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부는 양금 고악보, 후반부는 828수의 시조시가 연음표와 함께 가곡 편차에 따라 수록된 20세기 초의 고악보 겸 가집으로 필사본 1책이다.
『협률대성』의 편찬자와 편찬 시기는 미상이다. 수록내용 등을 통하여 『가곡원류』계 가집의 하나임을 알 수 있으나, 다른 가집과 달리 앞부분에 양금악보를 수록하고 있다. 본래 강릉 선교장 주인인 이근우(李根宇, 1877-1938) 소장으로 학계에 알려졌고, 그 아들 이돈의를 거쳐 전승되다가 2005년 이후 도난 되어 현재는 원본의 행방을 알 수 없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가람 이병기(李秉岐)가 이를 필사한 가람본이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 소정되어 있으며, 1984년 국립국악원이 『한국음악학자료총서14』에 가람본을 영인하여 출간한 바 있다.
○ 체재 및 규격 원본 분실로 책의 규격을 알 수 없으나, 영인본 자료에 의하면 표지에는 한자로 ‘協律大成’이라 책명을 기록하였는데, ‘협률’이란 고대 중국에서 ‘시를 음악에 맞추던 일’을 가리키는 말로, ‘문학작품인 시를 음악선율에 얹어 노래를 만드는 일’을 뜻한다. 이 책에서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시가(詩歌) 장르의 하나인 시조시(時調詩)를 중대엽·삭대엽 등 가곡에 얹어 부를 수 있도록 악곡별로 노랫말을 배열하고, 각 노랫말에 연음표(連音標)를 상세하게 병기하여 가집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편찬하였다는 의미를 담아 책명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전반부는 조선후기 풍류방의 중요한 연주곡목의 하나인 <여민락>을 비롯한 기악곡의 양금 선율과 가곡 반주를 위한 양금 선율을 기록하였으며, 후반부는 가곡과 가사 등 풍류방 성악곡의 노랫말을 악곡별로 모아 기록하였다.
○ 소장처
『협률대성』 원본은 강릉 선교장(船橋莊) 주인이었던 경농(鏡農) 이근우(李根宇, 1877-1938) 소장본으로 아들인 이돈의(李燉儀)를 거쳐 전승되다가 2005년 이후 도난 되어 현재는 행방을 알 수 없다. 다만, 20세기 초에 가람 이병기가 경농본을 필사한 가람본이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 전하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자료총서7』(1960)에 가람본을 저본으로 한 등사본이 간행된 바 있고,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14』(1984)에 가람본의 영인본이 실려 있다. 1987년 황순구가 간행한 영인본이 한국시조학회 『시조자료총서4』에 영인된 바 있다.
○ 편찬연대 및 편저자 사항
『협률대성』의 편찬연대와 편찬자는 미상이다. 초기 소장자로 알려진 이근우의 부친 이회원(李會源, 1830-1885)은 대원군과 친분이 있어 운현궁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아들인 이근우도 일제강점기 중추원의원을 지내면서 서울지역 왕래가 활발하였고, 풍류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당시 교류했던 인물들을 통해서 『협률대성』이 강릉 선교장에 전해져 소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시기는 20세기 초 무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 구성 및 내용
『협률대성』은 양금보와 가집이 합본된 20세기 초반의 문헌으로, 전반부는 ‘시구차용보(詩句借用譜)’로 기보된 양금 악보로 <여민락>·<본환입>·<세환입>·<평조영산회상(*상영산)>과 가곡 양금반주 선율과 장단이 해당 노랫말과 함께 실려 있는데, 악곡은 우조 일곱 곡과 계면조 열다섯 곡이 가창 순서에 따라 수록되었다. 전반부 양금악보의 수록 악곡은 다음과 같다.
기악곡 | 여민락 | 2~7장 | 양금보 | 계면조 | 중거삭대엽 여창 | 누구 나 자는 | |
본환입 | 삼삭대엽 | 원문번장 | |||||
세환입 | 계얼롱 | 기러기 풀풀 | |||||
평조영산회상 | 초~5장 | 얼롱 | 십재를 경영 | ||||
양금보 | 우조 | 초삭엽 | 천황씨 | 계롱 | 월일편 | ||
이삭대엽 | 강호 | 시롱반락 | 가마귀 | ||||
평거삭엽 여창 | 이몸 쉬여져서 | 우락 | 군불견 | ||||
삼삭대엽 | 굴원충혼 | 기2 | 우슬부슬 | ||||
소용 | 어제밤 | 얼락 | 벽사창 | ||||
반엇삭엽 | 삼월삼일 | 편락 | 나무도 바히 | ||||
기2 | 흐리나 맑으나 | 편삭대엽 | 진국명산 | ||||
계면조 | 초삭대엽 | 앞못에 | 얼편 | 한송정 | |||
이삭대엽 | 화산의 춘일난 | 계락 | 철총마 |
후반부인 「영언전부(永言全部)」에는 828수의 시조시(時調詩)가 가곡의 악곡별 순서에 따라 연음표(連音標)와 함께 실려 있다. 「영언전부」 앞에는 일반적인 『가곡원류』계 가집과 같이 연음표 소개와 ‘가지풍도형용15조목(歌之風度形容十五條目)·매화점장단(梅花點長短)·장고장단(長鼓長短)이 실렸으며, 가곡 뒤에는 가사(歌詞) 8수의 노랫말이 실려 있다. 수록악곡과 악곡별 노랫말 수는 다음과 같다.
우조 | 초중화대엽 | 3 | |
언락 | 27 |
장대엽 | 1 | 편락 | 7 | ||
삼중대엽 | 2 | 편삭대엽 | 22 | ||
계면조 | 초중대엽 | 1 | 얼편 | 10 | |
이중대엽 | 1 | 여창질 | 우조중대엽 | 1 | |
삼중대엽 | 1 | 계면이중대엽 | 1 | ||
후정화 | 1 | 후정화 | 1 | ||
대 | 1 | 대 | 1 | ||
우조 | 초삭대엽 | 10 | 장진주 | 1 | |
이삭대엽 | 35 | 대 | 1 | ||
우중거 | 17 | (여창) | 이삭대엽 | 13 | |
평거 | 22 | 중거 | 10 | ||
두거 | 22 | 평거 | 6 | ||
삼삭대엽 | 21 | 두거 | 12 | ||
소용 | 12 | 율당삭대엽 | 2 | ||
율당삭대엽 | 5 | 이삭대엽 | 17 | ||
계면조 | 초삭대엽 | 3 | 중거 | 20 | |
이삭대엽 | 82 | 평거 | 21 | ||
중거 | 53 | 두거 | 13 | ||
평거 | 62 | 농가 | 14 | ||
두거 | 67 | 우락 | 17 | ||
삼삭대엽 | 23 | 계락 | 14 | ||
만횡 | 25 | 편삭대엽 | 16 | ||
농가 | 57 | 얼편 | 2 | ||
계락 | 31 | |
(삭대엽) | 1 | |
우락 | 19 | (중거) | 1 |
이어서 가사(歌詞) 8수를 실었는데, 어부사(漁父詞)·처사가(處士歌)·상사별곡(相思別曲)·춘면곡(春眠曲)·명기가(名妓歌)·관동별곡(關東別曲)·백구사(白鷗詞)·권주가(勸酒歌)이다. 이중 명기가와 관동별곡은 현행 12가사에 포함되지 않는 곡이며, 권주가는 ‘ᄌᆞᆸ우시오~’로 시작되어 현행 권주가와 노랫말이 다른 구가(舊歌)에 해당한다. 가사에 이어 마지막으로 <가종주대(歌終奏臺) 여창>으로 ‘이리ᄒᆞ여도 太平聖代~’가 연음표를 병기하여 수록되었다.
『협률대성』 전반부는 <여민락>을 비롯한 기악곡과 가곡반주의 양금선율이 장단 및 노랫말과 함께 독특한 음고기보법인 ‘시구차용보(詩句借用譜)’로 비교적 정확하게 기록되었으며, 후반부는 연음표가 충실하게 표기된 가곡의 노랫말이 악곡별로 풍부하게 실린 점에서 20세기 초 가곡의 전승 상황을 소상하게 기록한 양금고악보 겸 가집이다. 특히 『협률대성』 양금보에서 채택한 음고(音高) 기보법인 ‘시구차용보’는 양금 스물한 개 음의 음높이를 문자로 표기하였는데, 기존의 한글이나 한자 육보(肉譜)가 아니라, 당나라 시인인 두보(杜甫, 712~770)의 작품인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중 이백(李太白, 701~762)을 노래한 7언 율시 한 편의 제1~3구 스물한 자(李白一斗詩百篇 長安市中酒家眠 天子呼來不上船)를 채택하여 음고 표기의 수단으로 삼은 독특한 기보방식이다. 또한 양금 가곡반주 악보에 사용한 장단 표기법은 ◯(합장단, 덩), ❨(북편, 궁), ❩(채편, 덕)의 세 가지 기호를 리듬에 맞추어 적절한 간격을 유지한 채 표기함으로써 정간보 수준의 시가(時價) 해석이 가능하도록 기보한 악보이다. 가집부분의 경우도 『가곡원류』(국악원본)에 비하여 안민영의 작품 일부가 누락되었고, 대원군이나 그 아들인 이재면과 관련된 작품을 배제하는 등 당시 가곡 연창 중심으로 작품을 선정한 점, 대부분 작품에 연음표를 충실하게 표기하는 등 가집으로서의 완성도를 크게 높인 치밀성이 돋보인다.
『가곡원류』(국악원본) 『협률대성』
김영운, 「양금 고악보의 기보법에 관한 연구」, 『한국음악연구』 15·16, 한국국악학회, 1986. 김영운, 「歌集 協律大成 의 編纂 意識」, 『李惠求博士九旬紀念音樂學論叢』,이혜구학술상운영위원회, 1998. 황인완, 『歌曲源流』의 異本 系列 硏究』,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강경호, 「가집 『협률대성』의 편찬 특성과 전승·향유의 문화적 의미」, 『시조학논총』 40, 한국시조학회, 2014.
김영운(金英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