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군악(路軍樂), 도군악(道軍樂), 행군악(行軍樂)
절화(折花)
조선후기 군영에서 세악수가 연주하던 《취타계주(吹打繼奏)》 또는 《취타풍류(吹打風流)》의 두 번째 곡
길군악은 행악의 한 곡이며, 〈절화(折花)〉ㆍ〈노군악(路軍樂)〉 등으로도 불린다. 《취타계주(吹打繼奏)》와 대풍류의 한 갈래인 《취타풍류》에서는〈취타(吹打)〉에 이어 두 번째 곡으로 연주한다.
○ 역사 변천 과정
길군악은 『서금보(西琴譜)』에 <노군악(路軍樂)>이라는 양금곡으로 실려 있고, 거문고 악보인 『소영집성(韶英集成)』(1822)에 <파진악(破陣樂)>이라는 악곡이 ‘속칭(俗稱) 노군악(路軍樂)’으로 실려 있다. 19세기 『삼죽금보(三竹琴譜)』에는 〈노군악(路軍樂)〉이라는 거문고 곡으로 들어 있다.
○ 음악적 특징
길군악은 모두 네 장으로 구성되며, 제3장과 제4장 사이에 ‘돌장 1’, ‘돌장 2’가 추가된다. 돌장 1과 돌장 2는 각각 제1장과 제2장의 반복이다.
장단은 〈취타〉보다 한배가 짧은 여덟 박짜리 장단이다. 그러나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유인본(油印本) 악보에는 현재 《영산회상(靈山會相)》의 〈군악(軍樂)〉과 같이 한 장단이 열두 박으로 기보되어 있다. 아악부 악보의 세 정간(井間)이 지금 길군악의 한 박이고, 아악부 악보의 두 장단이 지금의 한 장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음계는 태(太:F4)ㆍ고(姑:G4)ㆍ임(林:B♭4)ㆍ남(南:C4)ㆍ황(淸黃:E♭5)의 다섯 음이 사용되나, 다음 곡인 〈길타령〉으로 넘어가기 전인 제4장부터는 고(姑:G4)가 중(仲:A♭4)으로 대체되며 황(黃:E♭4)ㆍ태(太:F4)ㆍ중(仲:A♭4)ㆍ임(林:B♭4)ㆍ남(南:C4)의 다섯 음이 출현한다. 이 경과구(經過句)의 선율을 『삼죽금보』에서는 〈가군악(家軍樂)〉이라 했다.
편성 악기 중 향피리를 한 구멍 치켜 잡고 분다.
고려시대에 당악정재(唐樂呈才)인 <포구락(抛毬樂)>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된 <절화령>이 보이고, 『세종실록』 권116에서는 <절화>를 1447년(세종 29년)에 간행된 『시용속악보(時用俗樂譜)』에 전하는 악곡의 하나로 전하며, 『경국대전(經國大典)』 권3에서는 고려시대 당악정재의 반주음악을 전승한 당악곡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길군악의 아명 '절화'는 이왕직아악부 시절에 붙인 것이고, 앞의 <절화>와 길군악이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12가사(歌詞)의 한 곡인 〈길군악〉과도 다른 곡이며, 풍물놀이나 무악(巫樂)의 장단 이름인 ‘길군악 장단’과도 관련이 없다.
『삼죽금보』『서금보』『희유』
장사훈, 『최신 국악총론』, 세광음악출판사, 1985. 오용록, 「해금 길군악의 여러 선율」, 『한국음악연구』 28, 1998. 이숙희, 「조선조 군례에 사용한 음악의 종류와 성격」, 『한국음악연구』 32, 2002. 장사훈, 「길군악고」, 『국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9. 황준연, 「쌍화곡과 길군악(절화)」, 『민족음악학』 14, 1992.
김창곤(金昌坤),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