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조의 이름
평조는 향악 음계, 향악 음계 기준음의 높이를 지칭하는 용어, 판소리의 악조 용어로 쓰인다.
『삼국사기』 「악지」에 거문고의 악조로 우조와 함께 평조가 소개되었다. 이는 『악학궤범』에서 설명한 대현5괘를 기준으로 하는 악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악학궤범』에서 평조는 음계의 하나와 음계 기준음의 음높이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였다. 음계로서의 평조는 아악의 5조, 궁조ㆍ상조ㆍ각조ㆍ치조ㆍ우조 중 치조라 설명하였는데, 이는 솔미제이션으로 sol-la-do′-re′-mi′로 구성되는 음계를 말한다. 그러나 『양금신보』의 거문고 산형에 평조는 ‘치우조(徵羽調)’라 한 것이 치조(徵調: 林鍾調)와 우조(羽調: 南呂調)를 지칭하는 것이니 『악학궤범』에서 평조를 치조라 한 것은 sol-la-do′-re′-mi′ 음계의 의미도 있지만, 우조(羽調: 남려조)인 계면조에 비해 한음 낮은 임종조(林鍾調)를 의미하는 것도 강하게 나타내는 설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편 『악학궤범』에는 7개의 음계 기준음 높이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중 첫 네 개의 조 즉, 일지(협종ㆍ고선), 이지(중려ㆍ유빈), 삼지(임종), 횡지(이칙ㆍ남려)는 거문고의 대현5괘에 자리를 잡아 내는 기준음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평조라 하였다. 즉 유현4괘를 기준음 자리로 하는 횡지(이칙ㆍ남려), 우조(무역ㆍ응종), 팔조(황종), 막조(대려ㆍ태주)를 높은조 우조라 한 것에 비하여 4도 낮은 대현5괘를 기준음 자리로 하는 낮은조라는 의미이다.
『양금신보』에서는 〈중대엽〉의 네 악조 우조ㆍ평조ㆍ우조계면조ㆍ평조계면조 중 평조가 보인다. 이중 평조는 이혜구에 의하여 평조평조로 해석되었는데, 앞의 평조는 대현5괘를 기준음 자리로 하는 악조 즉 임종조라는 의미이고, 뒤의 평조는 음계로 아악 5조중 치조 즉, sol-la-do′-re′-mi′ 음계를 지칭한다. 그러나 『양금신보』 거문고 산형에 평조는 ‘치우조(徵羽調)’라 한 것이 치조(徵調: 林鍾調)와 우조(羽調: 南呂調)로 해석되고 있으니 『양금신보』 평조 기준음의 높이는 두 가지라 하겠다.
이형상의 『지령록(芝嶺錄)』 「동방아속악(東方雅俗樂)」(1706)에는 가곡의 악조로 평조ㆍ우조ㆍ계면조의 세 악조가 소개되었다. 이중 평조에 대하여는 “무엇을 평조라 하는가? 온후하고, 화평하며, 웅장하고, 법 삼을 만하며, 질박하고, 돈독하며, 아정하고, 순박한 것이다(何平調也? 溫厚 和緩 雄縟 典則 樺棠 敦遂 雅馴 運噩也.)”라는 풍도형용과 함께 그 음계를 ‘중려(궁)-임종(상)-남려(각)-황종(치)-태주(우)’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do-re-mi-sol-la 음계라는 점에서 처음 보이는 음계인데, 『악학궤범』의 평조 음계 설명대로 치(황종)를 기준음으로 보면 치(황종: sol)-우(태 : la)-궁(중려: do′)-상(임종: re′)-각(남려: mi′)의 음계가 된다. 그렇다면 우조에서는 그 음계를 남려(궁: sol)-응종(상: la)-태주(각: do′)-고선(치: re′)-유빈(우: mi′)으로 소개하고 있어 이형상의 우조와 평조 음계 설명에는 혼란이 있다.
이후 향악의 평조 낮은 거문고 대현5괘를 기준음 자리로 하는 악조가 잘 쓰이지 않게되고 유현4괘를 기준음 자리로 하는 악조가 남게 되었고 그 음높이도 황종 하나로 고정되었다.
현대에 와서 판소리와 산조에도 평조라는 악조명이 쓰인다. 본래 판소리 산조에 정악식의 우조ㆍ평조ㆍ계면조 등의 악조명이 쓰이지 않다가, 정노식의 『조선창극사』(1940) 에는 우조와 계면조 두 가지의 정악식 악조명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김연수 창본 춘향가』(1967)의 「창조해설」에 판소리의 악조로 ’평조‘가 처음 보인다. 판소리 산조의 평조는 백대웅에 의하여 re-mi-sol-la-do′의 5음음계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그 do′에 해당하는 음의 높이가 유동적이어서 그 음계를 특정하기 어렵다. 한편 경기지역 민요의 음계는 sol-la-do′-re′-mi′인데 mi′는 조금 높게 불리기도 하여 ‘fa′’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향악에서도 황종-태주-중려-임종-남려의 5음음계에서 ‘남려’가 조금 높게 연주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여 평조의 제5음의 음높이 해석에 따라 우조와 같은 sol-la-do′-re′-mi′, 혹은 백대웅 주장의 판소리 평조 re-mi-sol-la-do′로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즉 한 가지의 음계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김소희 등 명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판소리의 평조는 《영산회상》의 조, 즉 정악의 계면조와 같다고 하였다. 과연 판소리와 산조에서 평조는 완전4도에 장2도가 얹혀진 re-sol-la의 음계가 골간을 이루고 이중 re는 요성(搖聲)을하고 la는 퇴성(退聲)을 하여 장사훈 주장의 《영산회상》 계면조{황종(搖聲)-중려-임종(退聲)}와 유사하다. 그리고 이러한 판소리 산조 평조의 특징은 판소리 산조의 우조와 구별된다. 오히려 음계의 4도+2도 구조는 계면조와도 유사한데, 계면조의 요성이 굵고 강하게 떨어주고, 퇴성은 강해져서 높은 음에서 꺽어주는 방식으로 강하게 표현하는 것에 비하여 평조의 그것은 비교적 약한 시김새(요성과 퇴성)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한편 이보형은 한국의 기층음악인 민요와 무속음악의 음계를 지역별로 동부지방(경상도ㆍ강원도ㆍ함경도), 전라도지방, 서울ㆍ경기지방, 서도지방(황해도ㆍ평안도)으로 구분하며 그 지역 기층음악의 음계를 각각 동부토리(메나리토리), 남부토리(육자배기토리), 경토리(창부타령토리), 서도토리(수심가토리)로 구분하였는데 이중 동부토리와 남부토리를 합하여 동남토리로 묶으면서 이를 계면조에 대응시켰고, 경토리와 서도토리를 합하여 경서토리라 하며 이를 평조에 대응시켰다. 과연 경토리의 음계가 sol-la-do′-re′-mi′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평조의 음계와 같은 형태이다.
최헌(崔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