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주궁계면조(太簇宮界面調), 하림조(河臨調)
조선 전기의 거문고 곡 〈최자(嗺子)〉와 〈우식(憂息)〉에 쓰인 악조 이름
『악학궤범(樂學軌範)』 권7 현금(玄琴)조에 수록되어 전하는 최자조(嗺子調)는 태주궁계면조(太簇宮界面調)로서 속칭 하림조(河臨調)이다. 최자조라는 악조명은 〈최자(嗺子)〉라는 곡 이름에서 왔는데, 함께 명시된 산형(散形)을 통하여 〈최자〉를 연주할 때의 거문고 조현법과 사용 음위(音位)를 알 수 있다. 그 최자조의 조현법과 음위는 〈우식(憂息)〉의 연주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최자〉는 1430년(세종 12)까지만 해도 〈탁목(啄木)〉, 〈우식〉, 〈다수희(多手喜)〉, 〈청평(淸平)〉, 〈거사연(居士戀)〉 등과 함께 거문고곡으로 연주법이 전해지던 악곡이었다. 그 악조로 미루어 〈최자〉는 태주궁계면조의 악곡으로서 본래 노래와 함께 연주되던 악곡이었으나 1430년(세종 12) 당시 이미 가사를 잃은 채 거문고곡으로만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후 1435년(세종 18)에 당시 조선조의 고악(古樂)으로서 〈최자〉를 비롯한 〈우식〉, 〈탁목〉 등의 거문고곡들이 장차 폐절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 악곡들을 이습(肄習)하게 하자는 건의가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악학궤범』권1 “악조총의(樂調總義)”에 낙시조(樂時調), 우조(羽調), 평조(平調), 계면(界面), 하림(河臨), 탁목(啄木)과 함께 조선 전기의 향악조 가운데 하나로 자리할 수 있었고, 현금조에 도설(圖說)이 수록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하림, 최자, 탁목 등의 악조는 고악의 곡 이름이 악조 이름으로 자리한 점에서 주목되는데, 이 세 악조는 거문고의 특정 악곡에 쓰인 악조였기 때문에 그 쓰임이 폭넓지 않았다.
문헌에서 〈최자〉라는 곡 이름은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당악(唐樂)조에 보이는데, 〈수연장(壽延長)〉과 〈연화대(蓮花臺)〉 정재에 〈최자령(嗺子令)〉이 반주음악으로 쓰였다. 뿐만 아니라 〈금잔자(金盞子)[최자]〉의 경우와 같이 곡이름에 세주로 표시된 “최자”도 보이는데 그 “최자”는 사악(詞樂)의 표현방식으로서 바로 “최(嗺:‘재촉한다’는 의미)”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곡을 말한다. 〈최자령〉은 1428년(세종 10)에 예조에서 정해 올린 《성택(聖澤)》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채용되었는데, 『악학궤범』에는 곡이름이 〈최자〉로 바뀌어 나타난다. 1430년(세종 12)에 거문고 곡으로 남아있었던 〈최자〉는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 연주되었던 〈최자령〉, 혹은 〈최자〉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곡 이름이 같다는 점에서는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1430년(세종 12)과 1435년(세종 18)의 두 기사에서 모두 〈최자〉를 가장 먼저 언급하였고 또 함께 거론된 악곡들이 멀리는 신라시대로, 가까이는 고려 후기로 소급되는 점으로 미루어 〈최자〉 역시 그 유래가 오랜 악곡임이 분명하다. 〈최자〉와 함께 거론된 악곡들 중 〈탁목〉은 당나라 때의 음악이고, 〈우식〉은 신라시대의 음악이며, 〈청평〉은 원래 당나라 교방(敎坊)의 곡이름이었고, 〈거사연(居士戀)〉은 고려 후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자〉는 곡 이름 면에서 〈탁목〉과 함께 당악과 관련이 있다. 중국의 옛 악곡인 〈풍입송(風入松)〉이 이른 시기에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향악으로 자리하게 된 것과 같이 〈최자〉나 〈탁목〉도 역시 이른 시기에 유입되어 시간이 경과하면서 향악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고려사』 「악지」의 〈최자령〉보다 이른 시기에 유입된 뒤 문인들에게 이입(移入)되어 회자되면서 향악으로 자리하게 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최자〉의 악조인 최자조는 태주(太簇)를 중심음으로 삼은 5음음계 계면조로서 <宮[太]
최자조는 『악학궤범』 이후의 문헌에서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오직 선조대의 악보인 『금합자보(琴合字譜)』(1572)에 그 산형(散形)이 수록되어 전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악학궤범』 소재 최자조의 산형을 재수록한 것일 뿐, 당시의 거문고 음악과는 전혀 무관하다. 『금합자보』에는 『악학궤범』 소재 향악조의 산형을 먼저 제시한 뒤, 이어 당시의 거문고 조현법과 음위와 상관되는 ‘금도(琴圖)’를 별도로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합자보』에 수록된 각 악곡의 악보에도 최자조의 악곡이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최자조는 성종 이후로 〈최자〉 곡과 함께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
『高麗史』 『琴合字譜』 『三國史記』 『世宗實錄』 『樂學軌範』
王琳夫, 「《高丽史ㆍ乐志》词调下小字标识考释」, 『黄钟』, 武汉音乐学院学报, 2018.
정화순(鄭花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