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로 접어들며 전통공연 예술인 98명을 1914년에 연재한 『매일신보』의 기사
「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기사는 근대사회로 진입한 20세기 초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신문이라는 대중매체가 발간되면서, 일간지들은 독자들에게 제공할 새로운 기사가 필요했다. 한편 조선시대까지 국가의 관리체계에 있었던 기생이나 재인들은 갑오경장 개혁 이후 신분적 제한이 철폐되었고, 1908년 기생단속령 후에는 독자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특히 일제가 관리감독한 기생조합의 조직이나 사설극장들의 흥행은 예인들의 공연환경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매일신보』 1911년 10월 1일자에 ‘평화신보(評花新譜)’라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 제목에서 ‘花’는 기생을 뜻하는 것으로, ‘평화신보(評花新譜)’는 기생을 평하여 새롭게 기록한다는 취지였으나, 기사화되지는 않았다. 이후 『매일신보』는 1914년 1월 28일자부터 1914년 6월 16일자까지 「예단일백인」이라는 제목으로 예술계 인사들을 연재한 것이다. 이는 근대로 접어들면서 공연환경이 변화하는 예술계에 대한 관심이라 할수 있으며, 또한 극장들의 흥행에서 기생이나 재인 광대들은 대중예술인으로서 대중의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 구성 및 내용
「예단일백인」 은 1914년 당시 4면으로 구성된 『매일신보』 의 3면 문화면에 실렸다. 각 예인들을 500~600자 분량의 기사로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연재 전에 조선 전도의 남녀를 물론하고 가무음곡 등 예술이 우월한 인물 일백인을 수집하여 음력 정월 일일부터 예단에 올리겠다고(매일신보 1914. 1. 21) 했으나, 실제는 98명이었다. 기생 90명과 악사인 심정순, 지룡구, 이병문과 경서도 소리꾼 박춘재와 변사인 김덕경, 서상호, 이한경과 신파극 배우 임성구가 예단에 올려졌다.
기생을 90명이나 올린 점은 그만큼 대중의 관심이 많았고 기사화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각 기생의 나이, 활동지역, 출신지, 학습지역, 기예 외에 기생이 된 경위나 용모, 소속, 기생서방의 이름 등을 설명했으며, 기생의 노래가락이나 신세 타령, 희망사항 등은 구어체로 서술되었다. 「예단일백인」에 실린 기생들의 나이는 9세부터 33세까지이고, 기생들은 광교기생조합과 다동기생조합, 신창기생조합, 평양예기조합에 속하거나, 광무대, 단성사, 장안사라는 극장에서 전속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활동지역은 경성 63명, 평양 26명, 의주 4명, 해주 5명이었다.
이 기사들에서 기생들이 연행했던 당시의 주요 종목들을 알 수 있다. 춤(舞)에는 검무, 남무, 입무, 정재춤, 춘향무, 무산향, 승무, 항장무, 정자춤, 수포구락, 번쾌무, 허튼춤, 무동의 춤이 있다. 노래(歌)는 가곡, 시조, 잡가, 놀량사거리, 수심가, 육자백이, 흥타령, 평양수심가, 차문주가, 황주난봉가, 판소리, 춘향가, 방자놀음, 방아타령, 심청가, 만수타령, 양산도, 긴난봉가, 경복궁타령, 산타령, 개구리타령, 춘향가이도령놀음, 사랑가, 해주난봉가, 새타령, 불정사거리, 관산융마, 진주육자백이가 있다. 음률(樂)은 가야금, 양금, 칠현금, 현금, 거문고, 역금, 탄금, 장고, 사미센 등을 연주했다. 그리고 서화(書畵)를 잘하는 기생으로 주산월(2번), 백산월(30번), 기화(38번), 금주(84번)도 있다.
○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기생들이 1902년 협률사 극장무대에서 ‘소춘대유희’ 공연을 한지 10년이 넘었고, 기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은 일반에게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극장문화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문화기획자들은 기생의 기예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자 했으며, 신문도 마찬가지로 기생을 기사화하여 구독율을 높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단일백인」의 내용들은 이 시기 예인들의 활동을 담고 있기 때문에, 1914년을 전후하여 근대로 접어드는 공연예술계 특히 춤계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첫째, 1914년 전후하여 기생들의 예술 활동상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놀음이나 극장에서 각 궁중무와 검무, 승무, 남무, 입무 등의 민속무를 추었다.또한 기생서재나 기생조합의 기생학교에서 가무를 학습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각 조합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 기생들을 파악할 수 있다. 셋째 기생이 되는 이유와 배경을 알 수 있다. 화중선(5번)이나 춘도(11번)는 세습된 기생이었으며, 련옥(41번)은 침선에도 능한 기생으로 조선시대 기생계의 흔적을 보여주며, 계선(6번)과 명주(23번)는 대중들의 사랑과 박수를 받고 싶어 기생이 되었다. 「예단일백인」 기사에서 20세기 초 전통시대의 기생의 모습과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의 기생의 모습이 교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근대음악사와 공연예술사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자료이다.
김영희, 「예단일백인 기사 중 기생에 대한 연구- 한국근대무용사의 측면에서 」, 『한국무용교육학회지』Vol.10 No.2 , 대한무용교육학회, 1999. 매일신보, 「예단일백인」, 『매일신보』1914년 1월 28일 ~ 6월 11일, 매일신보사, 1914. 이정노, 『근대 조선춤의 지속과 변용』, 소명출판, 2019.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