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금(草琴), 풀피리, 호드기, 호들기, 최금, 버들피리, 갈잎피리, 보리피리
식물의 잎을 그대로 불어 연주하거나 잎, 줄기, 나무껍질 등을 말거나 관대로 만들어 입으로 불어 연주하는 악기의 총칭.
식물의 잎을 그대로 불어 연주하거나 잎, 줄기, 나무껍질 등을 말거나 관대로 만들어 입으로 불어 연주하는 악기의 총칭이다. 이러한 잎, 줄기, 나무껍질을 이용하여 연주하는 악기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악기 중에 하나로 동ㆍ서양의 여러 문화권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한국에는 잎을 입에 대고 그대로 불어 연주하거나 갈대 또는 보리의 짚 줄기,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서 사용하는 다양한 초적이 있고, 그 외에도 잎을 말아서 원통형으로 만들어 연주하거나 복숭아 나무껍질을 말아서 관대로 사용한 초적이 문헌에 나타나기도 한다. 현재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4호,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의 초적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수서(隋書)』 「동이열전(東夷列傳)」 고구려조에 기록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의 음악에는 오현, 금, 쟁, 필률, 횡취, 소, 고 등이 있으며 갈대를 불어 음악을 연주하였다고 하였다.(樂有五絃琴箏篳篥橫吹簫鼓之屬 吹蘆以和曲) 같은 내용이 북송대의 저서 『책부원구(冊府元龜)』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인용되어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한국의 초적류 악기는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연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초적에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은 조선 성종(成宗, 1457~1495)대 간행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전한다. 『악학궤범(樂學軌範)』 권7 「향부악기도설(鄕部樂器圖說)」 중 초적 항을 보면 초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초적은 옛날에는 복숭아나무 껍질을 만 것이 있었다. 옛사람이 이르길 잎을 머금고 불면 그 소리가 맑고 크다 하였으며 귤나무의 잎이나 유자나무 잎이 좋다고 하였다. 또 갈대잎을 말면 그 형성이 가(笳)의 머리와 같다 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벚나무 껍질을 즐겨 사용한다. 대개 나뭇잎은 단단하고 두꺼운 것이면 모두 사용 가능하다. 나뭇잎의 윗부분을 말아 입에 머금고 불면 윗입술로부터 소리가 난다 … (按草笛古有卷桃皮 古人云衘葉而嘯其聲淸震橘柚葉尢善 又卷蘆葉爲之形如笳首 今人好用樺皮 凡木葉㓻而厚者皆可用 上靣卷含而吹聲従上唇…)’
『악학궤범』의 초적 기록을 보면 여러 종류의 초적 설명이 혼재되어 있다. 먼저 과거에 복숭아나무 껍질을 말아 만든 초적이 있다 하였는데 이는 도피피리(桃皮篳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피피리(桃皮篳篥)는 복숭아나무 껍질을 말아 관대를 만들어 부는 악기로 현재 전승되는 국악기 중 피리와 유사한 악기이다. 그 외형은 송대(宋代)의 진양(陳暘)이 저술한 『악서(樂書)』 권132 악도론(樂圖論) 호부(胡部) 팔음(八音) 목지속(木之屬)의 도피필률(桃皮觱篥)항에 묘사되어 있다. 그 설명을 보면 복숭아나무 껍질을 말아 분다(桃皮卷而吹之)고 설명되어 있으며, 그 형상을 보면 관대와 지공이 있는 피리류의 악기임을 알 수 있다. 반면 입에 귤나무 잎이나 유자나무 잎을 머금고 분다고 묘사된 초적에 관한 설명과 잎의 윗부분을 말아 입에 머금고 불면 윗입술로부터 소리가 난다는 설명은 나뭇잎을 직접 입에 대고 부는 종류의 초적의 설명에 대한 내용이다. 즉 나뭇잎이나 나무껍질, 줄기를 말아 관대를 만드는 류의 악기와 잎을 그대로 입에 대고 부는 두 유형의 초적이 설명되어 있는데 전자는 오늘날 버들피리와 같은 호드기 또는 호들기류의 초적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잎을 그대로 입에 대고 부는 초금(草琴)류의 초적이라 할 수 있다.
호드기류 초적의 경우 『수서(隋書)』, 『북사(北史)』 등의 중국 사서에 고구려와 백제의 음악에 사용된 도피피리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유래를 삼국시대 이전으로 소급해 볼 수 있다. 초금류 초적의 기록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원시적인 형태와 연주법으로 보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연주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초적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기록이 등장한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고율시(古律詩) 중 「문가성(聞笳聲)」이란 시가 있는데 이 시에는 누가 숲에서 푸른 잎을 하나 따다 입에 물고 맑은 소리를 내었는가(誰摘林間一葉靑 拈吹口吻成淸弄)라는 구절에 초적에 관한 묘사가 보인다.
조선시대 『연산군일기』에는 초적 또는 초금을 잘 부는 기녀를 불러들이라는 기사가 자주 보이며, 인조대의 『승정원일기』에도 초적을 잘 부는 맹인 김영백(金英白)의 이야기가 전한다. 민간에서도 초적이 널리 연주된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 중기 문인 조임도(趙任道, 1585~1664)의 『간송집』에는 초적을 잘 부는 자를 불러 풍류를 즐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영조대의 『진연의궤』(1744)에는 관현맹인 악사인 강상문(姜尙文)이 초적 악사로 궁중 진연에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일제강점기 초적 또는 초금 연주의 명인이었던 강춘섭(姜春燮)의 초적연주가 유성기음반으로 취입되기도 하였으며, 여러 문학작품에 풀피리가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초적이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4호(박찬범, 朴燦凡),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오세철, 吳世哲)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이와 같이 초적은 한반도에 고대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전통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비교적 간단한 형태의 초적의 경우 일반인도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현재도 버들피리, 호박줄기로 만든 풀피리, 나뭇잎으로 부는 피리 등 다양한 초적이 연주되고 있다.
○ 구조와 형태
초적은 크게 호드기류와 초금류로 나눌 수 있다. 호드기류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나무껍질이나 줄기 등을 이용해서 관대를 만들고 입으로 부는 부분은 겹서(double reed)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사용하는 유형과 잎 원통형으로 말아서 연주하는 유형으로 나뉜다. 초금류는 잎을 그대로 입에 대고 부는 것이므로 소리를 내는 구조는 대부분 유사하다. 연주 형태로 보면 홑서악기(single reed)라 할 수 있다. 초금류의 초적은 잎의 윗부분이나 또는 잎 자체를 살짝 말거나 구부려서 입에 머금고 잎의 면과 윗입술 사이로 바람을 불어서 연주를 한다. 잎의 종류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과거에는 귤이나 유자 잎을 선호했다고 하며, 현재도 동백, 유자, 귤잎 등 다양한 나뭇잎을 사용한다.
○ 음역과 조율법
초금은 악기의 재료와 구조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기 때문에 명확한 음역에 관한 기록은 없다. 또한 초적의 종류에 따라서도 음역대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잎을 그대로 입에 대고 연주하는 초금류 초적의 경우 나뭇잎의 상태, 연주자의 역량에 따라 음역대가 다르다. 초적에 관한 설명의 사례에 따라 한 옥타브에서 두 옥타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역대가 나타난다. 일제강점기 유성기음반에 남겨진 강춘섭의 초적 연주를 분석한 이진원에 따르면 이 음반에 수록된 초적 연주는 약 두 옥타브 정도의 음역대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 연주방법
호드기류 초적의 경우 관대를 만들고 거기에 지공을 뚫고 서를 만들어 국악기의 피리처럼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도피피리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현재 만들어지는 버들피리는 줄기를 잘라 끝부분의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만 남은 끝부분을 손으로 눌러 납작하게 만들어서 서를 만들어 피리처럼 부는 방식으로 연주한다. 나뭇잎을 말아 원통현 관대를 만들어 부는 풀피리는 현재 잘 나타나지 않고, 나뭇잎을 입에 직접 대고 부는 초금류가 많이 연주되는데 초금류 초적의 경우 잎을 살짝 말아 잎에 맞게 대고 잎의 면과 윗입술 사이로 숨을 불어 연주를 한다. 이 때 숨의 세기와 입술의 위치 단단함 정도 등을 조절하여 높고 낮은 소리와 다양한 음량의 소리를 낸다.
○ 연주악곡
초적은 역사적으로 궁중과 민간에서 널리 사용된 만큼 연주악곡도 다양하다. 초적으로 청성곡을 연주하기도 하고 산조나 시나위, 민요 등을 연주하기도 하며 창작곡에도 사용한다. 민간인도 쉽게 연주가 다양한 만큼 초적으로 연주하는 곡에는 제한이 없다고 할 수 있다.
○ 제작 및 관리방법
초적은 악기의 특성상 바로 자연상태의 재료를 구해 사용하고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드기류 초적은 나무의 가지나 식물의 속이 비어 있는 줄기 부분을 이용해 즉흥적으로 제작하여 사용하며, 초금류의 초적도 자연상태의 나뭇잎을 그대로 사용한다.
초적은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연주된 악기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궁중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전통음악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적: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4호(2000) 풀피리: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2002)
『간송집』 『(갑자)진연의궤』(1744) 『동국이상국집』 『북사』 『삼국사기』 『수서』 『승정원일기』 『악서』 『악학궤범』 『조선왕조실록』
송방송, 『한겨레음악대사전』, 보고사, 2012. 이진원, 『한국 풀피리 음악 문화』, 채륜, 2010. 이혜구 역, 『역주 악학궤범』, 민족문화추진회, 1989. 이진원,「중국 취엽문화 연구」, 『음악과 문화』 6, 세계음악학회, 2002. 이진원,「풀피리 연구」, 『한국음반학』 4, 한국고음반연구회, 199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
홍순욱(洪淳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