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대엽, 사관풍류(舍館風流), 육각거상(六樂擧觴), 자진나이(자진난이, 자진하니)
가곡(歌曲) 중 〈두거(頭擧)〉ㆍ〈농(弄)〉ㆍ〈계락(界樂)〉ㆍ〈편수대엽(編數大葉)〉을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하는 곡
자진한잎은 사관풍류(舍館風流)라고도 하며, 빠른 대엽인 〈삭대엽(數大葉)〉의 우리 말 표현이다. 성악곡인 가곡 중 〈두거〉ㆍ〈농〉ㆍ〈계락〉ㆍ〈편수대엽〉의 반주 음악을 삼현육각 편성의 순기악곡으로 연주하는 것으로, 잔치에서 상을 올릴 때 연주하는 거상악(擧床樂)으로 사용되었다. 좁게는 〈계면두거(界面頭擧)〉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기악곡 자진한잎은 가곡의 반주 음악을 삼현육각 편성으로 바꾸어 잔치의 거상 반주로 사용하던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성악곡인 가곡을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는 관행은 노래하는 가객(歌客)과 군영(軍營) 악대에 소속된 음악인인 세악수(細樂手)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세악수는 피리 2인ㆍ대금 1인ㆍ해금 1인ㆍ장고 1인ㆍ북 1인 즉, 여섯 명을 한패로 하였다. 이들은 군영과 관아(官衙)의 관속(官屬) 음악인으로도 활동하면서, 장원급제를 축하하는 삼일유가(三日遊街)나 민간의 회갑연 등 잔치 음악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들 여섯 명 구성의 악대는 잔치 음악의 대명사로서 륙각삼현(六角三絃)ㆍ대풍류ㆍ세악(細樂) 등 여러 명칭으로 불렸다. 풍류방이나 잔치에서 가곡 반주에 익숙했던 세악수들의 활동을 통해 삼현육각 편성의 자진한잎이 잔치의 거상악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기악곡으로 재편되면서 〈이수대엽(二數大葉)〉처럼 너무 느린 악곡은 사용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빠른 〈두거〉ㆍ〈농〉ㆍ〈낙〉ㆍ〈편수대엽〉을 중심으로 연주하였다. 한편 민간에서 삼현육각 연주자들이 자진한잎을 연주한다고 할 때는 그중 대표 악곡인 〈계면두거〉를 연주하는 것을 뜻하였다.
○ 역사 변천 과정 삼현육각 편성의 자진한잎은 구전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연주된 양상 및 음악적 정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거문고나 생황의 고악보에 수록된 관련악곡을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따름인데, 20세기 전반에 녹음된 유성기 음반과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는 그 실체가 확인된다. 이왕직아악부 악보에서 자진한잎은 관악합주로 연주하는 경우와 가곡으로 연주하는 경우에 각각 아명을 달리하였다. 관악합주 자진한잎은 <경풍년>으로, 성악곡 자진한잎은 <만년장환지곡>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때 <경풍년>은 가곡 전곡(全曲)이 아닌〈두거(頭擧)〉ㆍ〈농(弄)〉ㆍ〈계락(界樂)〉ㆍ〈편수대엽(編數大葉)〉만을 이어 연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어느 악곡부터 시작하느냐에 따라 다시 세 가지 아명으로 구분하였는데, 〈우조두거〉부터 시작하여〈변조두거〉-〈계면두거〉-〈농〉-〈계락〉-〈편一〉-<편二>를 연이어 연주하는 것을〈경풍년(慶豊年)〉, 〈계면두거〉부터 시작하여 〈농〉-〈계락〉-〈편一〉-<편二>을 연이어 연주하는 것을〈염양춘(艶陽春)〉, 〈농〉부터 시작하여 〈계락〉-〈편一〉-<편二>를 연이어 연주하는 것을 〈수룡음(水龍吟)〉이라 하였다. 연주자 사이에서는 각 연곡의 첫 곡을 아명의 대표곡으로 여겨, 경풍년은 <우조두거>, 염양춘은 <계면두거>, 수룡음은 <농>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변적 연주양상은 자진한잎의 본래 기능이 잔치 음악라는 점, 즉 잔칫상을 올리는 시간이나 잔치의 길이에 따라 연주 시간이 유동적이었던 점과 관련이 있다.
한편, 1906년 서울 악공(樂工)에 의해 녹음된 유성기음반(Victor 13546A)에서는 자진한잎 중〈계면두거〉의 제목을 〈육각거상(六樂擧觴)〉이라 하였다. 이로 보아, 삼현육각으로 연주하는〈계면두거〉가 거상악의 대표곡으로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왕직아악부 악보도 자진한잎을 삼현육각 편성인 피리ㆍ 대금ㆍ 해금ㆍ 장고의 총보(總譜)로 기보하고 있다. 거상악의 대표곡인 〈계면두거〉는 민간의 삼현육각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연주되었다. 콜롬비아 고악단(한성준)의 1930년 음반(Columbia 40216-A(21340) 吹奏樂 ‘頭擧’)은 삼현육각의 〈계면두거〉를 담고 있다. 1935년의 음반(Colombia 40642 A 雅樂 ‘宴樂曲’)에는 1906년의 〈육각거상〉과 동일한 〈계면두거〉가 해금(고재덕)ㆍ피리(이경선)ㆍ장고(김일우) 등의 연주로 녹음되었다. 삼현육각 〈계면두거〉는 서울 굿에서도 특히 신에게 술잔을 올리는 거리에 사용되었다. 이때 무녀는 신령이 “거성[거상]을 잡숩는다”고 하였고, “신령님은 풍류를 좋아하기 때문에 백한 번을 절을 해야 실눈을 뜨고 귀문을 여는데 풍류를 하면 눈을 번쩍 뜨신다”고도 하였는데 여기서 풍류란 자진한잎을 이른다. 무속음악 악사들 사이에서 자진한잎은 흔히 ‘자진나이’, ‘자진하니’로 통용되었고, 이는 서울 무속음악 악사인 김점석, 허용업이 녹음한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광복 이후 전통적인 거상악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자진한잎>은 기능 음악의 역할을 차츰 잃고 감상용 관악합주곡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 사회에서 거상악은 잔치나 행사의 시간에 따라 악곡 길이가 달라질 수 있었으나, 감상용 악곡으로 변화하며 그러한 신축성도 사라지고 연주가 표준화되었다.
○ 악대 및 악기 편성 자진한잎은 본래 피리 두 명, 대금ㆍ해금ㆍ장구ㆍ북 각 한 명이 연주하는 삼현육각 편성이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는 삼현육각 악기인 피리ㆍ 대금ㆍ해금ㆍ 장구 외에 박, 좌고, 소금 아쟁을 포함하여 20명 이상의 합주로 연주하기도 하고, 거문고와 가야금을 넣어 관현합주로 연주하기도 한다.
자진한잎은 성악곡이 기악화한 대표적인 악곡이다. 조선 후기 음악의 변모 양상과, 20세기 사회 변화와 더불어 전통 사회의 기능음악이 감상용 음악으로 전환되고 정착되는 과정이 잘 나타난다.
19세기 초의 양금 악보 『구라철사금보(歐邏鐵絲琴字譜)』는 가곡을 “속칭 ᄌᆞ츠ᄂᆡ닙”이라 하였고, 『유예지(遊藝志)』는 같은 설명의 ‘ᄌᆞ츠ᄂᆡ닙’을 ‘자지라엽(紫芝羅葉)’으로 표기하였다. 이 곡들은 기악곡 자진한잎이 아니라 가곡 반주 음악이지만, 가곡의 주종인 〈삭대엽〉을 일찍부터 우리말 자진한잎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구라철사금자보』 『유예지』 『이왕직아악부 악보』
김소리, 「서울 새남굿의 삼현육각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배인교, 「관악 자진한잎의 역사적 변천과 변조두거의 형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1998.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의 형성과 전개 연구』, 태학사, 2007. 이현창, 「자진한잎의 연주역사를 통한 성악곡의 기악화 과정 연구」, 계명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진윤경, 「20세기 삼현육각 음악의 전승 연구: 《관악영산회상》․《취타》․《자진한잎》의 피리 선율을 중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일제강점기 국악 활동 자료집 2, 경성방송국 국악방송곡 목록』, 민속원, 2000.
진윤경(秦潤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