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인 12가사 중 하나로, 중국의 시인 이백(李白, 701~762)이 지은 한시 양양가에 한글로 토를 달아 부르는 노래
12가사의 한 곡으로, 당나라 시인 이백이 지은 한시 양양가에 우리말로 토(吐)를 달아 부르는 노래이다. 선율은 〈처사가〉와 같다. 전체 10장으로 구성되고, 5박 장단으로 부른다. 노래의 속도는 대략 1분에 24정간이며, 약 24분이 소요된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백이 지은 양양가는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양양 지역의 명승고적을 보고 느낀 감정을 술을 예찬하는 내용과 함께 표현한 시이다. 양양가에 토를 달아 부른 노래 형태는 19세기 중반 이후에 등장한다. 19세기 가집 『(육당본)청구영언(靑丘永言)』(1852 추정)에 노랫말이 전하고, 『교방가요(敎坊歌謠)』(1872)에도 곡명이 보여 19세기 중후반 무렵 전국적으로 널리 불린 것으로 보인다.
○ 역사 변천과정
중국 시인 이백이 지은 양양가는 8세기에 쓰여진 오래된 시이지만, 이 시에 우리말로 토를 달아 부르는 현행 12가사의 형태는 19세기 중후반 무렵에 등장하였다. 19세기 중엽 진주지방의 가무악을 기록한 『교방가요』에는 여덟 곡의 가사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에 양양가의 곡명이 보인다. 이로써 19세기 중후반에는 양양가가 〈권주가〉ㆍ〈춘면곡〉ㆍ〈처사가〉ㆍ〈상사별곡〉ㆍ〈매화타령〉ㆍ〈행군악(길군악)〉과 함께 진주를 비롯한 지방 교방에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다른 가사에 비해 반주선율이 전하는 고악보는 매우 적지만, 양금 반주 선율이 『아양금보(峨洋琴譜)』에 전하고 있어, 양양가도 다른 가사와 마찬가지로 기악 반주가 곁들여 졌음을 알 수 있다.
『아양금보』 양양가는 현행 제3장 8장단까지의 부분이 기록되어 있다. 『아양금보』 이후 선율이 단순화되는 과정을 거쳐 현행에 이르고 있다.
○ 연행 시기 및 장소
다른 12가사와 마찬가지로 전문가가 불렀고, 그 노래를 즐긴 향유층은 선비들이었으므로 주로 풍류방이나 누정(樓亭)과 같은 공간에서 연행되었을 것으로 본다. 오늘날에는 무대에서 공연형태로 주로 연주된다.
○ 악대와 악기편성
19~20세기 고악보 중에는 거문고ㆍ양금ㆍ생황 등의 악기가 연주한 가사 반주선율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가사를 노래할 때 현악기나 관악기로 반주된 사실을 보여주는데, 점차 현악기 반주는 하지 않고 관악기 위주의 편성으로 연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근자에는 피리ㆍ대금ㆍ해금ㆍ장구 위주로 반주되고, 상황에 따라 악기의 수를 가감하기도 한다. 반주 선율은 가곡처럼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노래 선율의 흐름에 따라 연주자가 자유롭게 연주하는 수성(隨聲)가락으로 되어 있다.
○ 악곡 구성ㆍ형식ㆍ장단ㆍ음계 및 선법ㆍ기타
양양가는 총 10장으로 구성된다. 장 구분은 한시의 단락과 상관없이 같은 종지 선율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 장단은 시조와 같은 5박으로 제1장 7장단, 제2~10장은 12장단으로 되어 있다. 전체 10장 중 제1~7장까지의 선율은 〈처사가〉와 동일하다. 제8~10장은 제7장의 선율이 반복된다. 제3ㆍ5ㆍ6장의 선율이 같고, 제4ㆍ7ㆍ8ㆍ9ㆍ10장의 선율이 같다.
음계는 〈처사가〉와 같다. 즉, 제1장의 경우에는 황(黃:E♭4)ㆍ태(太:F4)ㆍ중(仲:A♭4)ㆍ임(林:B♭4) 4음이 쓰여 황종이 중심음이 되는 평조(즉, sol선법)처럼 보이나, 제2장부터 무(無:D♭5)가 쓰임으로써 황(黃:E♭4)ㆍ태(太:F4)ㆍ중(仲:A♭4)ㆍ임(林:B♭4)ㆍ무(無:D♭5)의 구성음이 되어 레(re)선법의 형태를 띤다.
가사 양양가의 노랫말은 이백의 시 양양가를 그대로 옮기고, 우리말로 토를 단 것이다. 양양가에는 양양의 옛 인물인 산간(山簡, 253년 ~ 312년)과 양호(羊祜, 221년 ~ 278년)가 등장한다. 제3장에 나오는 산옹(山翁)은 널리 인재를 양성한 인물로 노래에서는 질펀하게 취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웃게 하였고, 제7장에 나오는 양공(羊公)은 양양에서 신망을 얻었고, 세상을 떠나자 백성들이 몹시 슬퍼했던 내용이 담겨있다. 산간(山簡)과 양호(羊祜)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술을 예찬하는 내용이다.
장 | 노랫말 | 해설 |
1장 | 낙일(落日)이 욕몰현산서(欲沒峴山西)허니 도착접리화하미(倒着接䍦花下迷)라 |
지는 해 현산의 서쪽으로 넘어가려 하는데 흰 모자 거꾸로 쓰고 꽃 아래서 헤매네 |
2장 | 양양소아제박수(襄陽小兒齊拍手)허니 난가쟁창백동제(攔街爭唱白銅鞮)라 방인(傍人)은 차문소하사(借問笑何事)오 |
양양의 아이들 일제히 손뼉 치며 길 가로막고 다투어 <백동제>를 부르니 옆 사람들 무엇 대문에 웃는가 묻네 |
3장 | 소쇄산옹취사니(笑殺山翁醉似泥)라 노자작앵무배(鸕鶿杓鸚鵡盃)로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을 |
우습구나 산옹이여 곤드레 취했도다 노자작과 앵무배로 백 년 삼만 육천 일 동안 |
4장 | 일일수경삼백배(一日須傾三百杯)라 요간한수압두록(遙看漢水鴨頭綠)허니 흡사포도초발배(恰似葡萄初醱醅)라 |
하루에 마땅히 술 삼백 잔은 기울여야지 아득히 바라보이는 한수는 오리 머리처럼 푸르니 마치 포도주 처음 걸러낸 듯하네 |
5장 | 차강(此江)이 약변작춘주(若變作春酒)면 누국(壘麯)을 편축조구대(便築糟丘臺)라 천금준마(千金駿馬)로 환소첩(喚少妾)허여 |
이 강물이 변하여 봄술이 된다면 쌓여 있던 누룩이 바로 술지게미 언덕 되리라 천금짜리 좋은 말로 젊은 첩과 바꾸어서 |
6장 | 소좌조안가락매(笑坐彫鞍歌落梅)라 거방(車傍)에 측괘일호주(側掛一壺酒)허고 봉생용관(鳳笙龍管)행상최(行相催)라 |
잘 꾸민 안장에 웃음 짓고 앉아 <낙매곡> 노래하네 수레 옆엔 비스듬히 술 한병 걸려 있고 봉황 모양 생황과 용무늬 피리가 서로 길을 재촉하네 |
7장 | 함양시상(咸陽市上)에 탄황견(歎黃犬)이 하여월하(何如月下)에 경금루(傾金壘)오 군불견진조양공일편석(君不見晋朝羊公一片石)헌다 |
함양 저잣거리에서 누런 개를 떠올리며 한탄한 건 달빛 아래에서 금 술잔을 기울인 것과 어떠한가 그대는 진나라 양공의 한 조각 비석을 보지 못하는가 |
8장 | 구두박락생매태(𪛃頭剝落生苺苔)라 누역불능위지타(淚亦不能爲之墮)요 누역불능위지추(淚亦不能爲 之墮)요 심역불능위지애(心亦不能爲之哀)라 |
비석의 거북머리 다 떨어져 이끼만 끼었네 눈물 역시 그를 위해 흘릴 수 없고 마음 역시 그를 위해 슬퍼할 수 없네 |
9장 |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불용일전매(不用一錢買)허니 옥산(玉山)이 자도비인퇴(自倒非人頹)라 서주작역사당(舒州酌力士鏜)으로 |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살 수 있고 옥산은 절로 무너졌지 사람들이 무너뜨린 것 아니라네 서주의 술국자와 장사 새겨진 술 거르는 솥이여 |
10장 | 이백(李白)이 여이동사생(與爾同死生)을 양왕운우금안재(襄王雲雨今安在)오 강수동류원야성(江水東流猿夜聲)을 |
나 이백은 너희들과 함께 죽고 살리라 양왕의 구름과 비는 지금 어디 있는가 강물은 동으로 흐르고 원숭이는 밤에 소리 내어 우네 |
양양가와 〈처사가〉 제1장의 선율은 같고, 제2장 이하는 노랫말의 길이에 따라 선율을 줄이거나 확대하였을 뿐 전체 선율 흐름은 같다. 12가사 중 〈상사별곡〉ㆍ〈처사가〉ㆍ양양가 3곡만 5박 장단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시조의 영향으로 보인다. 〈상사별곡〉에서 〈처사가〉 선율이 비롯되었고, 〈처사가〉 선율 대부분이 양양가와 같아서 3곡의 관련성이 나타난다.
국가무형문화재(1971)
하규일(河圭一, 1867~1937)은 양양가를 〈처사가〉ㆍ〈매화타령〉ㆍ〈수양산가〉와 함께 격조가 낮다고 하여 이왕직아악부 아악생들에게 지도하지 않았다. 하규일이 언급한 격조는 노랫말에 의한 구분이 아니고, 선율과 창법에 의해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육당본)청구영언』 『교방가요』 『아양금보』
김창곤, 「상사별곡 · 처사가 · 양양가의 파생관계 재고」, 『한국음악연구』 37, 2005. 임병옥, 「처사가와 양양가의 악조에 대한 연구」, 『국악교육』 48, 2019.
김창곤(金昌坤),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