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후인(箜篌引)
공후로 연주되는 창작연대 미상의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는 4언 4구로 된 고대가요로 공후(箜篌)를 타며 노래로 불려져 ‘공후인(箜篌引)’이라는 악곡(樂曲)의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중국 후한의 채옹이 펴낸 『금조』에 채록되어 내려오는 고대 가요로, 백수광부의 아내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공무도하가’는 공후가 처음 등장하는 노래인 동시에, 악기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현존 가장 오래된 시가이기도 하다.
공무도하가는 백수광부의 아내가 지은 시로 백수광부가 물에 빠져 죽게 되자 공후를 타며 노래를 지어 부르고 스스로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이 광경을 지켜 본 곽리자고(霍里子高)는 아내 여옥(麗玉)에게 이야기해 주자 여옥 역시 이를 슬퍼하며 공후를 타며 노래 하였다. 여옥은 그 소리를 이웃 여자 여용(麗容)에게 전하게 된다. 그 노랫말은 공무도하(公無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타하이사(墮河而死) 당내공하(當奈公何)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본(異本)에 따라서는 제2구의 ‘竟’(경)이 ‘終’(종)으로, 제3구의 ‘墮河’(타하)가 ‘公墮’(공타) 또는 ‘公淹’(공엄)으로, 제4구의 ‘‘當’(당)이 將’(장)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다. 공무도하가는 중국 문헌인 한나라 채옹(蔡邕, 133-192)의 『금조(琴操)』, 3세기 말 서진의 혜제(惠帝, 290-306) 때 편찬된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 송대(宋代) 이방(李昉)의 『태평어람(太平御覽)』(983), 북송(北宋)의 신종(神宗, 1067~1085) 때 곽무천(郭茂倩)의 『악부시집(樂府詩集)』과 우리나라 문헌 중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연암집』, 조선 정조ㆍ순조대의 사학자 한치윤(韓致奫, 1765~1814)의 『해동역사』 등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장지연(張志淵)의 『대동시선(大東詩選)』,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청구시초(靑丘詩鈔)』 등에서 고조선(古朝鮮) 시대의 시가(詩歌)로 소개되었다.
○ 역사 변천 과정
『금조(琴操)』 중 많은 학자들이 가장 인용하고 있는 한대(漢代)의 채옹(蔡邕, 133~192)의 『금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후인’은 조선 진졸 곽리자고가 지은 것이다. 자고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손질하는데 한 미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술병을 들고 어지러운 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건너지 말 것을 외쳤으나 물에 빠져 죽으니 하늘을 부르짖으며 탄식하여 울었다. 공후를 타며 노래를 하니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건너시고 마셨네.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으니 가신님을 어이할꼬〉 곡을 마치자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 자고는 이 슬픈 소리를 듣고 이내 금을 가져다 타며 ‘공후인’을 만들었다. 그 노래는 소위 ‘공무도하곡’이다.
箜篌引者 朝鮮津卒霍里子高所作也 子高晨刺船而濯 有一狂夫 被髮提壼 涉河而渡 其妻追止之不及 墮河而死, 乃呼天噓唏 鼓箜篌而歌曰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曲終 自投河而死 子高聞而悲之 乃授琴而鼓之 作箜篌引 以象其聲 所謂 公無渡河曲也.
(蔡邕 後漢: 『琴操』 卷上. 12a6-b2)
최표(崔豹)의 『고금주』에는 노랫말은 등장하지 않지만 이 노래의 배경설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후인’은 조선(朝鮮)의 진졸(津卒) 곽리자고(涇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은 것이다. 자고(子高)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손질하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호리병을 들고 어지러이 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뒤쫓아 외치며 막았으나, 다다르기도 전에 그 사람은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箜篌)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으니, 그 소리는 심히 구슬펐다. 그의 아내는 노래가 끝나자 스스로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자고가 돌아와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 광경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들려주니 여옥이 슬퍼하며, 곧 공후로 그 소리를 본받아 타니, 듣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옥은 그 소리를 이웃 여자 여용(麗容)에게 전하니 일컬어 '공후인'이라 한다.
箜篌引 朝鮮津卒霍里子高妻麗玉所作也. 子高晨起刺船而濯 有一白首狂夫 被髮提壼 亂流而渡 其妻追呼止之 不及 遂墮河而死 於是 授箜篌而鼓之 作公無渡河之歌 聲妻愴 曲終 自投河而死 霍里子高還 而其聲語妻麗玉, 玉復之 乃引箜篌而寫其聲 聞者莫不墮飮泣焉 麗玉以其聲傳隣女麗容 名曰箜篌引焉.
(崔豹 晉: 『古今注』 卷中. 2b3-8)
이와 같이 전승된 문헌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인데, 하나는 채옹(蔡邕, 133~192)의 『금조』이며 다른 하나는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이다. 일반적으로 공무도하가의 출처는 『고금주』로 알려져 있지만, 『고금주』에는 공무도하가의 배경설화만 기록되어 있을 뿐 시가가 빠져 있다. 또한 『고금주』에 ‘공무도하가’를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처음 ‘공무도하가’를 부른 원작자는 백수광부의 아내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채옹의 『금조』는 시대적으로도 앞설 뿐 아니라 공무도하가의 시가가 적혀 있어, 후대 이방(李昉)의 『태평어람』, 곽무천의 『악부시집』과 박지원(朴趾源)의 『연암집』,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기록된 공무도하가의 출처를 『고금주』와 『금조』 모두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 음악적 특징
‘공무도하가’는 음악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지만, ‘공후’라는 악기가 등장하는 고대 시가이다. ‘공후’는 크게 수공후(豎箜篌), 봉수공후(鳳首箜篌), 와공후(臥箜篌)의 세 종류가 있으며, 형태는 하프(Harp, 수공후_angular harp, 봉수공후_arched harp)류의 악기와 지터(Zither, 와공후)류의 악기로 나뉠 수 있다.
‘공무도하가’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인 『금조』ㆍ『고금주』ㆍ『태평어람』ㆍ『악부시집』ㆍ『연암집』ㆍ『해동역사』에는 반주악기로 ‘금’과 ‘공후’가 등장한다. 이 두 명칭은 동일한 한 악기를 가리키고 있다. 즉 ‘공후’는 ‘금’과 유사한 ‘와공후’류의 악기로 지터류의 악기를 지칭한다. 현재 중국에서 와공후는 〈악주칠리계4호묘 와공후악용(鄂州七里界4号墓卧箜篌乐俑)〉과 같이 괘가 있는 지터류의 악기를 말한다.
또한 ‘공무도하가’가 불려진 고대(고조선추청)에 백수광부의 처, 곽리자고의 처 여옥, 옆집 여용에 이르기까지 당시 대중적인 악기임을 고려했을 때, 서역에서 들여온 하프류의 악기가 아니라, 거문고(와공후)와 유사한 지터류의 악기로 우리 고유의 대중악기이어야 가능 할 수 있다.
즉 백수광부의 처가 먼저 공후를 연주를 하였고 후에 여옥도 공후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 널리 전파된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공후’라는 악기가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는 대중적인 악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공후인’은 특정 작가에 의해 지어진 특수한 노래라기보다는 전승과정을 거쳐 보편화된 민요풍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반주 악기 ‘공후’ 역시 특수한 계층이 사용한 악기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는 평범하고 대중화된 지터류(Zither, 장방형) 악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후 연주법의 설명을 살펴보면 『금조』, 『고금주』모두 ‘鼓箜篌而歌曰’, ‘授琴而鼓之’로 연주할 주(奏)나 탄(彈) 대신 칠 고(鼓)자를 썼다는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타악기에 주로 쓰이는 고 자로 표현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게 고대어의 표현양식인지 공후의 연주법에 대한 특별한 단서인지 심층적인 연구가 좀 더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노랫말]
公無渡河(공무도하)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경도하) 임은 마침내 물을 건너시네
墮河而死(타하이사)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何(당내공하) 가신 임을 어이할꼬
공무도하가는 4언 4구의 한시(漢詩)로 채록되어 전해지는데, 문헌에 따라 표기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역시(漢譯詩)인 〈공후인〉은 『고금주(古今注)』 설화와 『금조(琴操)』의 시가가 함께 융합된 것인데 조선시대 문인들은 이를 토대로 『해동역사(海東繹史)』, 『대동시선(大東詩選)』, 『청구시초(靑丘詩抄)』,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옮겨 전하고 있다. 문헌에 따라서는 둘째 구절의 '竟'을 '終'으로, 셋째 구절의 '公墮'를 '墮河'로, 넷째 구절의 '將'을 '當'으로 적고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거의 차이가 없는데, “임아,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이 그예 물을 건너네. 물에 빠져 죽으니 이제 임은 어이할꼬” 라는 뜻이다. 내용 역시 〈공무도하 공경도하 공타하사 당내공하〉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公將奈何(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건너시고 마셨네 임이 물에 빠져드니 가신님을 어이할꼬) 한치윤의 『해동역사』의 공무도하가는 『금조』의 것과 3번째 단락에서 차이가 있다.
의 시가는 『금조』의 영향으로, 그 내용은 『고금주』에 전하는 바와 같이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그 가락을 다시 불렀고, 이웃인 여용에게 전해지면서 널리 세상에 퍼진 것으로 『해동역사』에는 기록돼 있다.
공무도하가는 백수광부가 강을 건너다가 빠져 죽자 그의 아내가 이를 한탄하며 노래를 불렀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고대가요이다. 임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과 한을 표현하고 있고 작품에서 등장하는 ‘물’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경계, 삶과 죽음, 슬픔, 이별, 죽음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원형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공무도하가’전반에 걸쳐 노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악기 공후가 반주 악기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고금주(古今注)』 『금조(琴操)』 『악부시집(樂府詩集)』 『연암집(燕巖集)』 『태평어람(太平御覽)』 『해동역사(海東繹史)』
권오성, 『한국음악사』, 대한민국예술원, 1985. 리지린, 『고조선연구』, 열사람, 1989. 이혜구, 『한국음악논총』, 수문당, 1976. 황패강ㆍ윤원식, 『한국고대가요』 ,새문사. 1991. 기시베 시게오(岸辺成雄), 「공후の연원」, 『당대の악기』, 동양음악학회편 음악지우사, 1968. 이진원, 「현금과 와공후」, 『소암권오성박사화갑기념 음악학논총』, 소암권오성박사화갑기념논문집간행위원회, 2000 조석연, 「‘공무도하가’ 반주악기 공후의 기원과 형태 연구」, 『음악과문화』, 2008. 조석연, 「공후의 기원과 동북아 전파 과정에 대한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7. 하야시 겐조(林謙三) , 「와공후적 전역」, 『동아악기고』, 인민음악출판사, 1995.
조석연(趙石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