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보허자, 현악보허자, 보허사
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
고려시대에 송(宋)에서 들어온 사악(詞樂)으로부터 유래한 궁중 음악
송 사악은 중국 송나라 때 유행하던 사(詞)를 곡조에 붙여 노래하던 음악이다. 이 중 보허자는 11세기 후반에 고려에 들어왔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당악(唐樂)’조의 당악곡 총 43편 중에는 보허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당악 정재(唐樂呈才) 《오양선(五羊仙)》 에서 부르는 창사(唱詞)로 소개되었다.
○역사 변천 과정 보허자는 ‘벽연농효해파안(碧煙籠曉海波閑)’으로 시작하는 노랫말 사(詞)의 곡조이다. 사(詞)는 중국 송나라 때 유행한 문학 양식으로, 시(詩)에 비해 글자수가 불규칙하다. 사의 틀이 되는 음악에 여러 노랫말이 붙을 수 있으므로, 제목에는 <보허자 벽연농효>와 같이 악곡명과 가사명을 나란히 붙였다. 고려에 송 사악이 처음 들어온 때는 문종 27년(1073)이다. 여러 당악 정재의 반주 음악으로 사악이 쓰였으며, 보허자의 경우 《오양선(五羊仙)》 정재 때 창사로 불렸다. 송 사악은 고려를 거쳐 조선 조까지 궁중 음악으로 수용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40곡이 넘는 송사악이 있었으나 점차 악곡 수가 줄어들어 현재 보허자와 〈낙양춘〉 두 곡만 전승된다. 조선 시대에 보허자는 연향(宴享)에서 술을 올릴 때, 왕세자 출궁 때 연주되었으며 정재 반주 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보허자는 향악과 대비되는 개념인 당악(唐樂)의 범주에 속하는 음악으로서 조선 전기까지는 중국 음악의 요소가 분명했고, 악기 편성도 향악과 차이가 있었다. 조선 후기 무렵에는 당악곡 보허자와 <낙양춘>이 모두 노랫말 없는 기악곡으로 변하였으며, 본래의 환두환입형식(換頭還入形式)을 잃고, 1음 1박의 규칙적인 리듬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 당악이 점차 향악화되면서 보허자를 당악 정재 외에 향악 정재 반주곡으로도 쓰는 변화가 생겼다. 현재 보허자는 〈관악보허자〉와 〈현악보허자〉로 나뉘는데, 흔히 관악보허자를 보허자(아명: 장춘불로지곡)로 일컫고, 현악보허자(아명:황하청)는 보허사라 부른다.
관악보허자는 궁중 음악 보허자를 계승한 악곡이고, <보허사>는 민간의 풍류방(風流房)에서 전승된 것이다. 본래 궁중 음악이었던 보허자가 16세기 무렵부터 민간에 전파되었고, 그 악보가 『금합자보(琴合字譜)』(1572)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곡명이 〈보허사〉로 정착되어 현재에 이른다.
민간에서 〈보허사〉는 풍류방이라는 소규모 공간의 실내악 형태로 연주되는 것이 보통이었고, 오늘날과 같이 거문고ㆍ가야금ㆍ양금 세 악기로만 연주하는 형태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정기연주회라 할 수 있는 이습회(肄習會)의 연주 방식 중 한 가지가 오늘까지 정착한 것에 해당한다. 한편 민간에서는 원 보허자의 환입(還入), 즉 ‘도드리’ 부분에 환두 가락을 넣은 선율을 변주한 〈밑도드리〉·〈웃도드리〉·〈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 등의 파생곡도 생겨났다. 같은 궁중음악으로서 민간 풍류로 전파된 〈여민락〉이 다른 변주곡을 파생하지 않은 것과 대비되는데, 민간에서 〈여민락〉보다 〈보허사〉를 더 즐겨 연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악대와 악기 편성 고려 시대에 송 사악을 연주할 때는 중국에서 들여온 해금ㆍ장구ㆍ당피리 등의 당악기들이 주로 쓰였다. 조선 초까지는 당악과 향악을 연주할 때 악기 편성에 차이가 있었으나 점차 그러한 차이가 없어졌다. 조선 시대에 보허자는 용도에 따라 연주하는 악기 편성과 악대가 달랐다. 정재 반주음악으로 쓸 때는 전상악(殿上樂) 악대에 의해 관현 합주 형태로 연주되었으나 현재 이러한 편성의 연주 관행은 단절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당피리 중심의 관악 합주는 조선 시대에 보허자를 연주하던 여러 관행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 보허자는 편종ㆍ편경ㆍ방향ㆍ당피리ㆍ대금ㆍ당적ㆍ해금ㆍ아쟁ㆍ장구ㆍ좌고 편성의 관악 합주로 연주된다.
○음악 형식, 선법 및 음계, 장단 사(詞)는 전단(前段)인 ‘미전사(尾前詞)’와 후단(後段)인 ‘미후사(尾後詞)’ 두 개 단락으로 이루어진다. 음악에서는 미후사의 첫 구는 미전사와 다르게 바뀌는데 이를 ‘환두(換頭)’라 한다. 미전사 제2구부터는 앞의 미전사 제2구 이하의 선율이 그대로 반복되므로 이를 ‘환입’이라 한다. 보허자 역시 이러한 ‘환두환입형식’ 악곡이었다. 한편 송 사악에는 길이가 긴 ‘만(慢)’과 그보다 길이가 짧은 ‘령(令)’ 두 가지가 있었는데, 보허자는 그중 ‘령’에 속한다. 령의 한 구를 이루는 글자는 총 5~7자로 불규칙하지만 한 구에 해당하는 음악은 규칙적인 길이를 가지며, 음악의 네 행마다 규칙적으로 박을 친다. 현재 연주하는 〈보허자〉의 선율은 황(C)ㆍ태(D)ㆍ중(F)ㆍ임(G)ㆍ남(A)의 5음 음계를 주로 사용하며, 이따금 응(B, 고악보에서는 무[B♭])도 등장하여, 향악의 5음 음계나 아악(雅樂)의 7음 음계와 차이가 있다. 한 장단은 모두 스무 박으로 이루어지고 그 스무 박은 다시 6ㆍ4ㆍ6ㆍ4박 구조로 나누어진다.
미전사 (전단) |
벽연농효해파한(碧煙籠曉海波閑), 강상수봉한(江上數峰寒). 패환성리이향표락인간(珮環聲裏異香飄落人間), 미강절오운단(弭絳節五雲端). |
푸른 안개 새벽하늘에 자욱하고 바다 물결 한가로운데 강가의 두어 봉우리 차갑도다 패옥 소리 은은히 울리고 신비한 향내 인간세상에 자부끼며 신선이 탄 양수레 오색구름 끝에 멈추는도다. |
미후사 (후단) |
완연공지가화서(宛然共指嘉禾瑞), 미일소파주안(微一笑破朱顔). 구중요궐망중삼축고천(九重嶢闕望中三祝高天), 만만재대남산(萬萬載對南山). |
풍성하게 잘 여문 벼이삭의 상서를 가리키며 한 차례 웃어 붉은 얼굴에 웃음 띠도다 구중의 높은 궁궐 바라보며 높은 하늘 향해 세 차례 축원하기를 만만년 두고두고 남산처럼 장수하소서. |
보허자는 고려 시대 송나라에서 들여와 당악 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쓰였고, 조선 시대를 거치며 점차 향악화되어 향악 정재의 반주음악으로도 쓰였다. 본래 궁중 음악이었던 보허자는 궁중 음악과 풍류악의 두 가지 계통으로 전승되며 풍류악에서는 여러 파생곡을 낳았는데, 이는 외래 음악이 자연스럽게 우리 음악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중국에서 사악은 악보 없이 문헌으로만 전하나, 한국에서는 사악인 보허자와 <낙양춘>이 악보로 남아 있다. 특히 음악과 노랫말을 함께 기록한 『대악후보』의 보허자는 송 사악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당악 정재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를 출 때 〈보허자〉의 앞 부분(제1~2장)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창사를 첨가하기도 하는데, 이를 ‘수악절창사(隨樂節唱詞)’라 한다.
『고려사』 「악지」 『금합자보』 『대악후보』 『삼죽금보』 『속악원보』
권오성, 「『오희상금보』의 보허자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994. 전지영, 「당악에 대한 몇가지 고찰」, 仙華 金靜子敎授 回甲 紀念 音樂學 論文集, 2002. 오용록, 「조선후기 당악의 변천」, 『동양음악』 32,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10. 임미선, 「보허자․낙양춘의 한국적 수용에 대한 대비적 고찰」, 『국악원논문집』 39, 2019. 장사훈, 「보허자논고」, 『국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6. 장사훈, 「보허자론속고」, 『전통음악의 연구』, 보진재, 1975. 정화순, 「현행 한국 당악의 악조와 그 특징에 관한 연구」, 『한국음악연구』58, 2015.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