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설기(三說記)』 중 「삼사횡입황천기(三士橫入黃泉記)」를 부르는 서울식 송서
삼설기는 소설 『삼설기』 중 「삼사횡입황천기」를 노래하는 것으로 전통사회의 깊은 사랑 등에서 가창되었다. 1920년대부터는 경성방송국과 유성기음반을 통해 대중에게 향유되었다. 당시 주요 창자였던 가객 이문원(李文源)의 삼설기는 묵계월(墨桂月, 1921~2014)로 전승되었다.
19세기에 유행한 소설 『삼설기』 중 「삼사횡입황천기」를 전문음악인들이 노래하면서 송서의 한 곡으로 자리 잡았으며 주로 이문원에 의해 불렸다.
○ 역사 변천 과정
송서 삼설기는 19세기의 소설 『삼설기』 제1권 중 「삼사횡입황천기」를 노랫말로 삼아 부른다. 소설 『삼설기』의 「삼사횡입황천기」는 저승에 간 세 명의 선비가 염라대왕에게 소원을 비는데, 마지막 선비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자 염라대왕이 화를 낸다는 내용이다.
19세기 말 송서 삼설기는 깊은 사랑 등에서 가객에 의해 가창되었으며 당시 소설 『삼설기』가 널리 알려져 있었던 덕에 서울에서 송서 삼설기가 인기를 얻었다. 삼설기의 사설은 암기하기 어려워서 잘 부르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서울 지역에서 활동한 평민 가객 집단 출신 이문원이 삼설기를 잘 불렀다. 이문원은 1920년대 후반부터 경성방송국에서 삼설기를 여러 차례 노래하였고 유성기 음반으로도 취입하였다.
1927.03.08. 19:00- | 글읽는소리 | 三設記 | 李文源 | 1927.04.13. 19:00- | 時調獨吟 | 三設記 | 李文源 | 1935.10.31. 21:00- | 時調와 誦書 | 平時調, 지름, 짝타령, 三設記 | 李文源 | 1936.03.05. 21:15- | 時調와 誦書 | 時調, 三設記 | 李文源 | 1936.05.14. 21:45- | 時調와 誦書 | 時調, 三設記 | 李文源 | 1937.11.05. 20:45-21:00 | 時調, 三設記 | 李文源 | 1939.03.27. 20:40-21:00 | 時調, 誦書, 三設記 | 李文源 | 1940.01.03. 21:25-22:10 | 時調와 誦書 | 時調, 三設記 | 李文源 |
1933년 | Columbia40387-A | 古代小說朗讀 | 삼설긔(上) | 李文源 |
Columbia40387-B | 古代小說朗讀 | 삼설긔(下) | 李文源 |
○ 음악적 특징
이문원의 삼설기는 선율이 대체로 평이하게 진행되다가 때로 도약 진행이 나타나며 비교적 넓은 음역이 사용된다. 사설붙임은 대개 1자 1박의 등시가형이다.
○ 전승 현황
이문원의 삼설기는 묵계월로 이어졌다. 묵계월은 소리 공연을 다니다가 우연히 이문원을 만나 삼설기를 전수받았다.
우(右) 근진소지의단(謹陣所志矣段)은 의신(矣身)의 평생 소원(所願)을 자감앙소어(茲敢仰訴於) 천지만물(天地萬物) 사생도찰(死生都察) 명정지하(明政之下)하옵니다 출어세상(出於世上)하여 법가자제(法家子弟) 되어 나서 슬하(膝下)에 어린 체와 교동(嬌童)으로 자라나서 효행예절(孝行禮節) 어진 집에 생장(生長)하여 언충신행독경(言忠信行篤敬)하며 쇄소응대(灑掃應待) 진퇴지절(進退之節)과 애친경장(愛親敬長) 융사친우지도(隆師親友之道)를 안 연후에 학발쌍친(鶴髮雙親) 영양(榮養)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 현달(顯達)하고 계초명(鷄初鳴) 함관수(唅盥水)를 일을 삼아 노래자(老萊子)의 옷을 입고 자로(子路)의 부미(負米)함과 왕상(王祥)의 이어(鯉魚)낚고 맹종(孟宗)의 죽순 꺾어 증자(曾子)의 양지지효(養志之孝)를 주야갈력(晝夜竭力) 즐기다가 차차로 생각하니 부모의 은공이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원득삼산불로초(願得三山不老草)하여 배헌고당백발친(拜獻高堂白髮親)을 평생 갈력(竭力) 다한 후에 사방에 널리 놀아 만물물정(萬物物情) 경력(經歷)하고 삼산(三山) 풍경(風景) 좋은 곳에 청천삭출(靑天削出) 높은 뫼는 천작(天作)으로 생겨 있어 배산임류(背山臨流)하니 춘수(春水)는 만사택(滿四澤)이요 하운(夏雲)은 다기봉(多奇峰)이라 명당(明堂)에 터를 닦아 초당(草堂)을 지어 내니 토계삼등(土階三等)이요 모자(茅茨)를 부전(不翦)이라 계명죽오(鷄鳴竹塢)하고 견폐화촌(犬吠花村)이라 앞내의 고기 낚고 뒷뫼에 약(藥)을 심어 실과(實果)는 절(節)을 찾고 백곡(百穀)이 풍등(豐登)이라 우양자귀촌항(牛羊自歸村巷)이요 동치불식의관(童稚不識衣冠)이라 낙화방초무심처(落花芳草無尋處)에 만학천봉독폐문(萬壑千峯獨閉門)이라 한운담영시수가(閑雲潭影是誰家)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세사(世事)는 금삼척(琴三尺)이요 생애(生涯)는 주일배(酒一盃)라 서정강상월(西亭江上月)이 뚜렷이 밝았는데 동각(東閣)의 설중매(雪中梅)는 향기(香氣)로이 피었에라 풍성학려(風聲鶴唳)는 사시무진(四時無盡)이요 녹죽창송(綠竹蒼松)은 천고불변(千古不變)이라 세상영욕(世上榮慾) 다 버리고 청라연월(靑蘿烟月) 대사립(笠)에 백운심처(白雲深處) 찾아가니 적적시문(寂寂柴門) 개 짖는데 요요운학(遙遙雲鶴) 그 뉘 알리 인간공명(人間功名) 모르거든 세상시비(世上是非) 어이 알리 황금부다교불심(黃金不多交不深)하니 어느 벗이 날 찾으리 춘림(春林)에 문두견(聞杜鵑)이 어제러니 어느 사이에 추안(秋雁)이 우전성(又傳聲)이라 한왕서래(寒往署來)하니 사시(四時)를 짐작하고 의약복서(醫藥卜筮) 알겠으니 그 무엇이 부족하랴 옛사람 이른 말이 지족(知足)이면 불욕(不辱)이라 하였거니 부귀(富貴)하면 위구(危懼)로다 오경대루화만상(五更待漏靴滿霜)이 위태롭고 괴로워라 공자(孔子) 묵적(墨翟) 언변(言辯)에도 핍박(逼迫)함을 보았나니 오자서(伍子胥)의 촉루검(屬鏤劍)과 함양시상탄황견(咸陽市上嘆黃犬)을 모른다야 관계하랴 세상공명간목안(世上功名看木雁)이요 좌중담소신상귀(坐中談笑愼桑龜)라 알아내야 무엇하며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지도(治國平天下之道)를 모른다야 관계하랴 팔진미찬(八珍味饌) 만반진수(滿盤珍羞) 아니라도 벽계청류(碧溪淸流) 은린옥척(銀鱗玉尺) 낚은 고기 박주(薄酒) 산채(山菜) 맥반(麥飯)으로 적구충장(適口充腸)하여 가고 고대광실(高臺廣室) 수호문창(繡戶門窓) 주박은병(珠箔銀屛) 아니라도 모옥수삼간(茅屋數三間)에 남창온돌(南窓溫突) 정쇄(淨灑)한데 양생법(養生法) 공부하여 연년익수(延年益壽) 하리로다 금의(錦衣)를 잊었거든 포의(布衣)를 부끄러랴 죽장망혜(竹杖芒鞋)로 기산영수(箕山潁水)에 배회(徘徊)하니 일발천산부취색(一拔靑山復翠色)이라 백운(白雲)은 천리만리(千里萬里) 명월(明月)은 전계후계(前溪後溪)로다 산은 첩첩 만중(萬重)한데 삼산반락청천외(三山半落靑天外)요 물은 충충 소(沼)이 되니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洲)라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齊飛)하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이라 바람 불어 송생슬(松生瑟)이요 안개 피어 학성홍(壑成虹)이라 주걱새 울어나니 천고절(千古節)이요 솥적다 하는 소래 일년풍(一年豊)이라 운무심이출수(雲無心而出岫)하니 다기봉(多奇峯)이 자작(自作)이라 방장봉래삼신산(方丈蓬萊三神山)이 버렸난데 아미산월반륜추(蛾嵋山月半輪秋)와 적벽강상무한경(赤璧江上無限景)을 어디다가 비할소냐 십장생(十長生)이 벌여 있어 천만세를 누리는데 월출낙조(月出落照) 바라보니 무비경개절승(無比景槪絶勝)이라 주(周)나라 강태공(姜太公)은 위수(渭水)에 고기 낚고 강상 풍경 좋은 곳에 만사무심일조간(萬事無心一釣竿)이요 한(漢)나라 제갈양(諸葛亮)은 남양(南陽)에 밭을 갈아 초당춘수(草堂春睡) 긴긴 날에 양보음(梁甫吟) 읊으면서 불구문달(不求聞達)하였나니 도당씨(陶唐氏)적 시절에는 영천(潁川)에 귀를 씻고 문답하는 맑은 덕(德)은 소허(巢許)밖에 또 있는가 문장공명(文章功名)하던 일을 이리저리 헤아리니 아득하고 어려워라 용방비간(龍逄比干) 곧은 충절 만세에 유전한들 저마다 어이 하며 위청불패유천행(衛靑不敗由天幸)이요 이광무공연수기(李廣無功緣數奇)라 지용(智勇)으로 못하려니 장수(將帥)되기 어려우며 안자곤어누항(顔子困於陋巷)하고 가의굴어장사(賈誼屈於長沙)하니 도학(道學)인들 무엇하며 사마천(司馬遷) 소동파(蘇東坡)는 만고문장 빛난 말은 하필성장(下筆成章)하건마는 문장궁액(文章窮厄) 면(免)할소냐 왕발(王勃)의 등왕각서(騰王閣序) 명작이라 하건마는 삼척미명(三尺微命) 네 글자가 처량할손 단명구(短命句)라 가련하기 측량 없다 이태백(李太白)의 백두시(白頭詩)와 일일수경(一日須傾) 삼백배(三百盃)는 채석강(采石江)에 빠졌으니 두목지(杜牧之)의 취과양주귤만거(醉過楊州橘滿車)는 호탕(豪蕩)하여 쓸데없고 가소롭다 형경(刑卿)이여 역수한파(易水寒波) 저문 날에 백홍관일(白虹貫日) 모르고서 일검횡장(一劍橫長) 전혀 믿고 태자단(太子丹)을 이별하니 그 아니 위태(危殆)한가 번화(繁華)는 비소원(非所願)이요 부귀(富貴) 권세(權勢) 비웃으며 오동월향회중조(梧桐月向懷中照)요 양류풍래면상취(楊柳風來面上吹)라 병 없고 성한 몸이 희황상세(羲皇上世) 한민(閑民)되어 역대성쇠(歷代盛衰) 헤아리니 영웅호걸 일조공(一朝空)이요 고인금인약류수(古人今人若流水)라 백이숙제(白夷叔齊) 착한 이와 도척(盜跖) 같은 몹쓸 놈도 죽어지면 허사로다 역려건곤(逆旅乾坤)에 부생(浮生)이 약몽(若夢)하니 즐거움도 얼만고 병촉야유(秉燭夜遊)하며 독서담론(讀書談論) 자락(自樂)하니 한가하기 측량 없다 만산 풍경 바라보며 임청류이부시(臨淸流而賦詩)하니 흥미가 무궁이라 춘풍도리화개야(春風桃李花開夜)와 추우오동엽락시(秋雨梧桐葉落時)에 남린(南隣) 북촌(北村) 다 청(請)하여 팽양재우(烹羊宰牛)하고 두주자락(斗酒自樂)이라 권군갱진일배주(勸君更進一盃酒)하니 일배일배부일배(一盃一盃復一盃)라 탄금(彈琴)하고 장소(長嘯)하며 산가촌적(山歌村笛)으로 희유동락(喜遊同樂)하니 부지하조하갑자(不知何朝何甲子)라 일생이 이러하니 상산사호(商山四皓) 죽림칠현(竹林七賢) 한가롭다 이만하면 적송자(赤松子) 안기생(安期生)을 부러하랴 범려(范蠡)의 오호주(五湖舟)와 장자방(張子房)의 사병벽곡(謝病辟穀) 소광(imagefont廣)의 산천금(散千金)과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歸去來)는 모두 다 작은 일이 아니로다 영귀함이 이에서 더할소냐 이목지소호(耳目之所好)와 심지지소락(心志之所樂)이 이밖에 또 있는가 다남자즉다구(多男子卽多懼)라 하니 아들 형제 딸 하나에 내외손(內外孫)이 번성하여 각색 자미 즐길 적에 곽분양(郭汾陽)의 백자천손(百子千孫)인들 이에서 더할소냐 개경연이좌화(開瓊筵而坐花)하며 열친척지정화(列親戚之情話)하고 서천륜지낙사(序天倫之樂事)로다 비우상이취월(飛羽觴而醉月)하니 의가지락(宜家之樂)이 족하도다 일월성신광음중(日月星辰光陰中)에 부귀(富貴) 인간(人間) 유수(流水)로다 다만 아끼노라 청춘이 빨리 간들 어이 하리 한심할사 건곤(乾坤)이 불로월장재(不老月長在)하니 적막강산금백년(寂寞江山今百年)이라 세상에 어렵고 못할 일이 장생불사(長生不死)뿐이로다 진시황(秦始皇) 한무제(漢武帝)도 채약구선(採藥求仙)하여 연년익수(延年益壽)하려다가 변통무로(便通無路)하였나니 그야 어이 바라리요 지분지명(知分知命) 병(病) 없고 성한 몸이 명철보신(明哲保身)하랴 하면 더할 것이 없사오니 수삼갑자(數三甲子) 누리다가 와석종신(臥席終身) 고종명(考終命)이 원(願)이오니(이로소이다) 복걸삼상교시(伏乞參商敎是) 후에 복망련긍지(伏望憐矜之)하시며 애지중지하사 의소원(依所願) 처치하여 주심을 천만복축(千萬伏祝)하나이다 하였거늘 염왕(閻王)이 남필(覽畢)에 대로(大老)하야 꾸짖어 왈 욕심 많고 무소불측(無所不測)한 놈아 네 들어라 내가 천지개벽 이후로 만물보응(萬物報應) 윤회지과(輪回之科)와 사생화복(死生禍福) 길흉지권(吉凶之權)을 모다 가지고도 억만 창생(蒼生)의 수요장단(壽夭長短)과 선악 시비를 평균히 조석으로 살피는 터에 성현 군자도 하지 못할 일을 모두 달라 하니 그 노릇을 임의로 할 양이면 염라왕(閻羅王)을 떼어 놓고 내 스스로 하리라 하더라 노랫말 출처 : 하응백 편저, 『창악집성(唱樂集成)』, 휴먼앤북스, 2011.
삼설기는 20세기 초 라디오 방송과 유성기 음반을 통해 대중에게 향유되었으며, 이 시기에 녹음된 유성기음반과 이문원의 송서를 전수받은 묵계월의 소리를 통해 오늘날까지 삼설기가 전승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송서: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2009) 경기송서-송서ㆍ율창: 경기도 무형문화재(2011)
권오성, 「송서 <삼설기>의 음악적 특징」, 한국음반학 10, 2000. 성기련, 「20세기 초엽 서울식 송서(誦書)의 향유문화와 전승」, 『한국음반학』 12, 2002. 하응백 편저, 『창악집성(唱樂集成)』, 휴먼앤북스, 20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민속원, 1999.
임영선(林映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