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주사(將進酒辭)
정철(鄭澈, 1536~1593)이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노래하는 성악곡
○ 역사 변천 과정
정철이 〈장진주사〉를 지은 16세기부터 노래로 불렸지는 미상이다.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이 『금합자보』(1572)에 등장하나, 평시조를 노래하는 형태였다. 16세기에 장진주와 같은 사설시조를 정철이 〈장진주사〉를 지은 16세기부터 노래로 불렸지는 미상이다.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이 『금합자보』(1572)에 등장하나, 평시조를 노래하는 형태였다. 16세기에 장진주와 같은 사설시조를 가곡으로 부르는 형태는 없었기 때문에 16세기에는 단순히 읊조리는 형태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17세기 이래로 『송강가사』 여러 판본에 전하며, 18세기 가집 『청구영언』에 전한다. 사설시조가 가곡의 노랫말로 수용된 것은 18세기 후반 무렵이다. 『청구영언』에 장진주가 수록된 점에서 늦어도 18세기에 전문 가객에 의해 불리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삼죽금보』(1841)에 장진주의 거문고 가락이 전하는 점을 참고하면 19세기에 장진주가 가곡처럼 기악반주를 곁들여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중반의 가집들에는 여창가곡 작품 뒷부분에 장진주와 〈장진주대〉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 무렵에는 장진주가 여창 가곡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진주는 20세기에 거의 불리지 않고, 악보로 전해지다가 최근에 조순자에 의해 다시 불려지고 있으며 2024년에 노래와 반주의 총보로 편찬되었다.
○ 음악적 특징
장진주는 가곡과 같이 5장으로 되어 있다. 창법이나 선율적 측면에서 여창 가곡의 특징이 많다.
이백의 〈장진주사〉가 남성적인 호탕함을 보이는 것에 비해 송강의 작품은 여성적인 여린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여창가곡의 선율을 차용해서 부른 것으로 보인다.
○ 형식과 구성
여느 가곡과 같이 5장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평조에서 계면조, 다시 계면조에서 평조로 여러 차례 바뀌다가 마지막에는 계면조로 끝난다. 전체적으로 계면조 위주로 되어 있다. 여창 계면가곡 중 〈이수대엽〉, 〈중거〉, 〈평거〉, 〈두거〉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다만, 3장 앞 부분에만 여창 우조가곡 중 〈중거〉, 〈평거〉, 〈두거〉와 유사한 선율이 있다.
장단은 가곡의 16박장단과 시조 8박장단이 쓰이는데, 1~2장은 가곡 16박장단, 3장은 8박장단, 4~5장은 16박장단으로 부른다. 평조로 시작해서 계면조로 바뀌었다가 다시 평조로 부른다.
〈장잔주사〉는 사설시조로 3장이 초장과 종장보다 훨씬 길다. 노랫말은 술로써 허무한 인생을 달래는 일종의 권주가이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초장> | 잔 먹사이다 |
<2장> | 또 한 잔 먹사이다. |
<3장> | 꽃 꺾어 주를 놓코 |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사이다. | |
이 몸 죽은 후에 | |
지게 우희 거적 덮어 | |
주푸레여 메어가나 | |
유소보장(流蘇寶帳)의 | |
백부시마 울어예나 | |
어욱새 더욱새 | |
덕게나무 백양숲에 | |
가기 꽃 가량이면 | |
누른해 흰 달과 | |
굵은 눈 가는 비며 | |
쇠 소리 바람 불 제 | |
뉘 한 잔 먹자하리 | |
<4장> | 하물며 |
<5장> | 무덤 우에 |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들 어떠리 |
술로써 인생의 허무함을 달래는 노랫말을 여창가곡 선율에 얹어 부르는 점이 특이하다.
국립국악원 소장, 『歌詞譜』 『삼죽금보』
이주환 편, 『가곡보 속』, 국립국악원 가곡연구회, 1962. 조순자, 『여창가곡 열여섯닙』, 가곡전수관, 2024. 김영덕,「장진주의 악곡구조분석」,『한국음악사학보』 52, 한국음악사학회, 2014. 신대철,「삼죽금보의 가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1. 안정아,「장진주와 여창가곡의 비교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정해임,「장진주의 선율형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2.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