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목조(啄木調), 황종궁평조(黃鍾宮平調)
궁조(宮調)는 칠현조(七賢調), 봉황조(鳳凰調)와 함께 신라의 비파(琵琶) 음악이라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전해지는 3조(調) 중 하나이다. 이들 3종 악조들은 명칭으로 미루어 모두 중국 전래의 악조로 추정된다.
중국 음악사에서 궁조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였다. 하나는 고대 악곡에 사용된 조(調)의 총칭으로서 당대(唐代)의 속악을 28조로 규정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궁ㆍ상ㆍ각ㆍ치ㆍ우 5종 조식(調式) 가운데 첫 번째로서, 이 궁조는 정성조(正聲調)(고악조(古樂調)), 신음계(新音階), 속악조(俗樂調)(연악조(燕樂調)) 중 어느 것에 속하느냐에 따라 3종 궁조로 구별된다. 역대로 정성조(고악조)는 아악 7음음계로 여겨질 정도로 주로 아악에 사용되었지만 속악에 쓰이기도 하였다. 반면 신음계와 속악조(연악조)는 속악에만 쓰였으며 그중 속악조(연악조)가 대표성을 띤다. 중국 고대의 속악조인 신음계는 주로 청악(淸樂)에 쓰였고, 당대(唐代)에 새로이 대두된 속악조(연악조)는 주로 연악(燕樂)에 쓰였다. 특히 당대(唐代)의 문헌에 전하는 속악 28조는 속악조(연악조)로서 연악 28조라고도 한다. 만일 신라의 비파 3조가 중국에서 전래된 악조라면 궁조는 중국 속악조의 궁조이겠지만 정성조ㆍ신음계ㆍ속악조(연악조) 가운데 어느 궁조인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조고(調高)도 알 수 없다. 다만 신라의 삼죽조에 보이는 중국 전래의 악조들과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비파의 궁조는 당대의 속악(연악) 28조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악학궤범(樂學軌範)』 권7 「현금(玄琴)」 조에 전하는 탁목조(啄木調)는 “황종궁평조(黃鍾宮平調)”인 점, “속칭 궁조(宮調)”인 점, 《최자(嗺子)》ㆍ《우식(憂息)》과 함께 조선 초기까지 전해지던 고악(古樂)의 하나인 《탁목(啄木)》의 거문고 조현법인 점이 주목된다. 1435년(세종 18) 당시 조선조의 고악(古樂)으로 지칭되었던 《최자》ㆍ《탁목》ㆍ《우식》 3곡은 모두 1430년(세종 12) 당시에 이미 가사를 잃은 채 기악곡으로만 전해지던 거문고곡으로, 『악학궤범』 권7 「현금(玄琴)」 조에 각각의 조현법이 전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 곡은 1435년(세종 18) 장차 폐절될 위기에 처하였을 정도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탁목》의 거문고 조현법인 “탁목조”는 그 명칭 자체에 이미 일본 헤이안[平安] 시대의 비파 연주가인 후지와라노 사다토시(藤原贞敏, 807~867)가 838년(唐文宗 開成3)에 당(唐) 양주(揚州) 소재 개원사(開元寺)에서 비파박사(琵琶博士) 염승무(廉承武)로부터 배워온 비파 비곡(祕曲) 중 한 곡으로 포함되어 나타나고, 당시 후지와라노 사다토시가 염승무로부터 전해 받은 『비파제조자품(琵琶諸調子品)』의 비파의 28조에 포함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 유래를 신라로 연결할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최자》ㆍ《우식》에 관한 여러 기록들, 즉 《우식악(憂息樂)》이 『삼국사기』에 신라 눌지왕(訥祗王, 417~458) 때 지은 것이라고 전해지는 점, 『악학궤범』 권7 「현금(玄琴)」 조의 최자조를 속칭 하림조(河臨調)라 한 점, 또 그 최자조가 《우식》의 조현법인 우식조(憂息調)와 같다고 한 점 등 여러 내용 역시 신라와 상관되어 있다. 이와 같이 그 유래가 매우 오랜 조선 초기 3종 고악에 관하여 신라와 연결되어 있는 여러 정황들은 탁목조를 신라 음악으로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탁목조는 “속칭 궁조(宮調)”라는 점에서 신라의 비파조로 전하는 궁조에서 연원하여 향악화된 것일 수 있다. 만일 이러한 가정이 성립된다면, 신라의 비파조 궁조는 황종궁평조의 구성음인 “황-태-중-임-남”을 근간으로 하는 5음음계 또는 7음음계의 악조였을 가능성이 크다.
『三國史記』 『世宗實錄』 『樂學軌範』
林謙三, 『東亞樂器考』, 北京:人民音樂出版社, 1962. 張前, 『中日音樂交流史』, 北京:人民音樂出版社, 1999
정화순(鄭花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