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하, 우조지름시조 “석인이 이승” ©국악음반박물관 hearkoreaTV:김월하 시조창 ‘석인이’ Wolha Kim 'Seokini'(Korean poem song) 1970년경 녹음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다른 이름 우조질림[羽調叱音] 정의 칠언율시(七言律詩)에 우리말 토(吐)를 달아 높은 음으로 질러 내며 꿋꿋한 우조격(羽調格)으로 부르는 시조 요약 우조지름시조는 ‘우조격의 지름시조’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초장만 질러 부르는 〈지름시조〉 및 〈여창지름시조〉와 달리 중장과 종장에도 높은 음으로 지르는 곳이 있고 선율형도 많이 다르다. 한시(漢詩) 칠언율시에 우리말 토를 단 것을 노랫말로 쓴다. 유래 우조지름시조는 서울의 ‘우대’, 즉 누각골(지금의 누상동과 누하동) 일대의 가객들 사이에서 부르기 시작한 창제이다. 〈우조시조〉와 함께 조선 고종(高宗) 때 가무별감(歌舞別監)을 지낸 최상욱(崔相旭, 1875~1951)에게서 비롯되었다. 내용 ○ 전승 현황 우조지름시조는 홍원기(洪元基, 1922~1997)와 김태영(金兌英) 등에게 전승되었다. 서울 일원에서는 “석인(昔人)이 이승(已乘)”으로 시작하는 당(唐)나라 시인 최호(崔顥, 704~754)의 시 「황학루(黃鶴樓)」를 즐겨 불렀다. 홍원기의 창제와 김태영의 창제로 구분되는데, 중장의 ‘청천역력한양수(晴川歷歷漢陽樹)여늘’ 부분에서 가사 붙임새가 다르다. 김태영의 창제는 이양교(李良敎, 1928~2019)에게 전승되었다. 한편, 정경태(鄭坰兌, 1916~2003)의 석암제(石菴制) 우조질림[叱音]은 「황학루(黃鶴樓)」 외에 “등왕고각(滕王高閣)이”로 시작하는 작자 미상의 칠언율시도 얹어 부른다. ○ 음악적 특징 우조지름시조의 선율형은 같은 우조격의 평시조인 〈우조시조〉와 선율형이 전혀 다르다. 같은 지름 계열의 시조 중 〈지름시조〉와 〈여창지름시조〉는 초장만 높은 음으로 지르고 중장과 종장은 평시조와 같으나, 우조지름시조는 중장과 종장에도 높은 음들이 출현한다. 황(黃:E♭4)ㆍ태(太:F4)ㆍ중(仲:A♭4)ㆍ임(林:B♭4)ㆍ남(南:C5)의 5음이 고루 출현하며, 최고음은 청태(汰:F5)이다. 노랫말 ⋅우조지름시조 “석인이 이승”(최호 한시) (초장) 석인(昔人)이 이승(已乘) 황학거(黃鶴去)하니 차지(此地)에 공여(空餘) 황학루(黃鶴樓)ㅣ로다 (중장) 황학(黃鶴)이 일거(一去) 불부반(不復返)하니 백운천재공유유(白雲千載空悠悠)라 청천역력한양수(晴川歷歷漢陽樹)여늘 방초처처앵무주(芳草萋萋鸚鵡洲)ㅣ로다 (종장) 일모향관(日暮鄕關)이 하처시(何處是)요 연파강상(烟波江上)에 사인수(使人愁)를. ⋅우조질림 “등왕고각이”(석암제) (초장) 등왕고각(滕王高閣)이 임강저(臨江渚)하여 패옥명란파가무(佩玉鳴鑾罷歌舞)라 (중장) 화동조비남포운(畵棟朝飛南浦雲)이요 주렴모권서산우(珠簾暮捲西山雨)ㅣ라 한운담영일유유(閑雲潭影日悠悠)하니 물환성이도기추(物換星移度幾秋)오 (종장) 각중제자금하재(閣中帝子今何在)오 함외장강공자류(檻外長江空自流)ㅣ런가. 특징 및 의의 우조지름시조는 한시를 우리 고유의 노래로 표현하고자 한 대표적인 예이다. 지름계통의 여느 시조창곡의 곡태와는 또 다른 음악적 변화를 꾀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타 우조지름시조는 극히 일부의 한시를 노랫말로 하는 점에서, 다양한 시조를 노랫말로 하는 〈우조시조〉와 다르다. 참고문헌 이양교, 『시조창보』(증보재판), 현대문화사, 1994. 정경태, 『수정주해 선율선 시조보』(5판), 명진문화, 1996. 집필자 문현(文鉉) 검색태그 우조질림 최상욱 홍원기 김태영 정경태 칠언율시 황락루시 국악사전의 모든 원고는 공공누리 제2유형입니다.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외에는 출처 표기 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국악사전의 모든 복합매체자료(사진・도판・음원・영상)은 공공누리 제4유형입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외에는 출처 표기 후 사용할 수 있으나, 내용을 변형하거나 재가공할 수 없습니다.
우조질림[羽調叱音]
칠언율시(七言律詩)에 우리말 토(吐)를 달아 높은 음으로 질러 내며 꿋꿋한 우조격(羽調格)으로 부르는 시조
우조지름시조는 ‘우조격의 지름시조’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초장만 질러 부르는 〈지름시조〉 및 〈여창지름시조〉와 달리 중장과 종장에도 높은 음으로 지르는 곳이 있고 선율형도 많이 다르다. 한시(漢詩) 칠언율시에 우리말 토를 단 것을 노랫말로 쓴다.
우조지름시조는 서울의 ‘우대’, 즉 누각골(지금의 누상동과 누하동) 일대의 가객들 사이에서 부르기 시작한 창제이다. 〈우조시조〉와 함께 조선 고종(高宗) 때 가무별감(歌舞別監)을 지낸 최상욱(崔相旭, 1875~1951)에게서 비롯되었다.
○ 전승 현황 우조지름시조는 홍원기(洪元基, 1922~1997)와 김태영(金兌英) 등에게 전승되었다. 서울 일원에서는 “석인(昔人)이 이승(已乘)”으로 시작하는 당(唐)나라 시인 최호(崔顥, 704~754)의 시 「황학루(黃鶴樓)」를 즐겨 불렀다. 홍원기의 창제와 김태영의 창제로 구분되는데, 중장의 ‘청천역력한양수(晴川歷歷漢陽樹)여늘’ 부분에서 가사 붙임새가 다르다. 김태영의 창제는 이양교(李良敎, 1928~2019)에게 전승되었다. 한편, 정경태(鄭坰兌, 1916~2003)의 석암제(石菴制) 우조질림[叱音]은 「황학루(黃鶴樓)」 외에 “등왕고각(滕王高閣)이”로 시작하는 작자 미상의 칠언율시도 얹어 부른다.
○ 음악적 특징 우조지름시조의 선율형은 같은 우조격의 평시조인 〈우조시조〉와 선율형이 전혀 다르다. 같은 지름 계열의 시조 중 〈지름시조〉와 〈여창지름시조〉는 초장만 높은 음으로 지르고 중장과 종장은 평시조와 같으나, 우조지름시조는 중장과 종장에도 높은 음들이 출현한다. 황(黃:E♭4)ㆍ태(太:F4)ㆍ중(仲:A♭4)ㆍ임(林:B♭4)ㆍ남(南:C5)의 5음이 고루 출현하며, 최고음은 청태(汰:F5)이다.
⋅우조지름시조 “석인이 이승”(최호 한시) (초장) 석인(昔人)이 이승(已乘) 황학거(黃鶴去)하니 차지(此地)에 공여(空餘) 황학루(黃鶴樓)ㅣ로다 (중장) 황학(黃鶴)이 일거(一去) 불부반(不復返)하니 백운천재공유유(白雲千載空悠悠)라 청천역력한양수(晴川歷歷漢陽樹)여늘 방초처처앵무주(芳草萋萋鸚鵡洲)ㅣ로다 (종장) 일모향관(日暮鄕關)이 하처시(何處是)요 연파강상(烟波江上)에 사인수(使人愁)를. ⋅우조질림 “등왕고각이”(석암제) (초장) 등왕고각(滕王高閣)이 임강저(臨江渚)하여 패옥명란파가무(佩玉鳴鑾罷歌舞)라 (중장) 화동조비남포운(畵棟朝飛南浦雲)이요 주렴모권서산우(珠簾暮捲西山雨)ㅣ라 한운담영일유유(閑雲潭影日悠悠)하니 물환성이도기추(物換星移度幾秋)오 (종장) 각중제자금하재(閣中帝子今何在)오 함외장강공자류(檻外長江空自流)ㅣ런가.
우조지름시조는 한시를 우리 고유의 노래로 표현하고자 한 대표적인 예이다. 지름계통의 여느 시조창곡의 곡태와는 또 다른 음악적 변화를 꾀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조지름시조는 극히 일부의 한시를 노랫말로 하는 점에서, 다양한 시조를 노랫말로 하는 〈우조시조〉와 다르다.
이양교, 『시조창보』(증보재판), 현대문화사, 1994. 정경태, 『수정주해 선율선 시조보』(5판), 명진문화, 1996.
문현(文鉉)
우조지름시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