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현도드리, 관악영산회상(管樂靈山會想)
《삼현영산회상》 중 〈삼현도드리〉부터 시작하여 〈군악〉까지 연이어 연주하는 악곡을 뜻하는 아명
《삼현영산회상》 중 〈삼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군악〉, 혹은 〈삼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을 연이어 연주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정재 반주의 대표 악곡이다. 첫번째 곡인 〈삼현도드리〉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온 나라 곳곳에(萬邦) 평안함이 두루 미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삼현영산회상》은 불교 성악곡에서 비롯된 《영산회상》 계열 악곡으로,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며 주로 춤 반주음악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삼현도드리〉부터 〈타령〉까지의 연곡(連曲)은 궁중 춤과 민간 춤에서 두루 연행되었다. 본래 아명이란 특정 악곡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으나,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에서는《삼현영산회상》 중〈삼현도드리〉도입부의 두 장단 선율만 변주한 뒤 〈염불도드리〉-〈타령〉-〈군악〉을 이어 연주하는 방식을 《함녕지곡》이라는 아명으로 통용하였다. 이는 20세기 후반 국립국악원 정악단으로 이어졌다.
◯ 역사변천 과정 《삼현영산회상》은 《영산회상》을 피리 2인, 대금 1인, 해금 1인, 북 1인, 장구 1인의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는 악곡이다. 조선후기 군영 악대 세악수의 편성이었던 삼현육각은 전국의 관속기관(관아와 군영)과 민간잔치(회갑연), 삼일유가 등에서 행진ㆍ춤ㆍ노래 반주에 활용되었다. 삼현육각 음악은 구전심수로 전승되어 기록도 없고 악곡명이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18세기 말 편찬된 거문고 악보 『유예지』에 〈군악유입타령〉ㆍ〈군악타령〉ㆍ〈삼현회입〉과 같은 기록을 보며 당시 삼현육각 악곡이 관악기를 넘어 현악기에서도 즐겨 연주하는 곡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종 잔치에서 활발하게 연행되었던 《삼현영산회상》은 18세기 무렵부터 궁중 연향의 정재반주에 사용되면서 삼현육각 편성 뿐 아니라 더 큰 편성으로도 연주된 것으로 보이며, 그 전통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 악보에 함녕지곡이 따로 수록되어 있지는 않다. 이는 함녕지곡이《삼현영산회상》을 구성하는 악곡 일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삼현영산회상》은 이왕직아악부 필률보(觱篥譜)ㆍ해금보(奚琴譜)ㆍ대금보(大笒譜)에서 《표정만방지곡》이라는 아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함녕지곡이라는 악곡명은 경성방송국 목록과 유성기 음반 그리고 이왕직아악부원의 공연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가장 이른 시기의 관련 자료로 이왕직아악부원이 녹음한〈Victor49802 宴禮樂 咸寧之曲(管) 三絃換入〉(1928)이 있다. 이 악곡은 춤 반주 음악으로 널리 활용되었기 때문에 이왕직아악부 악사들 뿐 아니라 민간 삼현육각 연주자에 의해서도 연주된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1935년 11월 15일 피리 연주자 강학수는 라디오 방송에서 대금 연주자 이충선, 해금 연주자 김인호와 함께 〈삼현도드리〉・〈타령〉・〈취타〉・〈군악〉을 연주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연주할 때는 함녕지곡이라는 아명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함녕지곡이라는 아명은 이왕직아악부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 한정적으로 사용한 용어로 볼 수 있다.
◯ 악기편성 및 음악적 특성 《삼현영산회상》과 함녕지곡은《관악영산회상》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삼현영산회상》을 시작하는 첫 곡이 <상령산>인 반면, 함녕지곡은 <삼현도드리>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삼현영산회상》 중 <가락덜이>에서 <삼현도드리>로 이어갈 때의 <삼현도드리>도입 선율과, 함녕지곡 첫 부분으로서의 <삼현도드리> 도입 두 장단의 선율에도 차이가 있다. 이를 오선악보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위 악보에서 윗줄의 선율은 앞서 제시한 아악부 피리보 〈三絃換入〉의 제1장 두 장단의 선율이다. 이는 《표정만방지곡》 중 〈가락덜이〉에서 이어 연주할 때 연주하는 선율이다. 아랫줄의 선율은 무용반주로 사용하는 함녕지곡의 도입 선율이다. 일제강점기에 연주된《함녕지곡》의 악기편성은 두 가지로 달리 나타나는데, 춤을 반주하는 경우와 감상용으로 연주하는 경우에 차이가 있다. 1924년에 이왕직아악부가 교토(京都)에서 공연한 《장생보연지무》ㆍ《연백복지무》의 반주음악으로서의 함녕지곡은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삼현육각 편성이었던 반면, 유성기 음반으로 녹음된 Victor49802A 함녕지곡은 향피리 다섯 명, 대금 다섯 명, 당적 두 명, 해금 다섯 명, 장구 한 명, 좌고 한 명, 박 한 명으로 큰 규모의 관악합주 형태였다. 관악합주로서의 함녕지곡과 정재반주로서의 함녕지곡 연주 전통은 모두 국립국악원 정악단을 통해 전승되고 있다.
성악곡이 기악화된 경우에 해당하는 악곡으로서, 조선시대 음악의 파생 및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유예지』 『이왕직아악부보』
국립고궁박물관, 『이왕직아악부 유성기 음반- 조선아악』, 2014.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의 형성과 전개 연구』, 태학사, 2007.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음악출판사, 198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일제강점기 국악 활동 자료집 2, 경성방송국 국악방송곡 목록』, 민속원, 2000. 진윤경,「20세기 삼현육각 음악의 전승 연구 : 《관악영산회상》ㆍ《취타》ㆍ《자진한잎》의 피리 선율을 중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8.
진윤경(秦潤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