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한민족 공동체 안에서 전승되거나 주변 문화권에서 전래되어 우리문화에 수용된 전통음악 및 그 음악 양식을 본받아 새롭게 창작한 음악과, 전통적인 공연예술 중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춤과 연희를 음악의 범주에 넣어 포괄적으로 일컫는 전통공연예술의 총칭
한자(漢字)로 표기되는 ‘국악(國樂)’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한자문화권인 중국·일본에서도 사용되는 바, 이 경우는 각각 해당 국가 입장에서 자기 나라의 음악을 가리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국악이란 말은 ‘우리나라 음악’이란 뜻이며, 일반적으로 한국음악(韓國音樂)의 준말로 이해되고 있다. ‘국악’이란 용어가 보편적으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45년 이후의 일이며, 그 이전에는 시대마다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국악은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전통음악 양식을 따라 새롭게 만들어진 음악(신국악, 창작국악)과 대중가요나 외국 음악과 융합된 음악(국악가요, 퓨전국악 등)도 포함하는 등 그 범주가 확장되고 있다.
동양에서 한자 ‘악(樂)’은 본래 노래[歌]·기악[樂]·춤[舞]의 세 가지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종합공연예술을 가리켰다. 우리 음악에서도 『고려사』 「악지」에 실린 당악에는 무용인 당악정재가 포함되었으며, 속악에도 속악정재(향악정재)가 포함되었다. 또한 종묘제례악이나 사직제례악도 노래인 악장(樂章)과 기악 및 춤인 일무(佾舞)를 반드시 갖추었다. 즉 전통음악의 개념 속에는 인접예술인 전통무용도 포함하는 관점이 일찍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무용뿐만 아니라 연행과정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민속극이나 민속연희 또는 민속놀이까지도 전통음악의 범주에 포함하기도 하는 바, 이는 일찍이 통일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에 탈춤·곡예 등의 잡기(雜技)가 포함된 점으로도 알 수 있다. 이 같은 전통에 따라 최근에는 넓은 관점에서 민속극과 민속놀이 등 다양한 민간전승의 연희를 전통음악의 테두리에 넣어 인식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국악진흥법」이다. 2024년 7월에 공포·시행된 이 법에서는 “국악이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예술적 표현 활동인 전통음악, 전통무용, 전통연희(演戲) 등과 이를 재해석ㆍ재창작한 공연예술을 말한다”라고 국악을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국악의 범주는 시대에 따라 변하였는데, 대표적인 국악기관인 국립국악원의 경우 한글명칭은 발족당시 그대로이지만, 영문표기는 초창기의 NCMI(National Classical Music Institute)에서 NCKTPA(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를 거쳐 지금은 NGC(National Gugak Center)로 표기하고 있다. 초기에는 음악기관을 표방하였으나, 이후 공연예술 전반을 관장하는 기관임을 강조하였고, 지금은 국악으로 대표되는 음악과 무용 및 연희를 포함하는 종합예술기관임을 드러내고 있다.
(광범위한 국악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춤' 항목과 ‘연희’ 항목을 참조 바람)
고대사회에서 우리음악을 어떻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국의 역사서에서는 동이족의 음악[東夷之樂]을 매(韎, 昧) 또는 매리(韎離)·주리(侏離)·조리(朝離)라 하였으며, 고대국가가 형성된 이후인 삼국시대에는 각 나라의 이름을 따라 고려악(高麗樂, 高句麗樂)·백제악(百濟樂) 등으로 불렀고, 일본에서도 고마가쿠(高麗樂)·구다라가쿠(百濟樂)·시라기가쿠(新羅樂)·봇카이가쿠(渤海樂) 등으로 불렸다. 이처럼 다른 나라의 음악을 가리킬 때 해당 국가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동양사회의 일반적인 경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나라 안에서는 신라 때 향악(鄕樂)이란 말로 자국 음악을 가리킨 사례가 『삼국사기』에 보이는데, 이는 중국 음악을 당악(唐樂)이라 하고 신라의 음악을 향악이라 한 것이다. 이때 ‘향(鄕)’은 향가·향비파 등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즉 신라를 가리키므로, ‘향악’은 곧 ‘우리나라 음악’이라는 뜻이었다.
『고려사』에서 우리 음악을 가리켜 ‘속악(俗樂)’이라 하고, 『악학궤범』에서 이를 ‘향악(鄕樂)’이라 하였으나, 이는 궁중음악에 해당하는 용어이므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시 우리나라 음악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보편적인 용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 아국악(我國樂)·아국지악(我國之樂)·국악(國樂)이란 말이 더러 보이는데, 모두 중국·일본과 관련하여 우리의 음악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한 경우이다.
외래음악에 대비하여 우리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로 국악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대한제국(大韓帝國) 시기이다. 융희(隆熙) 원년(1907) 궁내부(宮內府) 장례원(掌禮院)에 ‘국악’을 관리하기 위하여 국악사장(國樂師長)과 국악사(國樂師)를 두도록 하면서 직책명과 업무 내용에 ‘국악’을 분명히 밝힌 것이 그 처음이다.
당시 군대가 해산되면서 서양식 군악대원이었던 인원으로 제실음악대(帝室音樂隊)가 조직된 바, 이 서양식 음악대의 악사장(樂師長)과 악사(樂師)에 대비되는 우리 음악을 관장하는 직책명과 그 업무에 국악이라는 용어가 채택된 것이다.
이는 외래 음악인 서양음악과 구별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음악을 가리키는 의미로 ‘국악’을 사용하게 된 것이며, 이때의 국악은 대한제국의 황실의례에 연주하던 궁중 의식음악을 가리켰다. 따라서 대한제국이 문을 닫은 1910년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국악’이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으며, 단지 조선음악·조선고악(古樂)·조선아악(雅樂)·조선음률(音律)·구악(舊樂)·민속음악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을 뿐이다.
‘국악’이 지금과 같이 ‘한국의 전통음악’을 가리키는 용어로 다시 사용된 것은 1945년 해방 후의 일이다. 1945년 8월 18일 결성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음악부문협의회인 조선음악건설본부 산하에 국악위원회가 발족하였다. 서양음악가 중심의 동 건설본부에 별도의 위원회로 함화진(咸和鎭)을 위원장으로 하며, 김윤덕·박헌봉·성경린·이주환·장인식·최경식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국악위원회를 둔 것이다. 위원 구성으로 보아 동 위원회는 ‘조선민간음악과 아악을 포함’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9월 15일 조선음악건설본부 해체에 따라 자주노선을 채택한 국악계는 ‘국악회’를 거쳐 11월에 ‘국악원(國樂院)’을 창립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국악원에는 당시 아악계와 민속악계의 인사들이 함께 참여하였으며, 아악부·정악부·창악부·속곡부·민요부·문예부·연구부 등의 부서를 두었다. 그 부서 조직으로 보아 이때의 국악은 아악부에서 보존해오던 궁중음악과, 조선정악전습소 등의 정악, 판소리와 창극 등의 남도음악, 경서도 잡가와 민요 등이 포함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국악원은 1950년 국립국악원 설치령이 공포되고 1951년 국립국악원이 발족하면서 그 명칭을 대한국악원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국립국악원과 대한국악원은 각자의 특성을 살려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는바, 신문·잡지 또는 각종 공연 홍보를 통하여 국악·국악원 등의 용어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국악은 전통음악의 여러 갈래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한민족(韓民族)의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국가가 부침을 거듭하였으나, 통일신라와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한민족 단일국가라는 생각이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한민족의 음악’과 ‘우리나라의 음악’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으므로, 국악은 곧 한민족의 음악인 동시에 나라의 음악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근현대의 역사적 변혁기를 거치면서 민족이 분단되기도 하였으며, 다수의 한민족이 국외로 이주하기도 하였다. 서로 나뉘게 된 한민족은 스스로를 가리키는 명칭도 각기 다르게 사용하였는데, 음악 역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려졌다. 대한민국에서는 국악·한국음악·전통음악 등이 쓰이며, 북한에서는 조선음악·민족음악이, 기타 해외 한민족 공동체에서는 고려인음악·조선족음악 등이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들 명칭이 의미하는 바는 모두 ‘우리나라 또는 우리민족의 음악’이라는 뜻이다.
고대사회의 주변국 역사서에 등장하는 동이악·고려악·백제악·신라악이나, 『고려사』 「악지」에 보이는 아악·당악·속악, 조선시대의 『악학궤범』에 보이는 아악·당악·향악 등은 모두 국가나 왕실의 의식에서 연주하던 음악으로, 주로 국가의 음악기관에서 관리하던 음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든지 다양한 음악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므로, 비록 상세한 문헌기록으로 남겨지지는 않았으나, 우리나라 음악에도 다양한 갈래의 음악들이 존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들은 한민족 공동체 안에서 면면히 전승되어 오늘의 한국음악문화를 형성하였다. 현재의 국악 속에는 이처럼 다양한 갈래의 음악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즉 제례악·연례악·군례악 등의 궁중음악을 비롯하여 무속·불교·유교 등 각 종교의식에 수반된 음악, 전문음악인들이 민간의 다양한 의례나 연향에서 연주하던 음악과 무용·탈춤·연희 등의 반주음악, 판소리와 창극 및 여성국극, 일반 서민·대중이 일상생활 속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던 노동요·의례요·유희요·동요 등 향토민요와 풍물 및 각종 연희의 부수음악, 양반·중인 등 지배계층 음악애호가들이 즐기던 풍류방의 성악과 기악, 그리고 전통음악의 요소를 활용하여 새롭게 창작되는 관현악곡이나 협주곡, 각종 악기의 독주곡과 중주곡, 국악가수나 국악밴드를 위한 국악가요와 퓨전국악 등 새롭게 창작되는 다양한 음악들도 모두 국악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들 음악 중에는 한민족 공동체 안에서 자생한 음악도 있으나, 주변국 등 외부 문화권으로부터 전래되어 오랜 시간동안 한민족 사회에서 전승되면서 양식적으로 동화된 음악도 있다. 또한 근대 이후 유입된 서구 종교음악과 예술음악, 20세기 초반에 영향을 미친 일본의 대중음악과 해방 이후 대량으로 전해진 서구 대중음악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음악들도 포함된다. 즉 20세기 전반기 찬송가나 일본 창가 등의 영향으로 등장한 ‘신민요’, 1960년대 이후 활성화 된 신국악·창작국악, 1980년대에 등장한 국악풍의 대중가요인 ‘국악가요’, 1990년대 이후 타문화권 음악과의 혼종을 도모한 ‘퓨전국악’과 ‘월드뮤직’등이 ‘국악’이란 이름 아래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근래에는 국악의 대중성 확보를 위하여 음계와 선법, 리듬과 장단, 발성과 창법 등에서 전통음악으로 특징지어지는 범주를 넘거나 확장하는 방식의 변화가 있었으며, 서구 대중음악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시도도 있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전국적으로 확대된 국악관현악에서는 악기의 편성과 배치가 전통음악과는 달라졌고, 음향을 고려하여 전통 악기를 개량하는가 하면, 전자악기나 서양악기를 도입하기도 하였으며, 서구적 개념의 작곡·편곡과 지휘가 적극 도입되는 등 현재의 국악은 전통음악과는 달리 음악환경 변화에 따른 변모양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국악’의 개념 속에는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새로운 음악들도 모두 포함되는데, 이들 새로운 음악은 전통음악의 일부 양식을 따르기도 하고, 전통적인 악기나 창법을 사용하거나, 이를 일부 포함하기도 한다. 때로는 국악교육을 받은 음악인들이 주도하는 음악활동에서 외래적인 요소의 비중이 다소 높더라도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존중하여 ‘국악’의 범주에 넣어 이해하려는 경향도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국악’은 한민족이나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이라는 기존의 범주를 벗어나, 한민족의 전통음악을 자산으로 삼아 세계 음악문화 속에서 유의미한 미래의 한국음악을 모색하기 위한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전통음악을 가리키는 보편적 용어인 ‘국악’의 함의(含意)에 대하여 이견이 제기되기도 하는바, 1980년대 이후 대학 국악과(國樂科)의 명칭을 한국음악과(韓國音樂科)로 고친 경우도 있었으며, ‘한민족음악’이란 용어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음악 정명(正名) 찾기’를 주장하는 이들이 논의를 통하여 ‘한악(韓樂)’이란 용어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국악이란 말이 다수의 언중(言衆)에 의하여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국악을 대체할 새롭고 적절한 용어가 아직 돋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같은 논의는 심도 있는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삼국사기』 『고려사』 「악지」 『악학궤범』 대한제국 『관보』 <포달> 융희 원년(1907) 11월 11일, 11월 29일. 권오성, 『한민족음악론』(서울: 학문사, 1999) 김영운, 「국악, 한국음악, 전통음악」, 『국악개론』(파주: 음악세계, 2015) 송방송, 『증보 한국음악통사』(서울: 민속원, 2007) 김민수. 「해방기 국악계의 활동양상-국악원과 구왕궁아악부를 중심으로」, 『이화음악논집』(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서, 2019), 23권 2호. 노동은, 「알고 싶다 2 국악이란 용어, 일본용어인가 한국용어인가」, 『음악과 민족』(부산: 민족음악학회, 1993), 제6호. 송혜진, 「현대 국악, 그 원형성과 변화·생성」, 한국음악문화연구 (부산 : 한국음악문화학회, 2015), 제6집. 한국사데이터베이스(국사편찬위원회) https://db.history.go.kr/
김영운(金英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