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弄), 농엽(弄葉), 농가(弄歌), 계롱(界弄)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 중선회(衆仙會)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인 남창가곡 중 ‘농(弄)’ 계열의 노래로, 초장을 중간 정도 높여 부르는 곡
평롱(平弄)은 가곡 중 ‘농’ 계열의 기본형이 되는 노래이다. 계면조로 되어 있어 〈계롱(界弄)〉 또는 그냥 〈농(弄)〉이라고도 한다. 남창가곡 24곡을 이어 부를 때 평롱은 〈언롱(言弄)〉에 이어 열일곱 번째 곡으로 부르고 그 다음은 〈계락(界樂)〉으로 이어진다.
조선 후기 중형(中型)시조와 장형(長型)시조가 등장하면서, 긴 사설을 부르기 위해서 기존의 노래에서 선율이 확대되고 장단에 변화를 준 농(弄)ㆍ낙(樂)ㆍ편(編)이라는 새로운 유형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가곡 한 바탕을 부를 때 후반부에 불리며, ‘소가곡(小歌曲)’이라고도 한다. 소가곡 중 ‘농’ 계열의 노래는 ‘낙’ 계열보다 늦은 시기에 나왔다. 『유예지(遊藝志)』(1806~1813 추정)에 〈농엽(弄葉)〉ㆍ〈농악(弄樂)〉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보인다. 『강외금보(江外琴譜)』는 〈농가(弄歌)〉라 했는데, 이 노래들이 지금의 평롱에 해당한다.
○ 역사 변천 과정
평롱은 『삼죽금보(三竹琴譜)』(1841)와 『학포금보(學圃琴譜)』에 〈농〉, 『가곡원류(歌曲源流)』(1872)에는 〈농가〉, 『방산한씨금보(芳山韓氏琴譜)』(1916)에 〈계롱〉이라는 곡명으로 실렸고, 그 밖에 『서금가곡(西琴歌曲)』, 『일사양금보(一簑洋琴譜)』 등에도 평롱이 있다.
현재의 남창가곡은 대부분 하규일(河圭一, 1867~1937)을 통해 전승되었으며, 평롱의 악곡으로는 “월정명(月正明)”ㆍ“남훈전(南薰殿)”ㆍ“물우흿 사공(沙工)”ㆍ“만리장성(萬里長城)엔”ㆍ“뿌리깊은 은”의 다섯 곡이 있다.
○ 음악적 특징
평롱의 원래 이름은 〈농〉이고, 흥청거리는 곡태를 일컫는다. 『가곡원류(歌曲源流)』의 「가지풍도형용(歌之風度形容)」에서 이러한 곡태를 “맑은 내에 깁(비단)을 빠니, 물결이 출렁인다(浣紗淸川, 逐浪飜覆)”고 하였다.
‘평(平)’은 노래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 높이로 부른다는 뜻이다. 본래 <농>이라 하였으나, 처음부터 높이 질러 시작하는 〈언롱〉이 파생한 뒤, 이와 구별하기 위해 본래의 <농〉을 평롱이라 부르게 되었다. 평롱은 초장을 조금 높게 시작하여 흥청거리는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음계는 황(黃:E♭4)ㆍ중(仲:A♭4)ㆍ임(林:B♭4)의 3음이 골격을 이루는 황종 계면조이며, 장단은 가곡 기본 장단인 16박 장단이다.
가곡은 거문고ㆍ가야금ㆍ세피리ㆍ대금ㆍ해금ㆍ양금ㆍ단소ㆍ장구 등 관현악 편성의 악기를 단재비로 구성하여 반주한다. 전체 5장 형식이며, 전주(前奏)인 대여음(大餘音)에 이어 초장ㆍ제2장ㆍ제3장을 부르고, 짧은 간주(間奏)인 중여음(中餘音)에 이어 제4장과 제5장을 마저 부른다. 대여음은 본래 노래가 다 끝난 뒤 연주하는 후주(後奏)였으나, 오늘날 가곡에서는 전주로 연주된다.
가곡의 가사 붙임새는 ‘어단성장(語短聲長)’이라 하여, 실사(實辭)에 해당하는 낱말을 촘촘히 붙이고 조사 등 허사(虛辭)를 길게 끄는 것이 특징이다. ‘ㅐ’나 ‘ㅔ’등의 중모음(重母音)을 ‘아이’, ‘어이’ 등 단모음(單母音)으로 풀어 발음하는 것은 가곡 갈래가 성립한 조선 중기 국어 발음의 잔영으로 보인다.
○ 늘어난 노랫말의 처리
가곡 한바탕에서, 우조 〈초수대엽(初數大葉)〉(여창은 우조 〈이수대엽〉)부터 계면조 〈소용(騷聳)〉(여창은 계면조 〈두거〉)까지의 전반부 노래들은 글자 수 45자 내외의 단형(短型)시조를 노랫말로 한다. 후반부를 시작하는 ‘농’과 ‘낙’ 계열의 노래들부터는 글자 수가 더 늘어난 중형(中型)시조를 주로 쓰고, 이따금 장형(長型)시조를 부르기도 한다. 맨 마지막에 부르는 ‘편’ 계열의 노래들은 장형시조를 얹어 부른다. ‘농’ㆍ‘낙’ㆍ‘편’ 계열의 가곡은 주로 제3장과 제5장의 선율을 추가하여 늘어난 노랫말을 소화하는데, 이를 ‘각(刻)을 더한다’고 한다. 한 예로, 가곡 남창 평롱 “남훈전”은 제3장에 2각, 제5장에 1각을 추가하여 노래한다.
⋅ 평롱 “월정명” (초장) 월정명(月正明) 월정명커늘 (2장) 배를 타고 추강(秋江)에 드니 (3장)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우에 달이로다 (4장) 아희(兒㝆)야 (5장) 저 달을 건져스라 완월장취(翫月長醉)허리라.
⋅ 평롱 “남훈전” (초장) 남훈전(南薰殿) 순제금(舜帝琴)을 (2장) 하은주(夏殷周)에 전하오서 (3장) 진한당(秦漢唐) 자패간과(自覇干戈)와 송제양(宋齊梁) 풍우건곤(風雨乾坤)에 왕풍(王風)이 위지(委地)하여 정성(正聲)이 끊처졌더니 (4장) 동방(東方)에 (5장) 성인(聖人)이 나오셔 탄오현(彈五絃) 가남풍(歌南風)을 이어본가 하노라. (내용 해설) (초장) 남훈전의 순임금이 타시던 오현금을 (2장) 하ㆍ은ㆍ주에 전하시어 (3장) 진ㆍ한ㆍ당 시절 패도를 이루기 위해 난잡히 싸우던 송ㆍ제ㆍ양 시절 전쟁으로 어지러운 세상에 왕도의 풍도가 땅에 떨어져 바른 음악이 끊어졌더니. (4장) 동방에 (5장) 성인이 태어나시니 오현금을 연주하고 〈남풍가〉를 노래함 이어 볼까 하노라.
해설: 성무경 교주, 『19세기 초반 가곡 가집, 『영언』』, 보고사, 2007, 237쪽)
평롱을 포함한 가곡은 신라 향가와 고려가요의 맥을 이은 우리나라 고유의 성악 갈래이며, 전통사회 상류층의 미의식과 문화를 간직한 정가(正歌)로서 국가 및 지방별 무형유산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가곡: 국가무형문화재(1969) 가곡: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1989) 가곡: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2002) 가곡(남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1995) 가곡: 경상북도 무형문화재(2003) 가곡: 전라북도 무형문화재(2013) 가곡: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2010)
『가곡원류』 『강외금보』 『방산한씨금보』 『삼죽금보』 『서금가곡』 『유예지』 『일사양금보』 『학포금보』
김기수, 『남창가곡백선』, 은하출판사, 1979. 김영운, 『가곡 연창형식의 역사적 전개양상』, 민속원, 2005. 성무경 교주, 『19세기 초반 가곡 가집, 『영언』』, 보고사, 2007. 장사훈, 『국악사론』, 대광문화사, 1983. 이두원, 「평농과 편수대엽」,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2. 임미선, 「『유예지』 농엽의 선율 형성」, 『동양음악』 16, 1994.
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