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쇠, 상공운님
‘상쇠’는 높다는 의미의 ‘상(上)’과 꽹과리와 같은 말인 ‘쇠’를 합친 말이다. 꽹과리를 치면서 농악 연행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으로 농악 문화권에서는 일반 치배와 구분하는 뜻에서 ‘상쇠 어른’, ‘상쇠 영감’이라고 부르는 문화적 규범이 있었다. 또, 전문적인 농악인으로 구성된 유랑 예인집단인 남사당패의 경우는 상쇠를 상공운님이라고 부른다. 두레패ㆍ걸립패ㆍ남사당패 등의 다양한 농악 집단이 연행하는 모든 의식과 연희는 상쇠의 꽹과리 연주 가락과 신체 행위에 따라 진행된다. 지신밟기, 마당밟이, 매굿과 같은 의식성 강한 농악 연행에서는 고사소리를 부르기도 하여 이런 상쇠의 역할은 종교의 사제에 비유되기도 한다.
농악패(치배)는 꽹과리ㆍ징ㆍ장구ㆍ북 등의 타악기를 연주하는 앞치배와 양반ㆍ할미ㆍ각시ㆍ중ㆍ무동 등의 가장 인물로 참여하는 뒷치배(잡색)가 주요 구성원이며 이 외 기수(旗手)와 나발수, 쇄납수 등이 있다. 이 중 농악패 행렬의 가장 앞에 서거나, 행렬을 이탈하여 자유롭게 오가며 농악 연행 전반을 연출하는 쇠잽이를 상쇠라고 한다. 또한 판굿에서는 상쇠놀음을 통해 개인의 재능을 뽐내기도 하고, 작은 극 형태의 잡색놀음에서는 규율을 다스리는 역할로 분하여 극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처럼 상쇠는 꽹과리를 치며 농악 전체 연행을 총지휘하는 한편으로 개인적 예술 역량을 표출하는데, 이는 꽹과리 연주 능력뿐만 아니라 머리 위에 쓰는 일종의 무구인 ‘상모’(또는 전립)를 조작하는 재능인 이른바 상모놀음/부포놀음을 통해서도 두드러진다. 상쇠를 비롯하여 쇠잽이들이 쓰는 상모는 부포라고 부르는 풍성한 수술이나 꽃 모양이 달려 상쇠의 머리 놀림에 따라 조절되어 무구를 활용한 춤사위로 계발된다. 이 부포의 형태는 복장과 마찬가지로 지역이나 단체의 성격을 구분하는 표식으로도 삼고 있는데, 크게 부들상모와 뻣상모로 구분한다. 둘의 차이는 구조적 유연성에 있다. 부들상모는 전립 형태의 상모 꼭지에 놋쇠로 만든 징자와 실을 꿰어 만든 작자를 달고, 그 끝에 실을 꼬아 만든 물체를 연결하고 물체 끝에 고니ㆍ꿩ㆍ칠면조 등 다양한 조류의 깃털이나 종이로 만든 부포를 달아 늘어뜨린 모양이다. 부들상모의 장점은 물체가 끈으로 되어 있어 특별한 조작이 없을 경우는 전립 아래로 길게 늘어지며 능청거리고 나부끼는 형세이고, 외사ㆍ양사ㆍ사사ㆍ양산ㆍ전치기ㆍ좌우전치기ㆍ퍼넘기기ㆍ해바라기ㆍ면도리ㆍ연봉놀이ㆍ이슬털이 등 연행자의 의도된 조작에 따라 허공에 다양한 형체를 그리며 시각적인 미를 더하게 된다. 뻣상모는 제작 면에서 물체 부분이 부들상모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뻣상모의 물체는 딱딱한 재질을 써서 상모를 썼을 때 머리 위에 직선으로 꼿꼿하게 세워지도록 고안되었으며, 물체 끝에 달린 부포는 크기도 크고 조류의 털을 풍성하게 써서 마치 허공에 큰 연화(蓮華)가 둥실 떠 있는 듯한 화려미를 자랑한다.
상쇠는 농악대의 모든 연행을 지휘하기 때문에 농악 공연 문법과 내용에 대한 지식과 실행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예술적 재능에 있어서도 집단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에 숙의를 통해 추대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마을공동체 농악대에서 재능이 뛰어난 상쇠를 외부에서 모셔다가 대우하며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한편 호남 좌도농악 문화권의 마을 농악대에서는 농악 전통의 계속성을 위한 방편으로 청소년 연령의 재능 있는 소년을 낙점하여 성인 남성으로 구성된 농악대의 농악 연행에 끼워 지식과 실제를 함께 익히는 예비 상쇠(농구)교육을 하기도 하였다. 이 두 사실만으로도 농악 연행과 지속에 상쇠 역할의 중대성 정도를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양진성ㆍ양옥경ㆍ전지영, 『임실필봉농악』, 민속원, 2016. 정병호, 『농악』, 열화당, 1986. 홍현식ㆍ김천흥ㆍ박헌봉, 『호남농악(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33)』, 문화재관리국, 1967. 김혜정, 「농악의 음악적 특징과 지역별 차이」, 『농악, 인류의 신명이 되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기념 특별전』, 2014.
양옥경(梁玉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