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에서 부는 바람으로, 자연 이치에 맞게 조화롭게 부는 바람이며, 우리 악론(樂論)과 춤의 원리를 담고 있는 개념
팔풍은 8방위에 따라 또는 8절기에 따라 부는 바람을 말한다. 고대인들은 팔풍에서 각각 다른 질감과 기운을 느끼며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추상화했으니, 『주역(周易)』의 음양 및 팔괘론과 결합하면서 조화를 이룬 팔풍으로 만물화평을 이루고자 했다. 또 악론(樂論)에서 춤은 팔풍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팔풍은 춤의 원리이기도 하다.
팔풍은 풍(風)으로부터 그 개념이 발생했다. 중국 상고시대에 풍은 신격(神格)으로서 상제(上帝)를 대리한다고 생각했으며, 사방의 사풍과 사풍신을 설정했다. 또 풍은 무언가를 일으키고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바람이 불면 벌레가 생겨나고 팔일이 지나면 변화를 일으킨다.(風動蟲生, 故蟲八日而化.)”1고 했으니, 풍이 생명의 기운을 일으키고, 자라나게 해서 성충으로 변화시킨다고 했다. 풍이 형태를 갖춘 사물은 아니지만, 사물을 움직이게 하고 기운을 갖고 있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또한 풍은 여러나라의 민요를 뜻했다. 『시경(詩經)』에는 15개 나라의 풍을 수록했으니, 민요인 풍에는 민심 즉 백성의 마음, 정조가 담겨있다고 보았다.
1) 段玉裁 注, 『說文解字注』: “風動蟲生故蟲八日而化.” 許愼/ 段玉裁 注, 『說文解字注』(臺北: 藝文印書舘, 1973) 2판: 684쪽.
사풍은 팔풍으로 확대되었다. 『 여씨춘추(呂氏春秋)』 「유시람」에서 “무엇을 팔풍이라 하는가. 동북에서 부는 바람을 염풍(炎風), 동방에서 부는 바람을 도풍(滔風), 동남에서 부는 바람을 훈풍(薰風), 남방에서 부는 바람을 거풍(巨風), 서남에서 부는 바람을 처풍(凄風), 서방에서 부는 바람을 요풍(飂風), 서북에서 부는 바람을 려풍(厲風), 북방에서 부는 바람을 한풍(寒風)이라 한다.(何謂八風. 東北曰炎風, 東方曰滔風, 東南曰薰風, 南方曰巨風, 西南曰凄風, 西方曰飂風, 西北曰麗風, 北方曰寒風.)”2고 했다. 공간을 기준으로 8방위에 따라 다른 질감과 특징을 보여주는 팔풍을 구분한 것이다.
2) 『呂氏春秋』 「有始覽」: “何謂八風. 東北曰炎風, 東方曰滔風, 東南曰薰風, 南方曰巨風, 西南曰凄風, 西方曰飂風, 西北曰麗風, 北方曰寒風.” 여불위/ 김근 역, 『여씨춘추』 1권(서울: 민음사, 1993): 17쪽.
시간을 기준으로 8절기에 따라 팔풍을 구분하기도 했다. 1세기에 편찬된 『백호통의(白虎通義)』 「팔풍」에서, 풍은 만물을 길러서 결실을 맺도록 하며, 팔풍은 팔괘와 상관적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음과 양이 만남으로써 풍이 생겨난다고 했다. 주역(周易)과 결합하며 8절기의 생산활동에 따라 팔풍을 설명했다. “동지를 기준으로 해서 45일이 지나면 조풍(條風)이 불어온다. ‘조’는 ‘자라나다’의 뜻이다. 여기에서 45일이 지나면 명서풍(明庶風)이 불어온다. ‘명서’는 ‘여럿을 반갑게 맞이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45일이 지나면 청명풍(淸明風)이 불어온다. ‘청명’은 ‘시퍼렇게 날이 선 낟알의 까끄라기를 가리킨다. 여기서 45일이 지나면 경풍(景風)이 불어온다. ‘경’은 ‘크다’의 뜻이며, 양기(陽氣)로 인해 생물이 한껏 자라난다. 여기서 45일이 지나면 량풍(涼風)이 불어온다. ‘량’은 ‘차다’의 뜻이다. 음기가 작용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45일이 지나면 ‘창합풍(閶闔風)’이 불어온다. ‘창합’은 ‘거두어 간수하도록 경계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45일이 지나면 부주풍(不周風)이 불어온다. ‘부주’는 ‘사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음과 양이 만나서 서로에게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여기서 45일이 지나면 광막풍(廣漠風)이 불어온다. ‘광막’은 ‘크고 까마득하다’의 뜻이다. 양기가 작용을 개시한다. (距冬至四十五日條風至. 條者,生也. 四十五日明庶風至. 明庶者, 迎衆也. 四十五日清明風至. 清明者, 青芒也. 四十五日景風至. 景大風, 陽氣長養. 四十五日涼風至. 涼寒也. 行陰氣也. 四十五日昌闔風至. 昌闔者, 戒收藏也. 四十五日不周風至. 不周者, 不交也. 陰陽未合化也. 四十五日廣莫風. 廣莫者, 大也,行陽氣也.)” 8절기에 따라 부는 팔풍은 생산 및 사회활동이 결부되어 각 바람의 특징이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팔풍은 춤과 연관되어 있었다. 동주(東周, B.C 771~B.C 256)의 춘추시대를 기록한 『춘추좌전(春秋左傳)』에 팔음과 함께 팔풍이 언급되었다. 노(魯)나라의 은공(隱公) 시기에 “대저 춤이라는 것은 팔음을 조절하고, 팔풍을 행하는 것이다.(夫舞所以節八音而行八風.)”라고 했다. 춤을 출 때 팔음을 조절한다는 것은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며, 춤이 팔풍을 행한다는 것은 다양한 바람이 있듯이 음기와 양기가 조화된 움직임으로 춤을 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정치철학으로 보았을 때 팔음을 조절한다는 의미는 천지사방의 생명체가 조화로운 소리를 내도록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팔풍을 행한다는 것은 다양한 기운을 갖고 있는 바람을 조화롭게 운행하여 태평을 이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춤이 팔풍을 행한다는 것은 음기와 양기가 잘 조화된 춤 움직임을 행하여, 조화와 태평을 보여주는 춤을 행한다는 뜻이라고 하겠다.
팔괘 | 감(☵) (水) |
간(☶) (山) |
진(☳) (雷) |
손(☴) (風) |
이(☲) (火) |
곤(☷) (地) |
태(☱) (澤) |
건(☰) (天) |
팔음 | 가죽 | 박 | 대 | 나무 | 실 | 흙 | 쇠 | 돌 |
팔절 | 동지 | 입춘 | 춘분 | 입하 | 하지 | 입추 | 추분 | 입동 |
팔풍 | 광막풍 | 조풍 (융풍) |
명서풍 | 청명풍 | 경풍 | 량풍 | 창개풍 | 부주풍 |
악기 | 고․ 도 | 생․우․화 | 관․소․약 | 축․어․박 | 금․ 슬 | 훈․ 부 | 종․ 박 | 경 |
율려 | 황종 | 대려 ․ 태주 |
협종 | 고선 ․ 중려 |
유빈 | 임종 ․ 이칙 |
남려 | 무역 ․ 응종 |
천간 | 임․ 계 | 갑 ․ 을 | 병 ․ 정 | 경 ․ 신 | ||||
지지 | 자 | 축․ 인 | 묘 | 진․ 사 | 오 | 미․ 신 | 유 | 술․ 해 |
팔방위 | 북 | 북동 | 동 | 남동 | 남 | 남서 | 서 | 북서 |
유교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건국된 조선은 유교 예악론(禮樂論)을 수용했다. 성종 때 만들어진 『악학궤범』 「서(序)」에 악(樂)을 통해 풍속을 다스려야 한다는 점을 천명했고, 여러 악론(樂論)들이 언급되었다. 그중 “노래는 말을 길게 하여 율(律)에 맞추는 것이고[歌所以永言而和於律], 춤은 팔풍(八風)을 행하고 절주에 화합하는 것이다.([舞所以行八風而成其和節)”라고 했다. 춤은 팔풍을 행하는 것이라 했으니, 춤 움직임을 통해 팔풍의 조화를 실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춤은 절주에 화합한다는 것은 음악의 박자와 화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바람들이 자연의 이치에 맞게 조화롭게 불어야 온 세상 천지만물이 평화를 이룬다고 생각했듯이, 춤은 기운을 조화롭게 담은 팔풍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악학궤범』 ‘팔음도설’에 실린 팔풍은 서풍에 창개풍(閶闓風), 서북풍에 부주풍(不周風), 남풍에 경풍(景風), 동풍에 명서풍(明庶風), 동북풍에 융풍(融風), 서남풍에 양풍(凉風), 북풍에 광막풍(廣莫風), 동남풍에 청명풍(淸明風)이다. 팔풍에 따라 팔음,악기, 율려도 결합되어 있다.
팔풍은 우리 악가무의 악론(樂論)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그 이유는 팔풍을 단순히 물리적인 바람으로 보지 않고, 풍의 특징으로부터 추상화한 연행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풍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다양한 기운을 품고 있으며, 어느 곳이든 스며들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고, 주역 사상과 결합하면서 만물의 운행원리 중 하나로서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풍은 춤과 오랫동안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풍을 봉(鳳)이라는 새가 일으킨다고 생각했는데, 『산해경(山海經)』에서 봉은 스스로 춤춘다[鳳鳥自舞]고 했다. 즉 봉의 움직임을 춤으로 인식했으며, 춤의 움직임은 풍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팔풍의 원리는 무론(舞論)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 박종채(朴宗采, 1780~1835)는 「연암담헌풍류(燕巖湛軒風流)」에서 “금(琴)을 잘 타는 김억의 호가 풍무자(時有琴師金檍, 號風舞者,)”라고 했다. 즉 김억(金檍, 1746~?)의 춤이 다양하고 조화로운 풍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춤과 풍을 연관시키는 인식을 바탕으로 ‘풍무자(風舞者)’라는 호를 지어주었을 것이다.
『백호통의(白虎通義)』 『산해경(山海經)』 『시경(詩經)』 『여씨춘추(呂氏春秋)』 『악학궤범』 『춘추좌전(春秋左傳)』 반고 저 신정근 역주, 『백호통의(白虎通義)』, 소명, 2005. 성백효 역주, 『시경집전(詩經集傳)』, 전통문화연구회, 1993. 여불위 저 김근 역, 『 여씨춘추(呂氏春秋)』 2권, 민음사, 1993. 이혜구 역,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좌구면 저 신동준 역, 『춘추좌전(春秋左傳)』, 한길사, 2006. 최형주 해역, 『산해경(山海經)』, 자유문고, 2004.
김영희, 「전통춤의 움직임에 드러난 '風'의 양상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전통예술원 편,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 민속원, 2002 許愼 저 段玉裁 注,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臺北: 藝文印書舘, 1973.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