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악에서 길이가 긴 가사를 촘촘하게 읽어 나가는 방식
엮음은 많은 사설을 촘촘하게 읽어 나가는 방식으로, 긴 즉 느린 악곡 뒤에 연이어 엮음을 붙여 노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음악에서 엮음과 같이 글자 수가 많은 가사를 가리키는 용어인 ‘사설’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엮음은 '긴-자진형식'과 같이 두 개의 악곡이 한 짝을 이루어 노래하는 방식이다.
엮음은 전통음악에서 성악곡 사설의 글자 수와 관련된 연주 방식 혹은 형식의 일종으로, 긴소리와 짝을 이루고 있다. 즉, 느린 속도로 부르는 긴소리를 먼저 부른 다음에 엮음을 부르게 된다. 글자 수와 관련된 엮음은 ‘사설’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엮음은 많은 글자 수와 긴 사설을 책 읽듯이 주워섬겨 엮여 나가다가 끝부분에서는 원래의 악곡을 길게 늘어뜨려 부르면서 악곡을 끝맺는다.
엮음은 주로 민요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긴소리와 짝을 이루지만, 악곡 자체가 엮음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긴소리와 짝을 이루는 민요는 〈수심가〉와 〈엮음수심가〉, 〈긴난봉가〉와 〈사설난봉가〉, 〈공명가〉와 〈사설공명가〉 등으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의 서도민요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수심가〉
약사몽혼(若使夢魂)으로 행유적(行有跡)이면
문전석로(門前石路)가 반성사(半成砂)로구나
생각을 하니 님의 화용(花容)이 그리워 나 어이 할까요.
강산불변재봉춘(江山不變再逢春)이요
임은 일거(一去)에 무소식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세월 가는 것 등달아 나 어이 할까요.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세상 공명은 꿈 밖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님의 생각이 간절하여 나 어이 할까요.
(후략)
〈엮음수심가〉
아하, 불이 붙는다. 불이 붙는다.
의주 통군정 붙난 불은 압록강수로 꺼주련마는
용천, 철산, 선천, 정주, 가산, 박천을 얼른 지나 안주 백상루에 붙난 불은
향산 동구 뚝 떨어져 청천강수로 꺼주련마는
숙천, 순안을 얼른 지나 페앙 모란봉 붙난 불은
삼산반락은 청루벽이요 이수중분에 능라도로다.
능라도며 을밀대요 을밀대며는 만포대라 대동강수로 꺼주련마는
이내 가삼에 붙는 불은 어 어느 누가 꺼주리
꺼줄 이 없고 친구가 발라서 나 어쩌잔 말이요.
(후략)
다음으로 악곡 자체가 엮음으로 이루어진 민요로는 〈엮음아라리〉을 들 수 있다. 〈엮음아라리〉은 정선이나 평창 등의 강원도 지역에 전승되는 민요로, 강원도의 〈아라리〉의 사설을 길게 촘촘히 엮어 나가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엮음아라리〉은 일반적인 엮음과 같은 방식으로 불규칙한 장단에 책을 읽듯이 사설을 빠르고 촘촘하게 읽어 나가듯이 부른 후, 뒷부분에서는 느린 3소박 3박자의 〈아라리〉을 노래하며 끝을 맺는다.
〈엮음아라리〉
(엮는 부분)
우리댁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에다 엽전석냥 걸머지고
(느린 부분)
강릉삼척에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봉령 굽이굽이 부디 잘 다녀오세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위에서 살펴본 민요의 엮음은 거의 동일한 음높이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엮음의 길이가 짧든가 혹은 길든가 이에 대한 제한은 없지만, 가사의 의미에 따라 단위를 구성하여 말하듯 혹은 책을 읽어 나가듯이 엮어 나가는 방식이다. 이와 같이 민요에서 나타나는 엮음 부분은 가사의 길이에 따라 유동적으로 나타나며, 가창자별 속도나 음고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엮음은 주로 민요에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글자 수가 늘어나거나 곡의 빠른 속도의 요소가 나타나는 가곡이나 시조 등과 같은 장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곡은 평시조나 엇시조 혹은 사설시조를 노랫말로 삼아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성악곡이다. 특히 평시조에 비하여 시조시의 글자 수가 많이 늘어난 사설시조를 비교적 빠르게 노래하는 ‘편’ 계통의 악곡을 엮음으로 볼 수 있다. 즉, 〈편락〉ㆍ〈편삭대엽〉ㆍ〈얼편(엇편 혹은 언편)〉ㆍ〈우편〉 등과 같이 악곡 명에 ‘편(編)’이라는 말이 붙는다. 이들 악곡은 가곡의 기본 장단인 10점 16박이 아닌 10점 10박의 빠른 속도의 장단에 맞추어 노래한 점에서 민요의 엮음과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시조시를 노래하는 시조창은 평시조나 사설시조 등을 노랫말로 삼는다. 이들 시조의 장수는 3장으로 동일하나, 평시조에 비하여 사설시조는 글자 수가 늘어난 형태이다. 즉 평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이지만, 사설시조는 주로 중장의 글자 수가 늘어나 확대된다. 때문에 평시조에 비하여 글자 수가 많은 사설시조를 노래할 때는 그 속도가 빨라지므로, 이 역시 엮음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외에 전문음악인들이 공연용으로 부르는 ‘휘몰이잡가’도 강원도 지역의 〈엮음아라리〉과 같이 엮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기 명창들의 레퍼토리인 휘몰이잡가는 사설을 빠르게 엮어나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특히 이 부분에서는 사설이 많이 늘어난다. 이런 점으로 보아 느리게 부르는 긴잡가의 대(對)가 되는 ‘휘몰이잡가’에서도 엮음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전통음악에서 엮음은 민요를 비롯하여 가곡과 시조, 그리고 휘몰이잡가 등에서 나타난다. 이들은 느린 긴소리에 비하여 비교적 빠른 속도로 연행된다. 다만 민요는 긴소리를 부른 다음에 이어서 엮음에 해당하는 노래를 부르는 형태로 긴소리와 짝을 이루지만, 가곡이나 시조, 그리고 휘몰이잡가는 느린 소리와 한 짝을 이루지는 않는다.
엮음은 전통음악의 성악곡 즉 민요에서 주로 나타나는 형식 중의 하나이다. 느린 속도의 긴소리를 먼저 부른 후 사설을 촘촘하게 책 읽어 나가듯이 노래하는 엮음을 이어서 부른다. 따라서 엮음은 긴-자진형식과 같이 긴소리와 한 짝을 이룬다. 이와 같이 민요 가창 시 나타나는 엮음과 긴-자진형식은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동양음악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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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李侖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