋七月) 기망(旣望)에 소자여객(蘇子與客)으로 범주유어적벽지하(泛舟遊於赤壁之下)할 새 청풍(淸風)은 서래(徐來)하고 수파(水波)는 불흥(不興)이다 거주속객(擧酒屬客)하여 송명월지시(誦明月之詩)하며 가요조지장(歌窈窕之章)이러니 소언(少焉)에 월출어동산지상(月出於東山之上)하여 배회어두우지간(徘徊於斗牛之間)하니 백로(白露)는 횡강(橫江)하고 수광(水光)은 접천(接天)이라 종일위지소여(縱一葦之所如)하여 능만경지망연(凌萬頃之茫然)이니 호호호여(浩浩乎如) 빙허(憑虛) 어풍이(御風而) 부지기소지(不知其所止)하고 표표호여(飄飄乎如) 유세독립(遺世獨立)하여 우화이등선(羽化而登僊)이라 어시(於是)에 음주낙심(飮酒樂甚)하여 구현이가지(扣舷而歌止)하니 가(歌)에 왈(曰) 계도혜난장(桂櫂兮蘭槳)으로 격공명혜소류광(擊空明兮泝流光)이로다 묘묘혜여회(渺渺兮余懷)여 망미인혜천일방(望美人兮天一方)이로다 객유취통소자(客有吹洞簫者)하여 의가이화지(倚歌而和之)하니 기성(其聲)이 오오연(嗚嗚然)하여 여원(如怨) 여모(如慕) 여읍(如泣) 여소(如訴) 여음(餘音)이 요요(嫋嫋)하여 부절여루(不絶如縷)하니 무유학지잠교(舞幽壑之潛蛟)하고 읍고주지이부(泣孤舟之嫠婦)라 소자(蘇子) 추연(然) 정금(正襟)하고 위좌(危坐) 이문객왈(而問客曰) 하위기연야(何爲其然也)오 객왈(客曰) 월명성희(月明星稀)에 오작(烏鵲)이 남비(南飛)하니 차비조맹덕지시호(此非曹孟德之詩乎)아 서망하구(西望夏口)하고 동망무창(東望武昌)하니 산천(山川)이 상유(相)하여 울호창창(鬱乎蒼蒼)이라 차비맹덕지곤어주랑자호(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아 방기파(方其破) 형주(刑州) 하강릉(下江陵)하여 순류이동야(順流而東也)에 축로천리(舳艫千里)오 정기(旌旗) 폐공(蔽空)이라 쇄주(酒) 임강(臨江)하고 횡삭부시(橫槊賦詩)하니 고일세지웅야(固一世之雄也)러니 이금(而今)에 안재재(安在哉)오 항오여자(吾與子)로 어초어강저지상(漁樵於江渚之上)하여 여어하우미록(侶魚鰕而友麋鹿)이라 가일엽지편주(駕一葉之扁舟)하여 거포준이상속(擧匏樽以相屬)하니 기부유어(寄蜉蝣於) 천지(天地)에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이니 애오생지수유(哀吾生之須臾)하고 선장강지무궁(羨長江之無窮)이라 협비선이오유(挾飛仙以遨遊)하고 포명월이장종(抱明月而長終)이라 지불가호취득(知不可乎驟得)일새 탁유향어비풍(託遺響於悲風)하노라 소자왈(蘇子曰) 객역지부수여월호(客亦知夫水與月乎)아 서자여사(逝者如斯)로되 이미상왕야(而未嘗往也)며 영허자(盈虛者) 여피(如彼)로되 이졸막소장야(而卒莫消長也)니 개장자기변자이관지즉천지(蓋將自其變者而觀之則天地)도 증불능이일순(曾不能而一瞬)이요 자기불변자이관지즉물여아(自其不變者而觀之則物與我) 개무진(皆無盡)이니 이우하선호(而又何羨乎)리요 차부천지간(且夫天地間)에 물각유주(物各有主)라 구비오지소유(苟非吾之所有)인댄 수일호이막취(雖一毫而莫取)어니와 유강상지청풍(惟江上之淸風)과 여산간지명월(與山間之明月)은 이득지이위성(耳得之而爲聲)하고 목우지이성색(目寓之而聲色)하여 취지무금(取之無禁)이요 용지불갈(用之不竭)이니 시(是)는 조물자지무진장야(造物者之無盡藏也)라 이오여자지소공락(而吾與子之所共樂)이니라 객(客)이 희이소(喜而笑)하고 세잔(洗盞) 갱작(更酌)하니 효핵(肴核)이 기진(旣盡)이요 배반(杯盤)이 낭자(狼藉)라 상여(相與) 침자호주중(枕藉乎舟中)하여 부지동방지기백(不知東方之旣白)일러라 노랫말 출처 : 하응백 편저, 『唱樂集成』, Human&Books, 2011
전적벽부는 고문에 토만 달아 노래하는 송서로, 우리말로 재구성된 노랫말을 부르는 서도식 송서 〈적벽부〉에 비해 전통사회에서 성독(聲讀)하는 형태에 가깝다. 전적벽부가 20세기를 거치며 단절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송서 연행의 기반이었던 전통 사회 및 음악문화가 해체된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성기련, 「‘글 읽는 소리’의 전통 속에서 살펴 본 송서(誦書)의 개념 변화 및 사설붙임의 특징」, 『국악원논문집』 32, 2015. 이보형·성기련, 「국문해설」,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 19 시창 및 송서』,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하응백 편저, 『唱樂集成』, Human&Books, 20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민속원, 1999.
임영선(林映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