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거삭엽(平擧數葉), 막드는자진한잎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 중선회(衆仙會)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인 여창가곡에 속하는 노래로, 초장 처음을 중간 정도 높이로 부르는 곡
여창가곡 중 한 곡으로, 초장 처음을 중간 정도 높이로 부른다고 해서 ‘평거(平擧)’라는 이름이 붙었다. 〈막드는자진한잎〉이라고도 한다. 〈이수대엽(二數大葉)〉을 변주한 곡으로, 우조 평거와 계면조 평거가 있다.
여창가곡 열다섯 곡 전부를 이어 부를 때, 우조 평거는 우조 〈중거(中擧)〉에 이어 세 번째 곡으로 부르고 그 다음은 우조 〈두거(豆擧)〉로 이어진다. 계면조 평거는 계면조 〈중거〉에 이어 여덟 번째로 부르고, 다음에 계면조 〈두거〉를 부른다.
가곡 중 〈이수대엽〉의 시작 선율을 높여 부르는 ‘~거(擧)’ 계열의 노래들은 늦어도 18세기부터 있어 왔지만, 여창으로 부르는 것이 악보상 확인되는 것은 19세기 중엽부터이다. 여창가곡이 처음 수록된 악보집인 『삼죽금보(三竹琴譜)』(1841)에 오늘날의 〈두거(頭擧)〉에 해당하는 〈우조조임(羽調調臨)〉과 〈계면조임(界面調臨)〉이 실린 것으로 보아, 〈이수대엽〉 선율의 일부를 높여 부르는 ‘~거(擧)’ 계열의 노래들을 여창으로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평거라는 곡명은 『현금오음통론(玄琴五音統論)』(1886)에 처음 나타난다.
한편 신광수(申光洙, 1712~1775)의 「관서악부(關西樂府)」(1774) 제15수에 “처음 들을 땐 온통 태진(太眞, 양귀비) 이야기러니 / 지금은 마외(馬嵬, 양귀비가 처형된 곳)의 티끌을 한탄하누나(初唱聞皆說太眞, 至今如恨馬嵬塵)”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것은 여창 우조 평거 “일소백미생이”의 노랫말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로 보아 평거를 비롯한 ‘~거’ 계열의 가곡들을 여창으로도 부르기 시작한 시기는 악보 상에 나타나는 것보다 이른 18세기 후반부터였을 가능성도 있다.
○ 역사 변천 과정
『현금오음통론』은 지금의 계면조 평거에 해당하는 〈계평거((界平擧)〉를 수록하면서, 여창 전체를 제시하지 않고, 남창과 다르게 연주하는 부분만 뒷부분에 따로 실었다. 〈계평거〉는 ‘계평거 2장’이라는 제목 아래 “든는[드는] 것 누구 임술(壬戌)”이라 부기하였다.
가집(歌集) 중 『가곡원류(歌曲源流)』(1872)는 〈막드는쟈즌한닙〉이라는 곡명으로 우조 평거와 계면조 평거의 노랫말들을 수록하였다.
현재의 여창가곡은 대부분 하규일(河圭一, 1867~1937)을 통해 전승되었으며, 평거의 악곡으로는 우조에 여섯 곡, 계면조에 여섯 곡이 있다.
○ 음악적 특징
여창 평거는 〈이수대엽〉과 선율이 전체적으로 비슷하나, 초장 처음을 중간 정도의 음역으로 높여 부른다. 요성(搖聲)을 많이 쓰면서 가늘고 여린 속소리를 사용하는 여창 특유의 창법이 잘 살아 있다. 여창 평거는 초장 첫 구가 두 글자뿐인 것이 남창 평거는 물론 다른 가곡과 다른 특징이다. 그래서 초장 첫 3박을 건너뛰고 제4박부터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평거에는 우조와 계면조의 두 악조가 있다. 이중에서 ‘우조’는 ‘우조평조(羽調平調)’의 준말, 즉 황종궁(黃鍾宮) 평조 선법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낮은 탁임종궁(㑣鍾宮) 평조 선법인 평조평조(平調平調, 탁임종궁 평조선법)가 있었으나 현재 가곡은 우조평조로만 부르기 때문에, 가곡에서 ‘우조’와 ‘평조’는 같은 말로 인식되고 있다.
우조 평거의 음계는 황(黃:E♭4)ㆍ태(太:F4)ㆍ중(仲:A♭4)ㆍ임(林:B♭4)ㆍ남(南:C5) 의 5음 음계 황종 평조이고, 계면조 평거는 황(黃:E♭4)ㆍ중(仲:A♭4)ㆍ임(林:B♭4) 의 3음이 골격을 이룬다.
장단은 가곡의 기본 장단인 16박 장단이다.가곡은 거문고ㆍ가야금ㆍ세피리ㆍ대금ㆍ해금ㆍ양금ㆍ단소ㆍ장구 등 관현악 편성의 악기를 단재비로 구성하여 반주한다. 총 5장으로 구성되며, 전주(前奏)인 대여음(大餘音)에 이어 초장ㆍ제2장ㆍ제3장을 부르고, 짧은 간주(間奏)인 중여음(中餘音)에 이어 제4장과 제5장을 마저 부른다. 대여음은 본래 노래가 다 끝난 뒤 연주하는 후주(後奏)였으나, 오늘날 가곡에서는 전주로 연주된다.가곡의 가사붙임새는 ‘어단성장(語短聲長)’이라 하여, 실사(實辭)에 해당하는 낱말을 촘촘히 붙이고 조사 등 허사(虛辭)를 길게 끄는 것이 특징이다. ‘ㅐ’나 ‘ㅔ’등의 중모음(重母音)을 ‘아이’, ‘어이’ 등 단모음(單母音)으로 풀어 발음하는 것은 가곡 갈래가 성립한 조선 중기 국어 발음의 잔영으로 보인다.
⋅우조 평거 “일소백미생이” (초장) 일소백미생(一笑百媚生)이 (2장) 태진(太眞)의 여질(麗質)이라 (3장) 명황(明皇)도 이러므로 만리행촉(萬里行蜀)하였느니 (4장) 지금에 (5장) 마외방초(馬嵬芳草)를 못내 슬워하노라. ⋅계면조 평거 “초강 어부들아” (초장) 초강(楚江) 어부(漁夫)들아 (2장) 고기 낚아 삼지 마라 (3장) 굴삼려(屈三閭) 충혼(忠魂)이 어복리(魚腹裡)에 들었으니 (4장) 아무리 (5장) 정확(鼎鑊)에 삶은들 익을 줄이 있으랴.
평거는 〈중거(中擧)〉 및 〈두거(頭擧)〉와 함께 ‘~거’ 계열의 노래에 속하며, 〈이수대엽〉의 선율 일부를 높여 불러 변주하여 파생곡을 만들어 낸 초기 단계의 모습을 보여 준다. 평거를 포함한 가곡은 신라 향가와 고려가요의 맥을 이은 우리나라 고유의 성악갈래이며, 전통사회 상류층의 미의식과 문화를 간직한 정가(正歌)로서 국가 및 지방별 무형유산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가곡: 국가무형문화재(1969) 가곡: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1989) 가곡: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2002) 가곡(여창):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2006) 가곡: 경상북도 무형문화재(2003) 가곡: 전라북도 무형문화재(2013) 가곡: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2010)
가곡의 ‘우조’는 ‘우조평조(羽調平調)’의 준말, 즉 황종궁 평조선법에 해당하는데, 오늘날 가곡은 낮은 평조평조(平調平調, 탁임종궁 평조선법)는 없고 높은 우조평조로만 부르므로, 가곡에서 ‘우조’와 ‘평조’는 같은 말이 되었다.
『가곡원류』 『석북집』 『삼죽금보』 『현금오음통론』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50년 명인명창 50년』, 2001. 김기수, 『여창 가곡 여든여덜 닢』, 은하출판사, 1980. 김영운, 『가곡 연창형식의 역사적 전개양상』, 민속원, 2005. 김영운, 『가곡』, 민속원, 2009. 신광수, 이은주 역해, 『관서악부: 평안감사가 보낸 평양에서의 1년』, 아카넷, 2018. 장사훈, 『최신 국악총론』, 세광음악출판사, 1985. 신경숙, 「여창가곡의 음악문헌과 역사적 전개」, 『한국음악사학보』 15, 1995.
한영숙(韓英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