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영창지곡(其壽永昌之曲)
낙양춘(洛陽春)은 고려 시대에 송나라에서 전래된 사악으로, 고려와 조선의 궁중 음악으로 수용되었다. 송 사악, 즉 당악(唐樂)은 향악(鄕樂)과 더불어 궁중 의식 음악의 중요한 갈래를 이루었으며, 조선 후기에 선율 변화를 겪으며 노랫말을 잃고 기악곡화 하였다. 송 사악 중 현재까지 전승되는 것으로 낙양춘과 〈보허자(步虛子)〉 두 곡이 있다.
송 사악은 중국 송나라 때 유행하던 문학 장르의 하나인 사(詞)를 곡조에 붙여 노래하던 음악이다. 본래의 낙양춘 사는 구양수(歐陽脩: 1007∼1072)가 지었으며, 고려 시대에 들어온 낙양춘 노랫말은 그와 다른 형태로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전한다.
○역사 변천 과정
낙양춘은 본래 <일락색(一落索)>이라는 악곡에 맞춘 사(詞)의 한 가지이다. 사(詞)는 중국 송나라 때에 유행한 문학 양식으로, 시(詩)에 비해 글자수가 불규칙하다. 사의 틀이 되는 음악에 여러 노랫말이 붙을 수 있으므로, 제목에는 <일락색 낙양춘>과 같이 악곡명과 가사명을 나란히 붙였다. 본래의 낙양춘 사는 구양수가 지었는데, 『고려사』 「악지」 ‘당악’(唐樂) 조에 전하는 낙양춘 노랫말은 이와 약간 차이가 있다.
고려에 송 사악이 처음 들어온 때는 문종 27년(1073)이다. 연등회, 팔관회에서 《답사행가무(踏沙行歌舞)》, 《포구락(抛毬樂)》, 《구장기별기(九張機別伎)》, 《왕모대가무(王母隊歌舞)》 등 당악정재(唐樂呈才)의 반주음악으로 사악이 쓰였다. 고려에서는 송 사악을 당악이라 부르며 향악과 더불어 양부악(兩部樂)으로 삼고 연례악으로 채택하였다. 『고려사』 「악지」‘당악’조에는 모두 마흔 세 곡이 전하는데, 그 중 《헌선도(獻仙桃)》ㆍ《수연장(壽延長)》ㆍ《오양선(五羊仙)》ㆍ《포구락(抛毬樂)》ㆍ《연화대(蓮花臺)》 등 정재에 쓰인 음악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훨씬 더 많다.
송 사악은 조선시대에도 궁중 음악으로 채택되어 쓰였다. 그 중에는 〈보허자(步虛子)〉처럼 당악 정재를 출 때 연주된 곡이 많은 한편, 〈낙양춘〉은 정재 반주에 거의 쓰이지 않았다.
송 사악은 후대로 오면서 점차 악곡 수가 줄어, 조선 후기에는 〈낙양춘〉과 〈보허자〉 두 곡만 남았다. 오랜 전승 과정에서 <낙양춘>과 <보허자> 모두 본래의 환두환입형식(換頭還入形式을 잃고, 1음 1박의 규칙적인 리듬으로 변하였다.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시절에는 〈낙양춘〉이라는 명칭 대신 〈기수영창지곡(其壽永昌之曲)〉이라는 아명이 쓰이기도 하였다.
○악대와 악기 편성
고려 시대에 송 사악을 연주할 때는 중국에서 들여온 해금ㆍ장구ㆍ당피리 등의 당악기가 주로 쓰였다. 당악과 향악을 연주할 때의 악기 편성에 차이가 있는 관행은 조선 전기까지 유지되다가, 조선 후기부터 그러한 차이가 없어졌다.
조선 시대에 〈낙양춘〉은 용도에 따라 연주하는 악기 편성과 악대가 달랐다. 그 중 조선 후기 연향 때, 국왕의 출궁(出宮) 또는 환궁(還宮) 때에는 전정헌가(殿庭軒架)가 관악 합주로 <낙양춘>을 연주했다.(전정 헌가는 조선 전기에 관현 합주 편성이었으나 후기에 관악 합주 형태로 변하였다). 이러한 연주 관행을 계승하여 오늘날 <낙양춘> 연주에 당피리ㆍ편종ㆍ편경ㆍ방향ㆍ대금ㆍ당적ㆍ해금ㆍ아쟁ㆍ장구ㆍ좌고 등을 편성한다.
○음악 형식, 선법 및 음계, 장단 사(詞)는 전단(前段)인 ‘미전사(尾前詞)’와 후단(後段)인 ‘미후사(尾後詞)’ 두 개 단락으로 이루어진다. 음악에서는 미후사 첫 구가 미전사와 다르게 바뀌는데 이를 ‘환두(換頭)’라 한다. 한편 미전사 제2구부터는 앞의 미전사 제2구 이하의 선율이 그대로 반복되므로 이를 ‘환입’이라 한다. 낙양춘도 본래 환두환입형식으로 되어있었으나, 현재는 첫머리부터 환두까지만 연주된다. 총 43개의 ‘마루(숨)’, 즉 악절로 구성되며 각 마루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현재 연주하는 〈낙양춘〉의 선율은 황(C)ㆍ태(D)ㆍ고(E)ㆍ중(F)ㆍ임(G)ㆍ남(A)ㆍ응(B)으로 구성된 치조(徵調) 7음 음계로 되어있다. 각 마루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으므로 규칙적인 장단은 쓰이지 않는다.
노랫말은 미전사와 미후사 두 부분으로 되어있고 한 구(句)의 자수(字數)가 일정치 않고 불규칙한 것이 특징이다.
미전사 (전단) |
사창미효황앵어(紗窓未曉黃鶯語), 혜로소잔주(蕙爐燒殘炷). 금유나막도춘한(錦惟羅幕度春寒), 작야리삼경우(昨夜裏三更雨). |
사창 아직 밝기 전에 꾀꼬리 소리 들려오고 혜초 피우는 향로에 남은 향 줄기가 타고 있네 비단 장막에서 봄추위를 보내나니 지난밤에는 삼경(三更)에 비가 내렸네. |
미후사 (후단) |
수렴한의취경서(繡簾閑倚吹輕絮), 염미산무서(斂眉山無緖). 파화식루향귀홍(把花拭淚向歸鴻), 문래처봉랑불(門來處逢郞不). |
수를 놓은 발에 조용히 기대어 있노라니 가벼운 버들솜이 날아오는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여 눈썹을 찡그리네. 꽃을 잡고 눈물을 훔치면서 돌아오는 기러기를 향하여 떠나온 곳에서 나의 낭군을 만나지 않았는지 묻네. |
낙양춘은 〈보허자〉와 마찬가지로 고려시대에 송에서 전래했지만, 〈보허자〉와 달리 정재 반주음악으로는 쓰이지 않았다. 또한 〈보허자〉는 제향에 쓰이지 않은 반면, 낙양춘은 문소전(文昭殿) 제향에 쓰였다. 현재 〈보허자〉가 궁중음악과 풍류악(風流樂)의 두 가지 계통으로 전승되는 것과 달리, 낙양춘은 궁중음악 한 종류로만 남았다. 『속악원보(俗樂源譜)』에 낙양춘 악보가 전하여 송 사악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낙양춘의 선율 일부에 송사(頌辭)를 얹어 부르는 ‘수악절창사(隨樂節唱詞)’는 김기수(金琪洙)가 편곡해 새로 지은 것으로 본래의 낙양춘과는 다르다.
송방송, 「고려 당악의 음악사학적 조명」, 『한국음악사논고』, 1995. 오용록, 「조선후기 당악의 변천」, 『동양음악』32, 2010. 이혜구, 「사악 낙양춘고」, 『한국음악서설』, 1967. 임미선, 「보허자․낙양춘의 한국적 수용에 대한 대비적 고찰」, 『국악원논문집』 39, 2019. 전지영, 「당악에 대한 몇가지 고찰」, 『仙華 金靜子敎授 回甲 紀念 音樂學 論文集』, 2002. 정화순, 「현행 한국 당악의 악조와 그 특징에 관한 연구」, 『한국음악연구』58, 2015.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