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정하다’는 의미로 감정이 절제된 형태의 음악 계통을 지시하는 장르적 개념
정악에서 정(正)은 아정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정한 음악이 모두 정악은 아니다. 음악상으로 정악은 감정을 절제한 형태로서 주로 선비들이 즐긴 《영산회상》, 가곡 등의 아정한 음악을 상징하는 미학적 개념으로 장르적 성격을 띤다. 20세기에 들어서 조선정악전습소에서 가르친 《영산회상》ㆍ가곡ㆍ가사ㆍ시조 등의 교육내용과 단체명에 정악을 넣어 쓰면서 그 개념이 정착되었다. 이후로 자연스럽게 민속악과 대비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 구성요소 및 원리
정악은 사회적으로 재인이나 광대보다 격이 높게 인식되었던 풍류객들이 향유했던 음악이다. 정악은 실내악 형태의 기악곡인 《영산회상》·〈보허사〉·〈여민락〉 등이 중심을 이루지만, 점차 가곡ㆍ가사ㆍ시조 등의 성악곡까지 포괄하였다. 이들 음악은 주로 거문고가 중심이되는 줄풍류로서 풍류방에서 연주된 형태를 띤다. 방중악(房中樂)이라고도 하지만, 실내의 풍류 공간 외에 누정(樓亭)에서도 연주되었다.
본래 궁중음악이었던 악곡 중 영산회상ㆍ〈여민락〉ㆍ〈보허자〉 등이 민간의 풍류로 전파되어 풍류방에서 연주되기도 하였으나, 궁중에서 연주된 형태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시문(詩文)의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사사로이 풍류를 즐기는 문화가 급격히 발달하였다. 그에 따라 풍류 레퍼토리가 다양화되고 다변화되었다. 《영산회상》의 경우, 본래 오늘날의 〈상령산〉에 해당하는 한 곡만 있었으나 점차 〈상령상〉을 변주한 〈중령산〉ㆍ〈세령산〉ㆍ〈가락더리〉 등 변주곡이 생겨났고, 다른 계통의 음악인 〈상현도드리〉ㆍ〈하현도드리〉ㆍ〈염불도드리〉ㆍ〈타령〉ㆍ〈군악〉 이상 5곡이 추가되면서 9곡의 모음곡으로 발전하였다. 《영산회상》은 연주에서 거문고가 중심이 된다고 하여 거문고회상 또는 줄풍류라고도 한다. 지방에서는 《영산회상》 9곡에 〈다스름〉ㆍ〈계면가락도드리〉ㆍ〈양청도드리〉ㆍ〈우조가락도드리〉ㆍ〈풍류굿거리〉 등을 넣어 연주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향제줄풍류’로 전승되고 있다.
〈보허자〉는 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들어와 조선조까지 궁중악으로 사용되었고, 16세기 무렵부터 민간의 풍류로 연주되기 시작하였다. 궁중에서와 달리 풍류방에서는 실내악 형태로 연주되었는데, ‘보허사(步虛詞)’라는 곡명으로 불리었다. 〈보허사〉도 후대로 오면서 〈미환입(밑도드리)〉ㆍ〈세환입(웃도드리)〉ㆍ〈양청도드리〉ㆍ〈우조가락도드리〉 등의 파생곡이 생겨났다. 《영산회상》과 〈보허자〉가 변주곡과 파생곡이 생겨난 것과 달리 여민락은 새로운 변주곡이 생겨나지 않았다. 궁중악으로 〈여민락〉은 〈여민락만〉ㆍ〈여민락령〉 등의 악곡이 있으나, 정악의 범주에 드는 풍류방 음악으로서 여민락은 단 한 곡 뿐이다.
정악 계통의 성악곡으로는 가곡, 가사, 시조 등이 있다. 이들 성악곡은 아정한 아름다움이 있는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정가(正歌)라 일컫기도 한다. 성악곡 중에서도 풍류방에서 특히 애호되었던 것은 가곡이었다. 가곡은 기악반주가 수반되기 때문에 비전문 음악인이었던 율객(律客)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는 전문 가객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가곡 역시 《영산회상》과 같이 후대로 오면서 레퍼토리가 확대되었다. 가곡의 원형은 〈만대엽〉ㆍ〈중대엽〉ㆍ〈삭대엽〉으로 17세기에 와서 〈중대엽〉과 〈삭대엽〉이 1ㆍ2ㆍ3으로 늘어나고, 새로운 스타일의 〈농(弄)〉ㆍ〈락(樂)〉ㆍ〈편(編)〉이 추가되면서 20곡 이상의 곡으로 발전하였다.
시조는 평시조의 기본형에서 노랫말이 확대된 사설시조, 창법에 변화를 준 지름시조의 형태도 생겨났는다. 가곡은 시조보다 훨씬 다양한 곡조로 불리었고, 기악반주가 수반되었으며 전문가인 가객이 불렀다. 이와 달리 시조는 여느 선비들이 기악 반주 없이 많이 불렀고, 간혹 풍류방에서 양금·생황 등의 악기로 반주되는 경우가 있었다.
풍류방에서 향유된 가사(歌詞)는 문학으로서의 가사(歌辭)와 구별되었다. 가사(歌辭)는 고려 말~조선 초에 발생한 시가(詩歌)로 주로 문학작품으로 전해지며, 음영(吟詠) 즉, 읊는 방식으로 향유되었다. 조선 전기에 단편, 후기에는 장편의 형식을 띤다. 음악상의 가사(歌詞)는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풍류방 레퍼토리로 등장한다. 12가사 중 가장 먼저 형성된 곡은 〈어부사〉이지만, 정악의 범주에 드든 형태로 풍류방에서 불린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춘면곡〉ㆍ〈상사별곡〉ㆍ〈어부사〉ㆍ〈권주가〉 등이 먼저 불렸고, 19세기에 〈길군악〉ㆍ〈매화가〉ㆍ〈백구사〉ㆍ〈황계사〉ㆍ〈처사가〉ㆍ〈양양가〉ㆍ〈수양산가〉ㆍ〈죽지사〉 등이 추가되면서 12가사를 이루었다. 고악보에 거문고ㆍ양금ㆍ생황 등 가사 반주 가락이 전하나, 관현반주를 수반하는 가곡에 비해 적고, 20세기에는 가사 연주에 현악기가 쓰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정악 계통의 음악은 보통 거문고ㆍ가야금ㆍ해금ㆍ세피리ㆍ장구ㆍ양금 등의 악기에 의한 단잽이(악기별 연주자가 각 1명)편성으로 연주된다. 피리는 음량이 작은 세피리는 쓰고, 장구는 주로 변죽을 친다. 이들 악기 중 거문고ㆍ가야금ㆍ장구ㆍ양금 등으로 연주했던 정악의 옛 가락을 기록한 악보가 전해지고 있다.
율객 중에는 자신들이 연주했던 음악을 악보로 남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데, 거문고ㆍ가야금ㆍ양금 등과 같은 현악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악보를 통칭 금보(琴譜)라고 하는데, 금보 중에서도 거문고 악보가 특히 많다. 선비들이나 식자층이 주로 거문고를 연주한 결과인 셈이다. 금보는 안상(安瑺)의 『금합자보』(1572)와 같이 문관 출신으로 장악원의 음악 행정가가 남긴 것도 있지만, 서유구와 같은 학자나 선비들이 남긴 것이 훨씬 많다. 이들 고악보는 시대별 정악의 레퍼토리뿐 아니라 정악의 발전과정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정악 계통에 드는 음악은 후대로 오면서 선비들의 풍류방 뿐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서 연주되었으며, 연행자도 다변화되었다. 19세기 이전에는 가곡·가사·시조를 남성 가객이 전담했으나, 19세기 중엽부터 시조를 부르는 여성 가객이 등장했다. 조선 말기에는 지방의 교방에서도 연행되었고, 20세기에는 권번에서도 가르쳤다.
20세기에는 정악 계통의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나 기관이 설립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조선정악전습소의 활동이 컸다. 1909년에 발족된 조양구락부가 1911년에 조선정악전습소로 개편되었고, 가곡 명인 하규일과 하순일, 거문고의 김경남, 조이순, 가야금의 함화진ㆍ명완벽, 양금의 김상순, 단소의 조동석 등이 참여하는 가운데. 194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음악교육기관이었던 조선정악전습소에서는 정악 계통의 음악을 가르쳤지만, 그들이 교육한 음악이 정악 자체는 아니었고, 정악에 속한 모든 음악을 포괄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지향하는 음악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 ‘정악’을 단체명에 넣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악의 개념이 일반화되는 데에 일조하였다. 조선정악전습소 외에도 정악을 연주하는 동호회나 율회와 같은 모임은 20세기 전반기까지 전국적으로 존재했다. 20세기 전반기에 정악과 관련된 단체가 조직되고 활동했던 것은 조선 후기 문인 음악 문화의 근대적 계승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정악을 연주하고 향유했던 문화나 풍류방이 점차 쇠퇴됨에 따라 오늘날에는 이리(현 익산)ㆍ구례ㆍ대전 등 일부 지역에서만 풍류방 문화가 전승되고 있는데, 정악 중에서도 줄풍류를 연주하고 있다.
정악은 주로 선비들이 향유했던 실내악 형태의 음악으로서 《영산회상》ㆍ〈여민락〉ㆍ〈보허사〉 등의 기악곡과 가곡ㆍ가사ㆍ시조 등의 성악곡이 주류를 이루었다.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방중악(房中樂)이었으므로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는 대풍류과 같은 음악은 본래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정악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관아의 음악 중 일부도 정악의 범주에 넣고 있다. 비록 정악의 범주가 확대되는 현상을 보이지만, 판소리ㆍ산조ㆍ잡가 등은 정악에 포함되지 않는다. 19세기에 잡가ㆍ판소리가 풍류방에서 연행되기고 하였고, 20세기에는 산조도 연주되었다. 그런 점에서 풍류방에서 향유된 모든 레퍼토리가 곧 정악은 아닌 것이다. 오늘날 정악 계통의 《영산회상》ㆍ〈여민락〉ㆍ〈보허사〉ㆍ가곡ㆍ가사ㆍ시조 등의 음악은 국립국악원 및 각 대학의 국악 전공자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정악에는 조선 후기에 선비들이 향유했던 음악의 전통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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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