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락(旕樂), 얼락(孼樂), 지르는낙시조(—樂時調)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 중선회(衆仙會)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인 남창가곡 중 ‘낙’ 계열 노래로, 초장 처음을 높이 질러 부르는 곡
조선 후기 중형(中型)시조와 장형(長型)시조가 등장하면서, 긴 사설을 부르기 위해서 기존의 노래에서 선율이 확대되고 장단에 변화를 준 농(弄)ㆍ낙(樂)ㆍ편(編)이라는 새로운 유형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가곡 한 바탕을 부를 때 후반부에 불리며, ‘소가곡(小歌曲)’이라고도 한다. 소가곡 중에서는 ‘낙’ 계열의 노래가 ‘농’과 ‘편’ 계열의 노래들보다 먼저 생겼다. ‘낙’ 계열의 노래는 『창랑보(滄浪譜)』(일명 『어은보(漁隱譜)』(1779)에 〈우조낙시조(羽調樂時調)〉라는 곡명으로 처음 보인다.
이 곡은 〈계락(界樂)〉과 유사한 악곡으로 밝혀졌다. 언락에 해당하는 음악은 『강외금보(江外琴譜)』에 〈언락시조(言樂時調)〉,『삼죽금보(三竹琴譜)』(1841 추정)에 〈엇락(旕樂)〉이라는 곡명으로 악보집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 역사 변천 과정
『가곡원류(歌曲源流)』(1872)는 〈엇락 지르는낙시됴〉라는 곡명으로 언락을 실었다. 『방산한씨금보(芳山韓氏琴譜)』(1916)는 〈얼락〉으로 실었다. 그 밖에 『학포금보(學圃琴譜)』ㆍ『서금가곡(西琴歌曲)』ㆍ『일사양금보(一簑洋琴譜)』 등에 언락에 해당하는 음악이 실렸다.
현재의 남창가곡은 대부분 하규일(河圭一, 1867~1937)을 통해 전승되었으며, 언락의 악곡으로는 “벽사창(碧紗窓)이”ㆍ“백구(白鷗)는 편편(翩翩)”ㆍ“일월성신(日月星辰)도”ㆍ“마흔아홉”ㆍ“푸른 산중(山中)”ㆍ“신라성대(新羅聖代)”ㆍ“일호주(一壺酒)로”의 일곱 곡이 있다.
○ 음악적 특징
언락의 ‘언(言)’ 또는 ‘얼(乻)’은 ‘엇(旕)’의 와음(訛音)으로, ‘지름’과 같은 뜻이다. 언락ㆍ〈언롱(言弄)〉ㆍ〈언편(言編)〉 등 초장 처음을 높게 질러 시작하는 노래에 붙인다.
‘낙’은 낭창낭창한 곡태(曲態)를 일컫는다. 『가곡원류(歌曲源流)』의 「가지풍도형용(歌之風度形容)」에서 이러한 곡태를 “요(堯)임금의 바람이요 탕(湯)임금의 해[日]로다. 꽃이 난만한 봄의 성터이다(堯風湯日, 花爛春城)”라고 하였다.
언락은 〈우락〉의 초장을 높이 질러 시작하는 노래이다. <우락>과 같이 우조로 되어 있다. 가곡의 ‘우조’는 ‘우조평조(羽調平調)’의 준말, 즉 황종궁 평조선법에 해당하는데, 오늘날 가곡은 낮은 평조평조(平調平調, 탁임종궁 평조선법)는 없고 높은 우조평조로만 부르므로, 가곡에서 ‘우조’와 ‘평조’는 같은 말이 되었다. 음계는 황(黃:E♭4)ㆍ태(太:F4)ㆍ중(仲:A♭4)ㆍ임(林:B♭4)ㆍ남(南:C5)의 5음 음계 황종 평조이고, 장단은 가곡의 기본 장단인 16박 장단이다.
가곡은 거문고ㆍ가야금ㆍ세피리ㆍ대금ㆍ해금ㆍ양금ㆍ단소ㆍ장구 등 관현악 편성의 악기를 단재비로 구성하여 반주한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되며, 전주(前奏)인 대여음(大餘音)에 이어 초장ㆍ제2장ㆍ제3장을 부르고, 짧은 간주(間奏)인 중여음(中餘音)에 이어 제4장과 제5장을 마저 부른다. 대여음은 본래 노래가 다 끝난 뒤 연주하는 후주(後奏)였으나, 오늘날 가곡에서는 전주로 연주된다.
가곡의 가사 붙임새는 ‘어단성장(語短聲長)’이라 하여, 실사(實辭)에 해당하는 낱말을 촘촘히 붙이고 조사 등 허사(虛辭)를 길게 끄는 것이 특징이다. ‘ㅐ’나 ‘ㅔ’ 등의 중모음(重母音)을 ‘아이’ㆍ‘어이’ 등 단모음(單母音)으로 풀어 발음하는 것은 가곡 갈래가 성립한 조선 중기 국어 발음의 잔영으로 보인다.
○ 늘어난 노랫말의 처리
가곡 한바탕에서, 우조 〈초수대엽(初數大葉)〉(여창은 우조 〈이수대엽〉)부터 계면조 〈소용(騷聳)〉(여창은 계면조 〈두거〉)까지의 전반부 노래들은 글자 수 45자 내외의 단형(短型)시조를 노랫말로 한다. 후반부를 시작하는 ‘농’과 ‘낙’ 계열의 노래들부터는 글자 수가 더 늘어난 중형(中型)시조를 주로 쓰고, 이따금 장형(長型)시조를 부르기도 한다. 맨 마지막에 부르는 ‘편’ 계열의 노래들은 장형시조를 얹어 부른다. ‘농’ㆍ‘낙’ㆍ‘편’ 계열의 가곡은 주로 제3장과 제5장의 음악 행(行)수나 박(拍)수를 추가하여 늘어난 노랫말을 소화하는데, 이를 ‘각(刻)을 더한다’고 한다.
한 예로, 남창 언락 “벽사창이”는 장형시조 노랫말을 얹어 부르며, 제3장을 본래 2행에서 5행으로, 제5장을 본래 3행에서 3행 반으로 늘려 노래한다.
⋅ 언락 “벽사창이” (초장) 벽사창(碧紗窓)이 이룬어룬커늘 (2장) 임만 여겨 펄떡 뛰어 나가 보니 (3장) 임은 아니 오고 명월(明月)이 만정(滿庭)헌데 벽오동(碧梧桐) 젖은 잎에 봉황(鳳凰)이 와서 긴 목을 후여다가 깃 다듬는 그림자로다 (4장) 마초아 (5장) 밤일세만정 행여 낮이런들 남 우일 번허여라. (내용 해설) (초장) 푸른 비단을 친 창밖이 어른어른 하거늘 (2장) 님이라고만 생각하여 얼른 뛰어 나가 보니 (3장) 님은 오지 않고 밝은 달이 뜰에 가득한데 벽오동 젖은 잎에 봉왕이 내려앉아서 긴 목을 휘어다가 깃을 다듬던 그림자였구나. (4장) 다행히도 (5장) 밤이어서 망정이지, 혹시라도 낮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을 웃길 뻔 하였구나.
해설: 성무경 교주, 『19세기 초반 가곡 가집, 『영언』』, 보고사, 2007, 393-394쪽
언락ㆍ〈언롱〉ㆍ〈언편〉 등 ‘언(엇)~’ 계열의 가곡은 남창으로만 부른다. 언락을 포함한 가곡은 신라 향가와 고려가요의 맥을 이은 우리나라 고유의 성악 갈래이며, 전통사회 상류층의 미의식과 문화를 간직한 정가(正歌)로서 국가 및 지방별 무형유산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가곡: 국가무형문화재(1969) 가곡: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1989) 가곡: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2002) 가곡(남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1995) 가곡: 경상북도 무형문화재(2003) 가곡: 전라북도 무형문화재(2013) 가곡: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2010)
『가곡원류』 『강외금보』 『방산한씨금보』 『삼죽금보』 『일사양금보』 『학포금보』
김기수, 『남창가곡백선』, 은하출판사, 1979. 김영운, 『가곡 연창형식의 역사적 전개양상』, 민속원, 2005. 윤덕진ㆍ성무경 주해, 『18세기 중ㆍ후반 사곡(詞曲) 가집,『고금가곡』』, 보고사, 2007. 장사훈, 『국악사론』, 대광문화사, 1983.
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