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음약보는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의 중간 소리를 궁(宮)이라 하고, 음계 구성 순서에 따라 궁으로부터 한 음 위의 음부터 차례대로 상일(上一)·상이(上二)·상삼(上三)·상사(上四)·상오(上五)로 표기하며, 아래로는 하일(下一)·하이(下二)·하삼(下三)·하사(下四)·하오(下五) 순으로 표기하는 기보법이다. 따라서 이를 상하지법(上下之法) 또는 궁상하보(宮上下譜)·상하일이지법(上下一二之法)·상하일이지보(上下一二之譜)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세조실록』 「악보」 서문에 의하면 중국의 아악은 12율로 악보를 기록하고, 중국의 속악은 공척보로 악보를 삼는데, 향악은 다만 육보(肉譜)로 악보를 기록하기 때문에 음악의 빠르기나 절주를 기록할 수 없어서, 세조(世祖)가 16정간 6대강 정간보를 창안하고, ‘궁상하’로써 소리의 높낮이를 기록하였다고 하였다. 오음약보는 『세조실록』 「악보」의 신제약정악보(新製略定樂譜) 종묘(宗廟)와 환구(圜丘) 제사악보의 기보에 사용되었고, 연산군 무렵으로 추정되는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서는 노래 선율의 음고 기보에 사용되었으며, 『금합자보(琴合字譜)』(1572)에서는 거문고[琴]와 대금[笛]의 음고 기보에 사용되었다. 『금합자보』 이후 민간의 악보에서 오음약보는 소위 ‘시용(時用)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로 대체 되었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편찬한 관찬(官撰) 악보에서는 오음약보가 조선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 세조 때의 음악을 담아 영조 때 편찬한 『대악후보』(1759)는 전체 일곱 권 모두에서 오음약보를 음고기보법으로 사용하였다. 다만 제례악을 기록한 제2권에서만 제1소행의 율자보와 함께 제2소행에 나란히 병기(倂記)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1892년에 중수(重修)된 『속악원보(俗樂源譜)』에서는 제1~5권에 실린 모든 악곡의 기보에 율자보(제1소행)와 오음약보(제2소행)를 병기하였으며, 제6권(信篇)만 율자보로 음고를 기보하였다.
요컨대 오음약보는 세조 때 창안되어 『세조실록』 「악보」에 처음 사용되었으며, 이후 고종대의 『속악원보』에 이르기까지 관찬악보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된 음고 기보법이다.
오음약보는 5음음계로 구성된 우리음악 즉 향악을 기보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따라서 궁(宮)이 기준이 되는데, 이 궁은 중국 오조(五調)의 궁조(宮調)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또한 궁·상·각·치·우의 궁도 아니다. 오음약보의 궁은 ‘노래 소리의 주된 음[歌聲之調]’즉 노래 선율을 구성하는 음계의 기준이 되는 음이라는 의미이다. 음계 구성음 중 이 궁(宮)보다 높은 첫째 음을 상일, 둘째 음을 상이, 셋째 음을 상삼이라 하여 궁의 한 옥타브 위의 음은 상오가 된다. 상오는 청궁(淸宮) 또는 소궁(少宮)이라고 한다. 반대로 궁(宮)보다 낮은 첫째 음을 하일, 둘째 음을 하이라 하고, 궁의 한 옥타브 아래 음을 하오라 한다. 하오는 탁궁(濁宮)이라 한다. 『세조실록』 「악보」 서문에서는 궁의 옥타브 위 아래 음인 상오와 하오가 모두 다 궁이지만, 궁의 정성(正聲)은 하오라 하였다. 그러나 음계를 구성하는 각 음 사이의 간격 즉 음정은 악조(樂調)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평조(平調)와 계면조(界面調)에 따른 각 음의 실제 음고는 <표>와 같다. 상일과 하사, 상사와 하일은 악조에 따라 다른 음을 가리키기 때문에 오음약보로 기보된 악보는 서두에서 악조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음높이
악조
|
황 종 |
대 려 |
태 주 |
협 종 |
고 선 |
중 려 |
유 빈 |
임 종 |
이 칙 |
남 려 |
무 역 |
응 종 |
황 종 |
대 려 |
태 주 |
협 종 |
고 선 |
중 려 |
유 빈 |
임 종 |
이 칙 |
남 려 |
무 역 |
응 종 |
황 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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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 | 大 | 太 | 夾 | 姑 | 仲 | 㽔 | 林 | 夷 | 南 | 無 | 應 | 潢 | 汏 | 汰 | 浹 | 㴌 | 㳞 | 㶋 | 淋 | 洟 | 湳 | 潕 | 㶐 | 㶂 | |
E♭ | E | F | G♭ | G | A♭ | A | B♭ | B | c | d♭ | d | e♭ | e | f | g♭ | g | a♭ | a | b♭ | b | c’ | d’♭ | d’ | e’♭ | |
평조 (5음음계) |
下五 | 下四 | 下三 | 下二 | 下一 | 宮 | 上一 | 上二 | 上三 | 上四 | 上五 | ||||||||||||||
계면조 (5음음계) |
下五 | 下四 | 下三 | 下二 | 下一 | 宮 | 上一 | 上二 | 上三 | 上四 | 上五 | ||||||||||||||
7음음계 (세조실록) |
下五 | 下四 | 一 | 下三 | 下二 | 下一 | 凡 | 宮 | 上一 | 上二 | |||||||||||||||
7음음계 (대악후보) |
下五 | 下四 | 下四界 | 下三 | 下二 | 下一 | 下一界 | 宮 | 上一 | 上二 |
5음음계인 향악을 기보하기 위하여 창안된 오음약보이지만, 세조 때부터 종묘제례악 중에서 7음음계인 진찬악 등의 기보에도 오음약보가 활용되었으며, 후대로 내려오면서 당악계 악곡인 보허자와 낙양춘 등의 기보에도 오음약보를 활용하였다. 이 경우 5음 이외에 추가되는 두 음을 기보하기 위하여 별도의 도구가 필요하였다. 『세조실록』 「악보」에서는 두 변음[二變]을 가리키기 위하여 공척보의 문자를 차용하였다. 즉 청황종조(淸黃鐘調)인 종묘제례악의 진찬악에서는 고선(姑洗)을 가리키기 위하여 ‘일(一)’자를, 응종(應鍾)을 가리키기 위하여‘범(凡)’자를 차용하였으며, 청협종조(淸夾鍾調)인 환구제례악의 진찬악에서는 태주(太蔟)를 가리키기 위하여 ‘사(四)’자와 임종(林鍾)을 가리키기 위하여 ‘척(尺)’자를 차용하였다. 반면에 『대악후보』와 『속악원보』에서는 고선(姑洗)을 위하여 ‘하사계(下四界)’라는 문자 표기를, 응종(應鍾)을 위하여 ‘하일계(下一界)’라는 문자 표기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평조의 하일이나 하사보다 반음 높은 계면조의 하일과 하사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실제로 하일계 또는 하사계라 표기된 음은 계면조의 하일이나 하사보다 반음 높은 음을 가리킨다.
이 같은 방법을 활용하여 『속악원보』에서는 당악곡인 <보허자>와 <낙양춘>도 오음약보로 기보하고 있다.
현재 전하는 악보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악보인 『세종실록』 「악보』는 유량악보인 정간보를 창안하여 선율을 구성하는 각 음의 길이를 나타내는 획기적인 시가기보법이었으나, 정간 속에 적어 넣어 음높이를 나타내는 음고기보법은 중국에서 전래된 율자보(律字譜)를 활용하고 있었다. 또한 아악의 기보에는 정간 없이 율자보와 공척보를 병기하고 있었다. 반면에 세조 때까지만 하여도 향악은 별다른 기보법이 없이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낸 육보에 의존하고 있었다. 세조는 음악의 리듬을 보다 효과적으로 적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5음음계인 향악의 기보를 위하여 16정간 6대강 정간보와, 음고기보법으로서의 오음약보를 창안하였다. 본래 향악의 기보를 위하여 창안된 오음약보는 조선시대 관찬악보에서 중요한 음고기보법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말기에는 당악곡도 오음약보로 기보하고 있다. 따라서 오음약보는 우리 음악을 기보하기 위하여 창안된 최초의 음고기보법이라는 점과, 고려가요를 비롯한 조선 초기의 노래 및 궁중 의식음악의 악곡을 기록으로 남겨 전통음악 문화 전승과 음악사적 연구의 자료를 남겼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세조실록』 「악보」 『악학궤범』 『금합자보』 『대악후보』 『시용향악보』 송석하, 「현존한국악보」, 『한국민속고』, 일신사, 1960. 성경린, 「한국의 악보」, 『한국음악논고』, 동화출판공사, 1976. 이혜구, 「한국의 구기보법」,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김영운(金英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