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 궁중 의식음악인 아악에는 한 옥타브를 열두 개의 반음으로 나눈 12율이 사용된다. 12율은 한자(漢字) 두 글자로 된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이를 율명(律名)이라 한다. 율자보는 12율명의 첫 글자를 적어 해당 음높이를 지시하는 악보로, 고려 때 중국 송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고,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주로 아악의 기보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음고기보법의 하나이다.
율명의 첫 글자를 기보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율자보는 문자보(文字譜)에 속한다. 율명이 처음 보이는 문헌 자료는 중국 춘추시대의 역사책인 『국어(國語)』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율명의 문자를 기록하여 음악 기보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송(宋) 나라 주희(朱熹)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중 <풍아십이시보(風雅十二詩譜)>가 처음이다. 중국의 아악이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것이 고려 예종 11년(1116)이지만, 당시에 전해진 악보는 남아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 아악정비의 결과로 『세종실록』 「악보」에 <조회(朝會)> 아악과 <제사(祭祀)> 아악의 악보가 실렸고, 이들 악곡의 제정에 참고한 『의례경전통해』 「시악」과 『원조임우대성악보(元朝林宇大成樂譜)』가 실려 있다. 그러나 <조회>·<제사> 악보는 궁상자보(宮商字譜)를 중심으로 율자보를 부기(附記)하였고, 『의례경전통해』는 시(詩)의 매 글자 아래에 작은 글씨로 율명의 첫 글자를 적었다. 그리고 『원조임우대성악보』는 제1행에 시를 적고, 제2행에 율자보와 공척보를 병기(倂記)하였다. 『의례경전통해』는 중국 문헌을 전재(轉載)한 것으로, 세종대의 아악보에 율자보만을 독자적으로 사용한 예는 이것이 유일하다. 『세조실록』 「악보」의 <신제아악보> 기보방식도 『세종실록』의 『원조임우대성악보』와 같다. 율자보가 아악 기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는 『악학궤범』에서 찾을 수 있다. 『악학궤범』 권2 <시용아부제악(時用雅部祭樂)>에서는 율자보를 큰 글씨로 적고, 그 오른쪽에 작은 글씨로 궁상자보(宮商字譜)를 병기하였고, <세종조 수월용율(世宗朝隨月用律)>에서 비로소 율자보만으로 아악을 기보하였다.
이후 율자보는 여러 문헌에서 궁상자보와 병용되기도 하였으나, 순조 무렵 『악장요람(樂章要覽)』에 이르러 종묘제례악과 <무안왕묘제악보(武安王廟祭樂譜)>에 유일한 음고기보법으로 활용되었다. 정간이 없이 기보된 이 악보의 종묘제례악 악보에는 거문고와 가야금의 격도지법(擊挑之法)이 병기되었다. 이는 『속악원보』와 더불어 율자보로 5음음계인 우리 음악을 기록한 최초의 사례가 된다. 『속악원보』 제1~5권에서는 정간보에 율자보와 오음약보가 병기되는데, 각 행의 제1소행에 율자보, 제2소행에 궁상자보가 나란히 기보되었고, 제6~7권에서는 정간 안에 율자보만 적어 음높이를 기록하였다.
이후 율자보는 정간보와의 조합을 통하여 음고와 시가를 분명하게 기록할 수 있는 기보법으로 널리 쓰이게 된다. 19세기 말, 함재운(咸在韻, 1854~1916)에 의하여 보다 세밀한 리듬까지 기보할 수 있도록 보완된 이 기보법에는 각 악기별 특수 주법 부호가 추가되었으며, 20세기 초의 아악부(雅樂部)를 거쳐 현재의 국립국악원에 전승되고 있다. 국립국악원에서는 종묘제례악, 여민락만·령, 해령, 낙양춘 등의 기보에 율자보를 활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궁중음악과 영산회상·가곡·여민락·보허자 계통 악곡의 기보에는 시가기보법인 정간보와 결합하여 활용하고 있다.
율자보의 기보에 사용되는 12율은 다음 <표>와 같으며, 실제 기보에서는 율명의 첫 글자만 기록한다. 본래 아악의 기보에만 사용되던 율자보는 오늘날 당악(唐樂)과 향악(鄕樂)의 기보에도 사용되는데, 아악과 당악의 경우는 기준음인 황종의 음고가 가온 다(c′)에 해당하지만, 향악에서는 내림 마(e♭′)에 해당한다.
12율명 | 黃鍾 | 大呂 | 太蔟 | 夾鍾 | 姑洗 | 仲呂 | 蕤賓 | 林鍾 | 夷則 | 南呂 | 無射 | 應鍾 | |
황종 | 대려 | 태주 | 협종 | 고선 | 중려 | 유빈 | 임종 | 이칙 | 남려 | 무역 | 응종 | ||
율자보의 기보 | 黃 | 大 | 太 | 夾 | 姑 | 仲 | 㽔 | 林 | 夷 | 南 | 無 | 應 | |
음높이 | 아악·당악 | c′ | c#′ | d′ | d#′ | e′ | f′ | f#′ | g′ | g#′ | a′ | a#′ | b′ |
향악 | e♭′ | e′ | f′ | g♭′ | g′ | a♭′ | a′ | b♭′ | b′ | c″ | d♭″ | d″ |
아악은 음역이 12율 4청성으로 제한되어 황종(黃鍾, c′)~청협종(淸夾鍾, d#″)까지의 음만 표기하였다. 황종부터 응종까지의 한 옥타브가 ‘기본 음역(*이를 중성(中聲)이라 한다)’이 되는데, 이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역의 음들 즉 청성(淸聲)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율명 첫 글자 앞에 삼수변(氵)을 붙여 옥타브 위의 음[淸聲]을 표기하였다.
율자보가 향악의 기보에도 활용되면서 비교적 음역이 높은 관악기와 음역이 낮은 현악기의 기보를 위하여 여러 옥타브를 구별할 필요가 대두 되었다. 따라서 20세기 이후 중성보다 두 옥타브 높은 중청성(重淸聲)에는 ‘氵氵’변을, 한 옥타브 낮은 탁성(濁聲)에는 ‘亻’변을, 두 옥타브 낮은 배탁성(倍濁聲)에는 ‘彳 ’변을 붙여 표기한다.
본래 아악의 기보에 사용되던 율자보는 『악학궤범』 <세종조 수월용률>에서 독자적인 음고 기보수단으로 활용 되었으며, 그 밖의 경우는 아악 기보에서는 공척보와, 향악 기보에서는 오음약보와 병용되었다. 그러나 향악을 기보하게 되면서 청성과 중청성, 탁성과 배탁성을 위한 기보체계가 개발되었고, 다양한 리듬을 기록하기 위하여 정간보와 함께 사용되면서 한국 전통음악의 대표적인 기보법으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전통음악의 기보법을 대표하는 ‘정간보’는 단순히 시가기보법만을 지칭하지 않고 시가기보법으로서의 정간보와 음고기보법으로서의 율자보가 함께 사용되는 기보체계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기도 한다.
『국어(國語)』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대악후보(大樂後譜)』 『악장요람(樂章要覽)』 『속악원보(俗樂源譜)』 『아악부악보(雅樂部樂譜)』 薛宗明, 『中國音樂史 樂譜篇』, 臺北; 臺灣商務印書館, 1999. 王光祈, 『中國音樂史』, 臺北; 臺灣中華書局, 1977. 함화진, 『조선음악통론』, 민속원(영인복간), 1983. 국립국악원, 『피리정악보』, 국립국악원, 2015.
김영운(金英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