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상(黃鍾商)
신라의 삼죽악(三竹樂)에 사용된 7조 중 하나
신라의 삼죽(三竹) 음악에 사용된 악조의 하나인 월조는 당 시기에 쓰인 황종균의 상조로서 천보 연간에는 황종상을 월조라 불렀다. 『악학궤범』에는 ‘설’에 월조가 당대의 문헌과 같이 7상의 첫 번째로 포함되었지만, ‘도’에는 ‘무역상’을 속칭 월조라 하여 당대의 문헌과 차이가 있다. 이는 송대에 이르러 속악의 율이 당율보다 2율이 높아져서 당대의 황종상[월조]가 송대에 무역상[월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신라에 유입된 월조는 황종균의 상조였다.
신라 경덕왕 전기에 처음 유입되어 삼죽 음악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월조는 애초 황종균의 상조였다. 송대에 이르러 속악의 율이 당율보다 2율 높아짐에 따라 당대의 황종상이 송대에 무역상으로 바뀌는 변화가 있었는데, 『악학궤범』에 ‘무역상’을 속칭 월조라 한 것은 바로 송대의 명칭을 따른 것이다. 즉 우리나라에서의 월조는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유입되었을 때에는 당대의 황종상[월조]였으나 고려시대에 송 속악이 대거 유입됨에 따라 고려를 거치면서 송대의 무역상[월조]로 바뀌게 되었다.
신라의 대금(大笒)ㆍ중금(中笒)ㆍ소금(小笒) 삼죽(三竹)음악에 사용된 악조의 하나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의 삼죽적(三竹笛)에는 ①평조(平調), ②황종조(黃鍾調), ③이아조(二雅調), ④월조(越調), ⑤반섭조(般涉調), ⑥출조(出調), ⑦준조(俊調) 등 7조(調)가 있다고 전한다. 이들 7종 악조들 가운데 ①평조, ②황종조, ④월조, ⑤반섭조 등 4조는 중국의 속악조로 밝혀졌지만, ③이아조, ⑥출조, ⑦준조는 아직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월조(越調)는 『악부잡록(樂府雜錄)』과 『신당서(新唐書)』 「예악지(禮樂志)」의 7상(商)에 첫 번째로 보이고, 천보(天寶) 13년(754)에 태악서(太樂署)에서 올린 개정 악곡들의 악조 14종 중에는 열 번째 황종상(黃鍾商)을 당시에 월조라 불렀다고 하였다. 당대(唐代)의 문헌에 보이는 월조는 황종균(黃鍾均)의 상조(商調)로서 “상[태] <장2도> 각[고] <장2도> 변치[유] <단2도> 치[임] <장2도> 우[남] <장2도> 변궁[응] <단2도> 궁[청황] <장2도> 상[청태]”의 음계구조를 이룬다.
이러한 월조가 신라에 수용된 시기는 신라 후대(780∼935)일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그러나 당 현종 시기에 신라와 당 간의 교류가 빈번하였고, 당시 이미 황종상을 월조라 칭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 월조가 들어온 때는 당 천보 연간과 수평시기인 경덕왕 전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월조는 후대의 문헌에도 꾸준히 등장하여 진양의 『악서』와 진원정의 『사림광기』를 원용한 우리나라의 『악학궤범(樂學軌範)』 「오음율려이십팔조도설(五音律呂二十八調圖說)」에서도 그 명칭을 발견할 수 있다. 『악서』를 인용한 ‘설(說)’에 월조가 7상의 첫 번째로 포함된 점은 당대의 문헌과 공통되지만, 『사림광기』를 인용한 “도(圖)”에는 ‘무역상’을 월조라고도 부른다고 되어 있어 당대의 문헌과 차이가 있다. 이는 송대 속악의 율이 당율보다 2율 높기 때문에 당대의 황종상[월조]가 송대에 이르러 무역상[월조]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애초 당대의 황종상[월조]는 천보 연간의 아악 율을 표준으로 삼은 데 반하여 송대의 무역상[월조]는 송대 속악의 율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唐會要』 『三國史記』 『新唐書』 『樂府雜錄』 『樂學軌範』
李玫, 「燕乐二十八调调名与律吕名错位的原因」, 『中国音乐学』, 2010. 吕冰, 「关于唐俗乐二十八调的音阶」, 『中国音乐学』, 1994.
정화순(鄭花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