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간행된 조선 악기의 해설서와 사진첩
『조선아악기해설ㆍ사진첩』은 1935년 일본인이 저술한 조선 악기에 관한 해설서와 사진첩으로, 『조선아악기해설』과 『조선아악기사진첩』의 두 권이 한 쌍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아악기해설』과 『조선아악기사진첩』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조선의 일본 신사(神社)에서 신관을 지낸 야마다 사나에(山田早苗, 1896-1966)가 1935년에 저술한 것이다. 『조선아악기해설』의 후기인 「원고를 마치며」에는 저자가 1927년 석전제(釋奠祭)에 참례하기 위해 경학원(經學院, 성균관)에 가는 길에 편경ㆍ편종ㆍ대금 등의 연주 소리를 들었고, 그 웅대함에 매료되어 이후 조선 아악기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쓰여 있있다. 조선 음악은 문외한이고 신사에 근무하면서 짬짬이 조사해야 하는 시간상의 문제, 많지 않은 참고 서적 등의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이왕직아악사장 함화진을 시작으로 아악부원들의 지극히 친절한 지도로 내용을 완성할 수 있었으며, 악기의 사진과 관련해서는 시노다(篠田) 이왕직 장관, 이케다(池田) 총독부 경무국장, 아치와(阿知和) 조선신궁 궁사(宮司)의 도움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 체재 및 규격
『조선아악기해설』
1책 78면, 16.2㎝×23.5㎝, 필사본의 등사본
『조선아악기사진첩』
1책 46면, 표지 23.5㎝×16.0㎝, 내지 22.5㎝×15.0㎝, 인쇄활자본, 흑백사진
○ 소장처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경성제국대학 도서관 구장본), 야마다 다카시(山田蓉)(신궁황학관(神宮皇學館) 구장본의 복사본)
○ 편찬연대 및 편저자 사항
『조선아악기해설』의 겉표지에는 책 이름 ‘조선아악기해설(朝鮮雅樂器解說)’이 적혀 있고 속표지에는 ‘조선아악기해설 야마다 사나에(朝鮮雅樂器解說 山田早苗)’가 쓰여 있다. 책의 후기인 「원고를 마치며」의 끝부분에는 ‘소화 십년 칠월(昭和十年七月) 경성에서(京城ニテ)’라고 하여 편찬연대가 1935년(소화 10년)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 야마다 사나에는 1925년 경성의 남산에 건설된 일본 신사인 조선신궁(朝鮮神宮)에 말단 신직인 주전(主典)으로 와서 1937년 상급 신직인 녜의(禰宜)가 될 때까지 12년 동안 조선신궁에서 근무한 일본인 신관이다. 이후 함경남도 원산의 원산신사(元山神社)에서 1945년 일본의 패전 이전까지 신관의 직무를 이어갔고 1947년 일본으로 돌아갔다. 『조선아악기해설』과 『조선아악기사진첩』은 야마다가 경성에 거주하는 동안에 저술한 책이다. 현재 원본은 확인되지 않고, 사본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과 저자의 아들인 야마다 다카시(山田蓉)가 소장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아악기해설』과 『조선아악기사진첩』을 등사본으로 만들어 두 곳에 기증했는데, 한 곳이 자신의 출신 학교인 신궁황학관(神宮皇學館)이고(1936년 1월 18일 기증) 나머지 한 곳이 경성제국대학이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은 구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소장본으로, 속표지에는 각각 ‘경성제국대학도서장(京城帝國大學圖書章)’의 붉은색 날인과 함께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의 자료번호로 보이는 ‘173168’과 ‘173169’가 찍혀 있다. 『조선아악기해설』과 『조선아악기사진첩』은 1935년 야마다 사나에에 의해서 편찬된 것으로, 1999년에 하나로 합쳐져 ‘조선아악기해설’이라는 책 이름으로 복각된 바 있다. 山田早苗, 『朝鮮雅樂器解說』 복각본, 名古屋: 西濃印刷株式會社, 1999. 다만 복각본에는 원본과는 달리 오기가 적지 않고 사진의 명칭이 다르기도 하여 원래 저자가 작성했던 내용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 문헌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립국악원의 한국음악학학술총서로 발간되었다. 이지선 해제ㆍ역주,「조선아악기사진첩 건, 조선아악기 해설ㆍ사진첩」, 『한국음악학학술총서 10 -이왕가악기-』, 국립국악원, 2014.
○ 구성 및 내용
『조선아악기해설』은 「개설」과 67종의 악기 항목(무구 6종 포함), 「원고를 마치며」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아악기해설』 목차
개설, 편종, 특종, 편경, 특경, 방향, 건고, 삭고, 중고, 용고, 응고, 진고, 교방고, 좌고, 뇌고·영고·노고, 뇌도, 영도, 노도, 도, 장고, 갈고, 절고, 금, 슬, 가야금, 대쟁, 아쟁, 현금, 양금, 당비파, 향비파, 월금, 해금, 나각, 대금ㆍ중금ㆍ소금, 당적, 퉁소, 당피리, 향피리·세피리, 단소, 생, 약, 적(篴), 지, 소, 훈, 태평소, 박, 축ㆍ지, 어ㆍ진, 부ㆍ진, 정, 소금(小金), 동발, 대금(大金), 나발, 나, 적(翟)·약, 간·척, 검·창, 원고를 마치며
「개설」에서는 조선음악의 종류, 역사, 당시 이왕직아악부가 연주한 음악의 종류 및 악곡 수에 관해 언급하고, 이어 조선음률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의 아악에는 아악(중국에서 전래된 가장 오래된 음악), 당악(당의 속악이 이입된 것), 속악(예로부터 조선 각지에서 흥한 향악)의 세 계통이 있다고 하여, 아악의 용어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아악의 역사(조선 아악의 전개)로는 기자조선의 음악, 삼한악, 신라의 삼죽, 가야국의 가야금, 고구려의 거문고와 악곡〈명주〉, 고려 때의 수ㆍ당ㆍ송 음악의 이입, 조선 세종기의 박연, 『악학궤범』 등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1930년대 당시 조선 아악의 상황에 대해서는 점차 쇠락해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고, 악기에 관해서는 그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사라진 고대 악기가 조선에 존재하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조선의 음률을 일본·중국의 음률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다나베 히사오가 측정한 진동수를 소개하고 있으며, 조선악기 제조의 열악한 상황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조선아악기해설』은 무구를 포함한 67종의 악기를 항목별로, 연혁, 특징, 연주법, 형태, 촌수 등에 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야마다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이왕직아악사장 함화진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실제 『조선아악기해설』에서는 함화진이 저술한 『조선악기편』(1933)과 일치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악기의 유래, 한반도에 유입된 시기, 연주법(일부), 촌수는 기본적으로 『조선악기편』에서 발췌,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저자가 스스로 조사하고 연구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도 상당 부분 존재한다. 특히 슬ㆍ현금ㆍ가야금ㆍ아쟁ㆍ해금ㆍ비파 등의 현악기에 관한 설명이 상세하다. 악기의 산형이나 서술 내용을 보면, 연주자의 수법과 연주를 관찰했거나 저자가 직접 악기의 소리를 내보면서 학습 후에 작성한 것임을 알게 한다.
『조선아악기사진첩』에는 조선신궁에서의 연주 장면, 57종의 악기, 6종의 무구가 총 44장의 사진으로 수록되어 있다. 수록 순서나 내용은 『조선아악기해설』과 거의 유사하다. 다만, 용고ㆍ지ㆍ소의 수록 위치가 조금 다르고, 해설서에는 있는 응고ㆍ교방고ㆍ뇌고ㆍ영고ㆍ영도ㆍ노도ㆍ도ㆍ소금(小笒)의 사진이 생략되었다. 또한 해설서 항목에는 없는 금은평문금ㆍ신라금ㆍ오죽생ㆍ오죽우를 수록하고 있는데, 목차에는 이 네 종류의 악기를 고딕체로 표시하고 “고딕체는 정창원보물”이라는 문구를 적어 조선의 악기와 구분하고 있다. 정창원 소장의 일본악기 및 신라금을 제외하면, 사진첩에 수록된 조선악기의 종류는 53종이고, 무구 6종을 합하면 총 59종이다. 사진 자체에는 악기 이름이 적혀 있지 않고 ‘1’부터 ‘43’까지의 번호만이 표시되어 있다.
『조선아악기사진첩』 목차 조선신궁봉주실경(朝鮮神宮奉奏實景), 1 편종, 2 특종, 3 편경, 4 특경, 5 방향, 6 건고, 7 삭고·중고, 8 진고, 9 좌고·용고, 10 노고·노도, 11 장고, 12 갈고, 13 절고, 14 금, 15 금은평문금(金銀平文琴), 16 슬, 17 가야금, 18 신라금, 19 대쟁, 20 아쟁, 21 현금, 22 양금, 23 당비파, 24 향비파, 25 월금, 26 해금ㆍ나각, 27 대금ㆍ중금 (사진첩의 목차에는 ‘大琴·中琴’과 같이 ‘笒’이 ‘琴’으로 잘못 적혀 있다. 다만 해설본에는 ‘大笒·中笒·小笒’으로 제대로 적힌 것으로 보아, 사진첩의 오기는 인쇄활자로 옮긴이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28 당적ㆍ퉁소, 29 당피리ㆍ향피리ㆍ세피리, 30 단소ㆍ생, 31 오죽생(吳竹笙)ㆍ오죽우(吳竹竽), 32 약ㆍ적(篴), 33 소, 34 지ㆍ훈, 35 태평소ㆍ(박 사진첩의 목차에는 ‘박’이 없지만 본문에는 태평소와 함께 찍힌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36 축ㆍ어ㆍ진, 37 부ㆍ진, 38 정ㆍ소금[小金], 39 동발ㆍ대금[大金], 40 나발ㆍ라, 41 적(翟)ㆍ약, 42 간ㆍ척, 43 검ㆍ창 (고딕체는 정창원(正倉院) 보물)
이 중 ‘조선신궁봉주실경’(복각본에는 ‘조선아악기편성’의 명칭으로 변경) 사진은 조선신궁에서 연주하고 있는 이왕직아악부의 모습이다. 이왕직아악부는 1926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신궁의 가장 큰 제사인 예제(例祭)에서 조선 아악을 연주하게 되었다. 예제에서는 매년 제례악과 연례악으로 구성된 6~8곡이 연주되었다.
『조선아악기사진첩』의 43장의 악기 사진 중 24장은 이왕직아악부에서 편찬한 『조선아악기사진첩 건(乾)』(1926~30년경 추정)의 사진과 일치하는 점에 의해 『조선아악기사진첩』의 사진은 야마다가 개인적으로 찍은 것이 아니라 이왕직아악부에서 제공한 것임을 알게 한다. 이 사진첩에는 현악기의 사진을 앞면과 뒷면 모두 찍고 수록하고 있고, 조선악기와 유사한 일본악기, 혹은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악기를 수록하고 있다. 또한 악기 외에 무구로 적과 약, 간과 척, 검과 창의 항목을 두고 형태와 쓰임새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점도 다른 자료와는 구분된다.
이지선 해제ㆍ역주,「조선아악기사진첩 건, 조선아악기 해설ㆍ사진첩」, 『 한국음악학 학술총서 10 -이왕가악기-』, 국립국악원, 2014. 이지선, 「조선신궁 예제(例祭)와 조선 아악」, 『국악원논문집』 44, 국립국악원, 2021. 山本華子, 『李王職雅樂部の硏究』, 東京: 書肆フロ-ラ, 2011.
이지선(李知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