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열지곡은 조선조 세종대에 회례와 양로연에 무무와 함께 헌가가 아뢰던 아악곡으로 태조와 태종의 무공을 찬양하는 악장을 노래한다. 1432년에 그 곡명과 악장이 처음 지어졌으나, 이듬해에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여 새롭게 지었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무열지곡은 총 4자16구로서 전반 8구는 태조의 무공을, 후반 8구는 태종의 무공을 찬양하였다. 두 악장은 각각 1자1음씩 32음이 하나의 악곡을 이루었고, 이를 반복 연주함으로써 두 수의 악장을 노래한다.
무열지곡(武烈之曲)의 곡명이 처음으로 정해진 때는 1432년(세종 14)이고, 악장이 처음 지어진 때 역시 1432년(세종 14)이다. 당시 정초(鄭招)ㆍ신장(申檣)ㆍ정인지(鄭麟趾)가 처음 지어 올렸으나 이듬해에 예조에서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여 새롭게 지어 올렸다. 그 음악은 『세종실록』 「악보」의 “조회아악” ‘황종궁11’ 16음과 ‘황종궁12’ 16음을 합하여 총 32음이 하나의 악곡을 이루었다. 1433년(세종 15)에 새롭게 고쳐진 악장과 악보가 『악학궤범』 “가사(歌詞)”(권2.27b-29b)에 수록되어 전해온다.
무열지곡(武烈之曲)은 조선조 세종대에 회례와 양로연 등 가례(嘉禮)에 무무(武舞)와 함께 헌가(軒架)가 아뢰었던 아악곡으로 악장은 태조와 태종의 무공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무열지곡이라는 곡명은 1432년(세종 14)에 처음 정해졌으며, 그 악장 역시 1432년(세종 14)에 정초(鄭招)ㆍ신장(申檣)ㆍ정인지(鄭麟趾)가 처음 지어 올렸으나 이듬해에 예조에서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여 새롭게 지어 올렸다. 그 악보는 『세종실록』 「악보」의 “조회아악” ‘황종궁11’ 16음과 ‘황종궁12’ 16음을 합하여 총 32음이 하나의 악곡을 이루었다. 『세종실록』 「악보」의 “조회아악” ‘황종궁11’과 ‘황종궁12’는 남송 주희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典通解)』 소재 “십이시악(十二詩樂)” 중 《황황자화(皇皇者華)》 3ㆍ4장을 취한 뒤 ‘황종궁’으로 이조하여 이룬 선율 유형이다. 『세종실록』 「오례」의 “정지회의”와 “양로연”에는 무열지악(武烈之樂)이라는 곡명으로 각각 제6작(爵)과 제2작(爵)에서 무무와 함께 헌가(軒架)가 연주하는 악곡으로 수록되었다.
1433년(세종 15)에 새롭게 고쳐진 악장과 악보는 『악학궤범』 “가사(歌詞)”(권2.27b-29b)에 수록되어 전해온다. 『악학궤범』 “가사(歌詞)” 중의 무열지곡은 총 4자16구로서 전반 8구는 태조의 무공을 찬양한 악장이고, 후반 8구는 태종의 무공을 찬양한 악장이다. 두 악장은 각각 1자1음씩 32음이 하나의 악곡을 이루었고, 이를 반복 연주함으로써 두 수의 악장을 노래 부른다. 이 무열지곡은 행사가 있는 달의 율(律)에 맞추어 연주하는 “수월용율법(隨月用律法)”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실제 연주하는 궁(宮)의 음고는 행사가 있는 달에 따라 달랐다. 『악학궤범』의 “세종조회례연의(世宗朝會禮宴儀)”(권2.22b-23b)에는 무열지곡이 무무와 함께 제5작에 연주하는 악곡임이 명시되었고, “세종조수월용률(世宗朝隨月用律)”(권2.23b-24b)에는 동지아악, 정조아악, 8월양로연아악, 9월양로연아악에 각각 다른 음고의 악보가 수록되어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정화순(鄭花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