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으로 만든 공명통에 관을 꽂아 만든 악기로 황편[reed]을 활용하여 소리를 내는 자유 리드(free reed) 관악기.
생은 중국 고대 악기로, 봉황의 날개 모양을 형상화한 관악기이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기 이전에 유입되었으며 본격적으로 고려시대에 중국의 생류 악기가 소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음악에서 사용되었으며, 후기에는 민간 풍류방과 민간에서도 즐겨 연주되었다. 현재는 관대를 추가하고 연주법을 개발한 개량악기들이 다양한 창작음악에 활용되고 있다.
생은 중국 고대 악기의 하나로 봉황의 날갯짓 하는 모습을 형상화하여 박 속에 관을 꽂아 만든 악기이다. 중국 창세신화 중 여와 여황씨(女皇氏)의 악(樂)에 대한 기록 중에는 여와가 생황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상(商)나라(BC.1600~BC.1046)의 것으로 추정되는 갑골문자에 ‘생’과 ‘생을 연주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가 등장하는 것을 근거로 고대 때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류 악기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은 이미 삼국시대 이전이다. 『수서』의 고구려악에는 생이 기록되어 있고, 백제악에는 생의 한 종류인 '우'가 언급되었으며, 백제의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673년 추정)〉과 〈신라 상원사 범종(725년) 비천상〉, 〈봉암사 지증대사석조탑〉 등 불교 조각품 등에 생황을 연주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생황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수용된 계기로는 고려 예종 때 송나라로부터 유입된 대성아악을 들 수 있다. 1076년(문종 30)의 궁중음악에 편성돼 대악관현방(大樂管絃房)에 생업사(笙業師) 한 명이 소속되었다. 1114년(예종 9) 포생(匏笙)과 1116년 소생(巢笙)ㆍ화생(和笙)ㆍ우생(竽笙)이 송나라 휘종(徽宗)에게서 고려에 전해진 뒤, 생황은 아악기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다.
조선 초 『오례의』(五禮儀)에는 생황류 악기를 관의 수에 따라 화, 생, 우로 구분하였으며, 이후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까지 이어졌으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세종(1423)에는 악기 제작을 위해 악기도감(樂器都監)을 설치했고, 이때 생황도 직접 제작하였으나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생황 제작에 필요한 리드(reed) 제조 기술이 중단되었고, 국내에서는 더 이상 생황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17세기 인조 이후에는 청나라에서 악기를 구입하고 연주법을 배우기 위해 장악원의 악사를 파견하는 등 대책을 모색했다.
조선 후기에는 생황이 부와 문화적 수준을 상징하는 상류층의 취향을 반영하는 중요한 악기로 여겨졌다. 비록 국내에서의 생황 제작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지만, 1800년경부터는 점차 연암그룹을 비롯하여 풍류방음악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유예지(游藝志)』에 방중악보로서 거문고, 양금, 당금과 함께 드물게 생황의 악보도 수록되어 있고 『가사유취(歌詞類聚)』의 생황보에도 시조와 가사의 악보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들이 조선후기 풍류 음악을 대표하는 악보라는 점에서 생황이 풍류음악에도 폭넓게 사용된 점을 알 수 있다. 이후 생황은 점차 풍류방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공연문화에 사용되었는데 김홍도의 〈평양감사향연도〉 중 ‘월야선유도’에서 보듯이 삼현육각편성에 함께 연주되며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에서는 검무 반주까지 활용되었다. 신윤복의 〈주유청강〉과 〈연못가의 여인〉, 김홍도의 〈신선취생도〉 등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생황의 모습은 서민들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김계선(金桂善)과 박창균(朴昌均), 박덕인(朴德仁)이 생황의 전통을 이어왔고, 현재는 국립국악원의 김태섭(金泰燮)이 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생황 연주 전통이 거의 끊겼다. 현재 전통 생황악곡으로는 생황과 단소의 2중주인 '생소병주'로 연주되는 〈염양춘〉과 〈수룡음〉 2곡만이 남아 있다. 제례악에서도 생황이 사용되지 않았는데, 2000년대에 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에서 생, 우, 화를 복원하여 다시 《문묘제례악》과 《종묘제례악》에 편성하기도 했다.
20세기 후반 생황은 중국의 악기를 대부분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17관외 관을 추가한 원형공명통 24관, 37관과 사각공명통 36관, 38관을 주로 사용한다
① 구조와 형태
생황은 공명통, 취구, 대나무관, 그리고 쇠청(리드)으로 구성된다.
공명통은 원형 또는 사각형으로, 과거에는 박으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현재는 나무나 금속으로 제작된다. 취구은 공명통에 부착되어 숨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나무나 금속으로 제작되며 길이가 긴것과 짧은 것 두가지 형태가 있다. 『악학궤범』에 보이는 것같이 조선전반에는 긴 부리 취구 형태였으나 『헌종무신진찬의궤』(1841)에 짧은 부리 취구가 등장하며 현재까지 이 형태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대나무 관대는 음을 내는 데 사용되며, 각각에는 소리를 내는 지공이 있다. 오죽의 속을 파내 만들고 여러 개의 관대를 두석(놋쇠)으로 만든 띠로 한데 묶는다. 길이는 11~36cm로 다양하며 아래에는 동그란 구멍이, 위에는 좁고 긴 형태의 구멍이 있다. 관대의 길이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지며, 동일한 길이를 갖는 관대의 경우 지공 위치를 달리하여 음높이를 조절한다.
황엽(簧葉)이라 불렸던 쇠청은 놋쇠나 청동으로 만들어진다. 생황의 울림판으로 관의 아랫부분에 위치하며,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쇠청의 울림으로 인해 소리가 난다. 보통 두 개 내지 네 개의 음을 함께 연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악기에 따라 최대 아홉 개음까지 소리 낼 수 있다. 생황은 음량을 확대시키고 음색을 조절하기 위해 공명관이나 확음관을 추가로 부착하기도 한다.
② 음역과 조율법
생황은 서거나 앉은 상태에서 두 손바닥으로 공명통을 감싸 쥐고 취구로 입김을 불어 넣어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이때 관대의 지공을 막으면 금속 리드인 쇠청이 울려 소리가 난다. 고정된 지공에서 지정음만을 연주 할 수 있는 생황은 들숨과 날숨에서 모두 활용하여 소리가 발생하며, 국악기 중 유일하게 화음을 연주할 수 있는 관악기이다.
『오례의』는 화, 생, 우의 관수가 10관, 21관, 10관소개되고 있지만, 『악학궤범』에는 13관, 17관, 17관으로 차이를 보인다. 화(和)는 13관으로 화생(和笙)에 해당되며 청성없는 12율만을 소리낸다. 생(笙)은 소생(巢笙)으로 19관이었으나 17관으로 변하고 12율 4청성을 낸다. 우(竽)는 우생(竽笙)이라 하며 36관을 가졌으나 세종 6년 탁성. 중성, 청성 각 각 12율을 내도록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자 세종 12년 17관의 생을 탁성으로 고쳐 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따라서 『악학궤범』의 화(화생)는 13관으로 음역은 12율, 생(소생)은 17관으로 음역은 12율 4청성, 우(우생)는 17관으로 탁성을 내는 악기로 사용되었다.
이후 서유규(1764-1845)가 쓴 『유예지』와 정조때 편찬된 『시악화성』과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와 19세기 악보인 『방산한씨금보』가 있다. 『유예지』의 생황자보, 『시악화성』의 생․우의 제조법과 취법, 산형 『방산한씨금보』의 생황의 산형과 구음,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생황의 구음을 통해 『악학궤범』과 『유예지』는 12율4청성이라는 점이나 율명순까지도 동일하나, 『시악화성』은 7율과 2청성, 『방산한씨금보』는 12율로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문헌〵죽관 | 일자죽관 | 이자죽관 | 삼자죽관 | 사자죽관 | 오자죽관 | 육자죽관 |
유예지 | 류(纍) | 로(盧) | 예(芮) | 라(羅) | 예(芮) | 리(里) |
오주연문장전산고 | 류(纍) | 로(盧) | 예(芮) | 라(羅) | 예(芮) | 리(里) |
방산한씨금보 | 류(纍) | 라(羅) | 예(芮) | 리(里) | 로(盧) | 너 |
가사유취(죽관) | 누(1.12.15) | 노(1.12.14) | 녜(4.8) | 나(2.6) | 이/너(1.12) | 니(11) |
음역은 관대의 개수에 따라 각기 다르다. 현재 전통음악 연주에는 생과 같은 일곱 관의 생황이 사용되고, 창작음악 연주에는 이 17관 외에도 24관, 36관, 38관 등의 개량 생황이 사용되고 있다.
17관 생: 아부(雅部)악기이므로 12율4청성의 음역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황종을 E♭로 조율하여 사용하고 있다.
관대는 음고 순이 아니라 두 개의 음을 동시에 내는 전통 주법인 ‘쌍성’(雙聲)의 연주에 편리하도록 배열되었다. 취구를 기준으로 왼손과 오른손이 나누어 지공을 막으며 양손 각각 모지, 식지, 장지의 세 손가락을 주로 사용한다. 연주자에 따라 무명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개량생황: 20세기 이후 연주 시의 불편함, 고저음 음량 전도, 운지법 등의 단점 등을 보완하고 창작곡 연주에 가능하도록 음역을 넓히고 반음계를 연주할 수 있도록 악기를 개량하였다. 21생황ㆍ24생황ㆍ26생황ㆍ36생황ㆍ37생황·ㆍ중음생황 등 여러 악기들이 고안되었다.
③ 연주방법과 기법
가슴을 곧게 펴고 배를 안쪽으로 끌어당겨 편안한 자세로 앉아, 두 손으로 공명통 아랫부분을 감싸 쥔다. 모지가 취구의 양옆으로 오도록 하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공명통을 감싸 쥐어 공명통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관대의 지공에 손가락의 끝이 오도록 한다. 죽관에 뚫린 구멍에 손가락을 막으면 쇠청이 떨려 여러 개의 죽관을 공명시켜 소리를 내는데, 이때 취구에 입김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입술을 옆으로 당기면서 작게 오므려 들숨이나 날숨 때에 입가로 바람이 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징적인 연주 기법으로서 생황류 악기의 화음주법인 쌍성이 있다. 연주방법에는 한 음을 내는 것과 여러 음을 동시에 내는 쌍성 주법이 있다. 쌍성은 보통 두 개의 음을 동시에 내는 화음 주법으로, 전통적으로 완전 4도(黃-仲), 완전 5도(黃-林), 옥타브 관계의 화음을 주로 사용하였다. 단성을 연주하는 다른 악기들과 달리 생황은 쌍성을 이용하여 음악이 더욱 풍성하게 들리도록 하였다.
이 외에도 개량 생황에서는 작곡자의 의도에 따른 화성을 연주하거나 혀치기(tonguing), 꾸밈음(trill)과 농음(tremolo), 글리산도와(glissando) 클러스터(cluster), 타음(打音) 등의 연주기법을 활용한다.
④ 연주 악곡
소생, 화생, 우생은 1116년(예종 11)에는 대성아악이 유입되어 『악학궤범』에는 아악에 속하는 악기로 분류되면서 모든 제례악 악기 편성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유예지』에 수록된 생황의 가곡 악보를 증명하듯, 『청성집』에 풍류모임에서 가야금, 거문고, 퉁소, 서양금과 더불어 연주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러한 생황 연주는 『방산한씨금보』에도 드러나는데 가곡 뿐만 아니라 《영산회상》, 〈여민락〉, 〈보허사〉에 금(琴)과 적(笛)과 함께 연주한 흔적이 보인다. 생황의 연주곡은 풍류음악에서 그치지 않고 '월야선유도'나 '태평성시도'의 풍속화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삼현육각과 함께 춤 반주에도 폭넓게 사용되었었다.
18세기 강세황이 그린 아들 신이와 김홍도가 함께 연주한 ‘생소병주’ 풍속화에서 보듯이, 생황은 단소와 이중주로 많이 쓰이며, 이를 ‘생소병주’라 칭하였다. 기산의 ‘한량과 기생’의 그림에서 보듯이 19세기에는 해금과 연주도 보여진다. 즉 생황은 가곡, 《영산회상》, 〈여민락〉, 〈보허사〉, 민속음악 등 다양하게 연주되었으며, 연주형태는 가야금,거문고, 퉁소, 양금, 가창과 같은 풍류방음악이나 삼현육각+생황, 생황+피리+대금의 합주음악과 생황+양금, 생황+금+적, 생황+소, 생황+해금의 이중주의 연주형태로 연주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나, 청나라에서 악기를 수입하여 연주가 이어졌다. 국립국악원은 악기연구소 주관으로 2006년 생황의 발음원리를 연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생황과 문헌자료들을 참고하여 2007년 생황을 복원 제작하였다. 오늘날 연주되는 전통 생황 악곡으로는 생황과 단소의 2중주인 ‘생소병주’(笙簫竝奏)로 연주하는 〈염양춘(艶陽春)〉과 〈수룡음(水龍吟)〉의 자진한잎 두 곡이 있다.
생황은 현대 창작음악의 반음계를 연주할 수 있도록 악기 개량을 하였고,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여 활용하고 있다. 생황은 24관, 27관, 36관, 37관, 38관, 40관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 24관, 37관, 38관이 주로 사용되며 각각의 개량 생황은 관의 배열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오늘날 생황으로 통칭되는 생류 악기는 다른 국악기와 달리 화음을 내는 점이 특징적이다. 중국 고대 악기이지만 우리나라에 유입된 이후 향악화된 악기이다. 공명통에 13~36개의 죽관을 끼워 넣은 모습으로 관의 개수에 따라 화(和)ㆍ생(笙)ㆍ우(竽) 등의 이름으로 구별되었으나, 지금은 통틀어 ‘생황(笙簧)’이라 한다. 이름은 황편[reed]을 사용하는 데에서 비롯된 명칭이며, ‘황생(簧笙)’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중국에서는 ‘생(笙)’이라 부른다. 전통적인 17관 이외에도 현대음악에 맞춰 반음계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되어 21생황, 24생황, 36생황, 37생황, 중음생황 등 다양한 악기가 있다.
국립국악원, 『국악기 실측 자료집2』, 국립국악원, 2012. 국립국악원, 『국악기연구보고서』, 국립국악원, 2007.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학술총서 제4집 : 역주 시악화성』, 국립국악원, 1996.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학술총서 제15집 : 금보(고), 금보정선, 양금보, 현금동문유기, 유예지, 장금신보, 서금, 금보, 서금보, 양금곡보, 양금주책』, 국립국악원, 1984.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학술총서 제26집 : 영조판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1988. 국립국악원, 『한국의 악기 1』, 국립국악원, 2014. 송혜진, 『한국악기』, 열화당, 2002. 이정희, 「조선후기 민간의 생황문화 고찰」, 『한국음악사학보』 25, 한국음악사학회, 2000. 조석연, 「조선시대 생황의 수용과 융합 양상에 대한 고찰」, 『공연문화연구』 29, 공연문화학회, 2014.
조석연(趙石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