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인 12가사 중 하나로, 화창한 봄날을 배경으로 남녀의 만남과 이별, 그리움을 표현한 노래
12가사의 한 곡으로 화창한 봄날 흥에 취한 남성이 여인을 만나고, 이별하고, 그리워하다 결국에는 장부(丈夫)의 공업(功業)을 이룬 후 다시 만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의 노래이다. 12가사 중에서도 격조 있는 곡으로 꼽힌다. 전체 8장으로 구성되고, 곡 전체가 6박 장단으로 되어 있다. 노래의 속도는 대략 1분=24정간(♩=20) 정도로 약 15분 정도 소요된다.
춘면곡은 12가사 중에서도 등장 시기가 이른 곡이다. 이하곤(李夏坤:1677~1724)이 호남 일대를 유람한 내용을 기록한 「남유록(南遊錄)」에 그가 1722년에 장흥ㆍ남원 등지에서 춘면곡을 들었으며 그 작자가 ‘이희징’이라고 하였고, '듣는 사람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픈 노래'라고 감회를 남겼다. 이로써 18세기 전반기에 춘면곡이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그 노랫말은 『(육당본)청구영언(靑丘永言)』(1852 추정)을 비롯한 19세기 여러 가집에 전하고, 『삼죽금보(三竹琴譜)』(1841)에 거문고 반주 선율이 전하여 풍류방에서 기악반주에 의해 불렸고 선비들에 의해 향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역사 변천과정
춘면곡은 늦어도 18세기 전반에 가창된 것으로 나타난다. 18세기에 춘면곡이 불린 사실은 여러 기록에 보이는데, 그 곡명과 함께 향유 측면이 포착된다. 이로써 춘면곡이 12가사 중에서도 일찍 성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사(歌辭)체에 뿌리를 둔 춘면곡은 열한 종의 가집에 수록될 정도로 애호되었다. 문헌에 따라 노랫말은 다소 차이가 있어 19세기 후반기까지도 그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노랫말 형태에 차이가 있었던 것과 관련해서 곡조도 전승과정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유만공(柳晩恭, 1793~1869)의 『세시풍요(歲時風謠)』(1835)에 “고조(古調)의 춘면곡은 지금 부르지 않으니…”라고 되어 있어, 19세기 전반기에는 춘면곡이 옛 곡조와 다른 곡조로 가창되었음을 알려준다. 〈춘면곡〉의 거문고 반주 선율이 전하는 『삼죽금보』에는 〈월곡조〉가 첨가된 새로운 형태가 출현하여 적어도 19세기 무렵 고조(古調)에서 신조(新調)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처럼 19세기 전반기 무렵 현행과 같은 새로운 곡조가 불리면서 옛 곡조는 불리지 않았던 것이다.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의 『교방가요(敎坊歌謠)』(1872)에는 〈권주가〉가 구가(舊歌)와 신가(新歌) 두 종류가 소개되어 있어, 12가사 중에 형성 시기가 빠른 곡의 경우 곡조의 변화가 많았음을 엿볼 수 있다.
춘면곡의 거문고ㆍ양금 등의 반주 선율이 『삼죽금보』ㆍ『일사금보(一衰琴譜)』ㆍ『아양금보(峨洋琴譜)』ㆍ『(기묘)금보(琴譜)』 등의 19세기 고악보에 전한다.
『일사금보』에는 춘면곡이 계면조와 평조 두 가지로 전하여 현행의 평조와 다른 계면조로 된 춘면곡이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행 춘면곡 제7장이 『아양금보』의 〈달거리〉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변화와 재창작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 연행 시기 및 장소
춘면곡은 18세기부터 전문가에 의해 불렸고 주로 선비들이 향유했다. 춘면곡은 다른 가사, 가곡과 같이 풍류방이나 누정(樓亭) 등의 다양한 풍류공간에 연행되었다.
『가사육종(歌詞六種)』(1850년 전후)에 전하는 〈노인가〉 노랫말에 ‘상사가(相思歌) 춘면곡(春眠曲) 화답고'라는 내용이 있어, 가사가 연창 형식으로 연행되었고, 특히 〈상사별곡〉 다음에 춘면곡이 불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악대와 악기편성
19∼20세기 고악보 중에는 거문고ㆍ양금ㆍ생황 등의 악기가 연주했던 가사 반주선율이 기록되어 있다. 가사를 노래할 때에 현악기나 관악기로 반주된 사실을 보여주는데, 점차 현악기는 반주에 쓰이지 않고 피리ㆍ대금ㆍ해금ㆍ장구 위주의 반주로 바뀌었다. 주로 단재비로 편성하고 상황에 따라 악기의 수를 줄이기도 한다. 요즘에는 대개 장구에 피리 또는 대금 관악기 하나로 반주한다. 반주 선율은 정형화된 선율 없이 노래 선율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연주하는 방식인 수성(隨聲)가락으로 연주한다.
○ 악곡 구성ㆍ형식ㆍ장단ㆍ음계 및 선법
춘면곡은 총 8장으로 구성되고, 6박의 도드리장단으로 부른다. 각 장의 길이는 차이가 있는데, 제1ㆍ2ㆍ3ㆍ6장은 8장단, 제4ㆍ8장은 12장단, 제5장은 16장단, 제7장은 10장단으로 되어 있다. 제1장을 중심선율로 하여 변주ㆍ반복하는 형식인데, 각 장의 후반 선율이 유사하고 특히 종지선율은 제1장의 선율이 반복된다. 다만 제7장만 예외적으로 12잡가 중의 하나인 〈달거리〉 선율이 결합된 형태를 띤다.
춘면곡의 출현음은 황(黃:E♭4)ㆍ태(太:F4)ㆍ중(仲:A♭4)ㆍ임(林:B♭4)ㆍ남(南:C5)ㆍ무(無:D♭5)로 되어 있어 평조와 계면조가 섞여 있는 형태를 띠나, 전체적으로 중(仲:A♭)이 중심음이 되는 중(仲:A♭4)ㆍ임(林:B♭4) ㆍ무(無:D♭5)ㆍ황(潢:E♭5)ㆍ태(汰:F5)의 5음 음계 평조에 가깝다. 노래할 때에 청황(潢:E♭5) ,청태(汰:F5)의 음에 속소리를 많이 준다. 중(仲:A♭4)에 요성이 쓰여 서도소리의 특징이 나타나기도 한다. 평조와 계면조가 섞인 형태를 보이는 춘면곡의 특성상, 퇴성이 임→중, 태→황, 무→임으로 하행할 때에 쓰이기도 한다.
춘면곡의 노랫말은 한 남성이 화창한 봄날에 낮잠에서 깨어 술을 마시다가 한 여성을 만나고 나서 이별한 뒤, 장부로서 업(業)을 이룬 후에 다시 만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현행은 여인을 만나는 부분까지만 노래하고 그 이하는 부르지 않는다.
장 | 노랫말 | 해설 |
1장 | 춘면(春眠)을 느짓 깨여 죽창(竹窓)을 반개(半開)허니 | 봄날 졸음 느긋이 깨어 대살창문 반쯤 여니 |
2장 | 정화(庭花)는 작작(灼灼)헌데 가는 나비를 머무는 듯 | 뜰에 핀 꽃이 화려한데 가는 나비 머무는 듯 | 3장 | 안류(岸柳)는 의의(依依)허여 성긴 내를 띄웟세라 | 강 언덕엔 버들이 무성하여 안개가 드문드문 뵈는구나 | 4장 | 창전(窓前)에 덜 고인 술을 이삼배(二三杯) 먹은 후에 호탕(豪蕩)하야 미친 흥(興)을 |
창문 앞 덜 익은 술을 두세 잔 먹은 후에 호탕하여 미친 흥을 |
5장 | 부질없이 자아내여 백마금편(白馬金鞭)으로 야류원(冶遊園)을 찾어가니 화향(花香)은 습의(襲衣)허고 |
끊임없이 자아내어 백마 타고 금빛 채찍 들고 기생집을 찾아가니 꽃향기는 옷에 스미고 |
6장 | 월색(月色)은 만정(滿庭)헌데 광객(狂客)인 듯 취객(醉客)인 듯 |
달빛은 뜰에 가득한데 미친 사람인 듯 술 취한 사람인 듯 |
7장 | 흥(興)을 겨워 머무는 듯 배회고면(徘徊顧眄)하야 유정(有情)이 섰노라니 취와주란(翠瓦朱欄) 높은 집에 녹의홍상 일미인(綠依紅裳一美人)이 |
흥에 겨워 머무는 듯 여기저기 돌아보며 정을 주고 섰노라니 푸른 기와 붉은 난간 높은 집에 녹색 저고리 붉은 치마 입은 한 미인이 |
8장 | 사창(紗窓)을 반개(半開)허고 옥안(玉顔)을 잠깐 들어 웃는 듯 반기는 듯 |
비단 창문 반쯤 열고 예쁜 얼굴을 잠깐 들어 웃는 듯 반기는 듯 |
춘면곡은 18~20세기 많은 문헌사료에 등장한다. 이러한 사료들을 통해 춘면곡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데, 옛 노래들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창되면서 새로이 변화하고, 재창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음악사적 의미가 깊다.
국가무형문화재(1971)
『금보』 『남유록』 『삼죽금보』 『세시풍요』 『아양금보』 『일사금보』
이상원, 『가사육종』, 보고사, 2013. 고상미, 「12가사(歌詞)의 창법 연구: 춘면곡, 백구사, 죽지사를 중심으로」, 서울대 석사논문, 2010. 권오성, 「춘면곡의 악곡형식」, 서울대 석사논문, 1965. 송성범, 「12가사의 악곡형식연구, 한양대 석사논문, 1996. 신대철, 「삼죽금보의 가사: 춘면곡, 상사별곡, 황계사에 기하여」, 서울대 석사논문, 1981. 윤영해, 「12가사의 요성:어부사, 춘면곡, 죽지사를 중심으로」, 서울대 석사논문, 2002.
김창곤(金昌坤),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