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慢)
경록무강지곡(景籙無疆之曲)
〈여민락〉은 15세기 전반 세종(世宗) 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노랫말로 하여 창작한 궁중 정재(呈才) 《봉래의(蓬萊儀)》에서 「용비어천가」의 한문 노랫말을 부르는 성악곡이었다. 〈여민락〉이라는 이름은 『맹자(孟子)』에 수록된 “백성과 함께 즐긴다”라는 뜻의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따왔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여민락〉이라는 제목의 악보로 전하는 이 곡은 『속악원보(俗樂源譜)』 권4에도 여민락만이라는 제목으로 동일한 내용의 가사와 악보가 수록되어, 『세종실록』의 〈여민락〉이 『속악원보』의 여민락만임을 알 수 있다.
○ 역사 변천
『세종실록』에 가사와 함께 〈여민락〉이라는 제목의 악보로 전하는 여민락만은 『속악원보』 권4에 10장의 악보가 가사와 함께 수록되고, 『속악원보』 권6에는 〈만〉이라는 곡명으로 5장의 현악기 악보가 수록되었다. 여민락만은 전정헌가와 등가 악대에 의해 연주되었지만, 고종대 이후 전정헌가 악대에만 사용하게 되어 관현악 합주에서 관악 합주 형태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여민락만은 20세기 초에 노랫말 없이 5장까지만 연주되었으나, 이후 10장까지 선율을 복원하여 현재는 10장 전체가 연주되고 있다.
○ 연행 시기 및 장소
임금이 행차할 때 행악으로 사용되었고, 궁중 연향과 조정의식에서 연주하는 연례음악이나 정재 반주에도 사용되었던 음악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여민락만이 당악의 악공을 선발하는 시험곡으로도 활용되었다고 전한다.
○ 음악적 특징
여민락만은 총 10장으로 구성되는데, 각 장은 11마루(장) 내지 12마루로 되어 있다. 각 마루의 길이는 짧게는 2박에서 길게는 9박으로 이루어진다. 이 음악은 1음 1박의 규칙적인 시가를 지니는데, 각 마루의 마지막 음은 2박 길이로 연주한다. 여민락만은 당악 계통의 음악으로, 황(黃:C4)ㆍ태(黃:D4)ㆍ중(仲:F4)ㆍ임(林:G4)ㆍ남(南:A4)ㆍ무(無:B♭4)의 6음 음계로 구성되어 있다.
○ 악곡명 여민락만은 여민락을 빼고 줄인 〈만(慢)〉으로 부르거나, 〈경록무강지곡(景籙無彊之曲)〉이라는 아명을 쓰기도 한다. 현악기 편성으로 연주하여 〈만엽치요곡(萬葉熾瑤曲)〉이라는 이름을 쓴 예도 있으나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 악대 및 악기편성 여민락만은 조선 시대 내내 전정헌가와 등가 악대에 의해 연주되었으나, 고종대 이후 전정헌가 악대로만 연주되었다. 이에 따라 관현 합주에서 관악 합주 편성으로 바뀌었고, 편종ㆍ편경ㆍ당피리ㆍ당적ㆍ대금ㆍ해금ㆍ아쟁ㆍ좌고 등이 사용된다.
현재 기악곡으로 연주되고 있어 노랫말이 없다.
여민락만은 임금의 행차나 궁중 연향 같은 의식에서 사용하던 음악으로, 조선 시대 궁중음악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6음 음계와 1음 1박의 규칙적인 리듬을 지닌 당악 계통의 음악이며, 『세종실록』에 악보가 전한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여민락 계통의 악곡 중 가장 오래된 음악으로 인정받고 있다. 20세기 이후 감상 목적의 연주음악으로 전승되어왔다. 가사가 탈락되어 기악화된 이 곡은 조선 시대 내내 관현 합주 형태로 전승되어 오다 고종대 이후 관악 합주 형태로 연주 전통이 바뀌게 된다.
『세종실록』 『악학궤범』 『속악원보』 『경국대전』
임미선, 『조선후기 공연문화와 음악』, 민속원, 2012. 반혜성, 「조선조 궁중과 풍류방에서의 여민락 변모 양상」, 『제4회 세계한국학대회발표논문』, 2008. 송방송, 「조선후기 여민락계 악곡의 전승 양상」, 『한국음악연구』 41, 2007. 이혜구, 「여민락고」, 『한국음악연구』, 1957. 임미선, 「여민락계 음악의 연주전통, 그 단절과 전승」, 『한국음악사학보』 49, 2012. Jonathan Condit, 「The Evolution of Yomilak from Fifteenth Century to the Present Day」, 『장사훈박사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1977.
이상규(李相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