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왕묘제례악(關王廟祭禮樂)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였던 관우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할 때 연주하는 음악
무안왕묘제악은 정조대에 관왕묘 제사가 중사(中祀)로 승격되고, 그와 함께 새롭게 악무(樂舞)를 제정함에 따라 만들어졌다. 악장(樂章)은 정조가 친히 지은 것이고 1786년(정조 10)의 제사 때에 처음 음악을 입혀 연주되었다. 영신, 전폐, 초헌, 아헌, 종헌, 송신의 절차에서 음악이 연주되었다.
무안왕묘는 관우를 모신 사당으로 임진왜란 발발 당시 관우의 신병(神兵)이 나타나 전쟁을 도왔다는 믿음에 의해 선조(1567~1608)대에 처음 건립되었다. 관우는 원래 임진왜란 당시 구원병으로 들어온 명나라 장수들의 숭배 대상이었는데 전쟁을 치르는 동안 조선 사회에까지 그 믿음이 확산되어 갔다. 선조 조에 사당이 처음 세워진 이후 영조 대에 이르러 국가 사전(祀典)에 오른다. 정조대에 이르면 관왕묘제사가 중사(中祀)로 승격이 되고, 악무(樂舞)도 제정되어 비중 있는 길례(吉禮)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고, 고종대에 이르면 관왕(關王)이 관제(關帝)로 격상되어 악장이 다시 새로 지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관왕묘에 대한 인식은 시대가 내려갈수록 더욱 깊어짐을 알 수 있다. 관왕묘제례에는 1786년(정조 10)부터 음악이 수반되어 ‘조선 후기에 새롭게 제정된 제례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 역사 변천 과정
무안왕묘제악, 즉 관왕묘제례악은 1786년(정조 10)에 처음 음악이 만들어졌다. 정조는 1785년(정조 9)에 ‘사조어제무안왕묘비(四朝御製武安王廟碑)’를 동묘와 남묘에 세우고 자신이 지은 것을 관왕묘제례악의 악장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사조란 숙종, 영조, 장조, 정조를 이르는 것으로, 정조는 숙종과 영조의 어제(御製)를 한 비에 새기고 부친인 장조와 자신의 어제를 한 비에 합하여 두 개의 비를 만들어 동묘와 남묘에 세우도록 하였다. 자신이 지은 것은 태상시(太常寺)에 보내 관왕묘제례악의 가사로 쓰게 하였다.
정조가 지은 관왕묘제례악의 악장은 규칙적인 4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1786년(정조 10)에 관왕묘제례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이래 큰 변화 없이 유지되다가 1902년(광무 6)에 관왕이 관제로 추존되자 당시 홍문관 학사 서정순이 새롭게 악장을 지어 올렸다.
관왕묘제례악의 음악은 모두 종묘제례악의 《정대업》의 일부 악곡을 취해 만들었다. 영신의 〈왕재곡(王在曲)〉은 《정대업》 중의 〈소무(昭武)〉를, 전폐와 초헌ㆍ아헌ㆍ종헌에 연주되는 〈힐향곡(肹蠁曲)〉은 《정대업》 중의 〈분웅(奮雄)〉을, 철변두의 〈석하곡(錫嘏曲)〉과 송신은 《정대업》 중의 〈영관(永觀)〉의 선율을 가져왔다. 《정대업》 중의 〈소무〉ㆍ〈분웅〉ㆍ〈영관〉의 세 곡은 모두 군중(軍中)에서 쓰이는 악기인 태평소가 쓰이는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그 음악이 〈군악〉의 계열이라 생각할 수 있다. 관왕묘제례에 쓰이는 음악을 《정대업》으로부터 취하게 된 연유는 관우가 촉한의 무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무공을 칭송하기 위한 음악인 《정대업》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 음악적 특징
무안왕묘제악은 『속악원보』에 ‘무안왕묘제악보武安王廟祭樂譜’라는 이름으로 한 행이 16정간, 〈3ㆍ2ㆍ3ㆍ3ㆍ2ㆍ3〉정간의 6대강보로 기록되어 있다. 악보는 율자보와 오음약보를 병기했고, 장고ㆍ소금(小金)ㆍ대금(大金)ㆍ박(拍)ㆍ가사를 모두 적을 수 있도록 7행에 걸쳐 기보되었다. 기조필곡(起調畢曲)의 원칙을 지킨 점, 일자일음식 가사 배치를 의식한 점에서는 아악보 형성 원리와 공통점을 지닌다.
○ 형식과 구성
영신 〈왕재곡〉의 가사는 4언 16구(64字)이고 가사 배치는 음 하나에 한 음절 내지 두 음절 정도를 취하여 일자일음식 가사 배치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폐 〈힐향곡〉의 가사는 4언 12구(48字)이고 가사 배치는 규칙적이며 일자수음식의 배치를 취하였다. 매 행의 첫째 정간과 아홉 번째 정간에 반드시 소금(小金)과 대금(大金)을 같이 치고, 매 행의 마지막 대강 첫 박에 반드시 박(拍)이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힐향곡〉은 전폐ㆍ초헌ㆍ아헌ㆍ종헌에 공히 연주된다. 철변두 〈석하곡〉은 4언 8구 32자이다.
관왕묘제례악은 조선 후기에 새롭게 제정된 제례악이라는 특징이 있어 음악사적으로 주목된다. 관왕묘제례가 조선 사회에 등장하여 하나의 문화로 자리하게 되는 과정과 역사적 의미, 음악 제정의 의의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국조속오례의』 『국조오례통편』 『대한예전』 『홍재전서』 『증보문헌비고』 『조선왕조실록』 『속악원보』
송지원, 『정조의 음악정책』, 태학사, 2007. 금장태, 「조선사회의 관왕묘」, 『유교사상의 문제들』, 1990. 송지원, 「관왕묘(關王廟) 제례악(祭禮樂) 연구」, 『소암권오성박사화갑기념음악학논총(韶巖權五聖博士華甲紀念音樂學論叢)』, 2000.
송지원(宋芝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