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장헌대왕실록악보(世宗莊憲大王實錄樂譜)』, 세종보
세종 재위 기간에 창작되었거나 개작된 음악과 악장이 수록되어 있는 악보
세종 재위 기간에 창작되었거나 개작된 음악들이 수록되어있는 악보로서 ①「아악보」에는 세종 12년에 완성된 신제아악보를 중심으로 그 저본인 의례경전통해시악보와 원조임우대성악보가, ②「속악보」에는 세종 말기에 창작된 4종 신악과 3곡의 개작곡 악보가, ③「악장」에는 세종 재위기에 지은 각종 제례의 악장이 각각 수록되었고, 후미에 〈용비어천가〉가 서문과 함께 수록되었다.
세종 재위 기간에 창작되었거나 개작된 음악들이 수록되어있는 악보로서 『세종실록』 권136~권147에 수록되어있다. 표제명은 『세종장헌대왕실록』이며, 1454년(단종 2) 3월 30일에 완성되었다. 수록 내용은 크게 「아악보」, 「속악보」, 「악장」과 「용비어천가」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부분인 「아악보」에는 정인지(鄭麟趾)가 쓴 서문을 시작으로 아악십이궁칠성용이십팔성도(雅樂十二宮七聲用二十八聲圖), 십이궁칠성용십육성도(十二宮七聲用十六聲圖), 악보목록(樂譜目錄), 조회ㆍ제사 아악보(朝會・祭祀 雅樂譜), 의례경전통해시악보, 원조임우대성악보가 수록되어있다. 둘째 부분인 「속악보」 역시 서문을 시작으로 〈정대업지무〉, 〈보태평지무〉, 〈발상지무〉, 〈봉래의〉 등의 창작곡과 〈봉황음〉, 〈만전춘〉의 개작곡 악보가 수록되어있다. 셋째 부분인 「악장」에는 사직, 종묘, 풍운뇌우ㆍ산천ㆍ성황ㆍ선농, 선잠, 우사, 문선왕석전, 독제, 문소전의 악장이 수록되어있고, 후미에 용비어천가가 서문과 함께 수록되어있다. 세종대는 역대 중 음악업적이 가장 두드러지는 시기이므로 수록 악보의 분량도 매우 방대하다. 전체 중에서 〈봉황음〉과 〈만전춘〉만 개작된 작품일 뿐, 나머지는 모두 세종대에 창제된 것들이다.
(1) 「아악보」
첫 부분에 수록된 서문은 아악보가 완성되자 1430년(세종 12) 윤12월 1일에 정인지가 지어올린 것이다. “아악십이궁칠성용이십팔성도”는 [남송]채원정(蔡元定)의 『율려신서(律呂新書)』 소재 “60조도” 중에서 12궁(宮)을 발췌하여 이룬 도표로서 황종궁부터 응종궁까지 12궁의 7성(궁ㆍ상ㆍ각ㆍ변치ㆍ치ㆍ우ㆍ변궁)에 쓰인 음이 정성 12, 정반성 8, 변성 3, 변반성 5를 합한 28성임을 도표로 나타낸 것이다. “십이궁칠성용십육성도”는 앞의 책 “60조도” 말미에 세주로 부언된 주자의 견해를 수용하여 도식화한 것으로 신제아악의 음역이 12율4청성으로 한정되는 이론의 배경이 되었다. 12율4청성은 궁ㆍ상ㆍ각ㆍ치ㆍ우 5음을 군(君)ㆍ신(臣)ㆍ민(民)ㆍ사(事)ㆍ물(物)에 대입하여 아악의 12궁조에 “신ㆍ민이 인군을 능만해서는 안된다”,“사ㆍ물은 반드시 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자의 견해를 적용하여 도출해낸 최저음 황종과 최고음 청협종이다. 황종부터 청협종에 이르는 12율4청성의 음역은 이후로 우리나라 아악의 원칙이 되어왔다.
다음 “아악보”에는 조회와 제사로 구분하여 악보를 수록하였는데, 기보 방식은 궁상자보를 기본으로 하여 작은 글씨로 율려자보를 병기하였다. 모든 악곡은 원전의 악보에서 모든 청성을 중성으로 바꿈과 동시에 황종궁으로 전환하여 기본 선율유형로 삼고, 그것을 대려궁 이하 11궁으로 이조함으로써 매 유형별로 12곡을 구비하였다. 또 기본 선율유형인 황종궁에는 모두 출처를 명시하였다. 조회아악은 “황궁궁1”부터 “황종궁26”까지 26종의 기본 선율유형을 갖추었으므로 총 312곡을 이루었고, 제사아악은 “황궁궁1”부터 “황종궁12”까지 12종의 기본 선율유형을 갖추었으므로 총 142곡을 이루었다. 이와 같이 방대한 악곡을 마련하여 아악을 사용하는 모든 의례에서 선별 사용할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 아악보 뒤에는 조회아악과 제사아악의 연원처인 “의례경전통해시악보”와 “원조임우대성악보”를 수록하였다. “의례경전통해시악보”는 가사 1자마다 율명 1음이 표기되었고, “원조임우대성악보”는 율려자보와 공척보를 병기한 아율통속보(雅聿通俗譜) 방식으로 표기되었는데, 아율통속보는 바로 원대에 유행했던 기보방식이다. 두 악보에 수록된 음악은 모두 아악의 1자1음 형식인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2) 「속악보」
둘째 부분인 「속악보」 역시 서문을 시작으로 세종 말기에 창작된 〈정대업지무〉, 〈보태평지무〉, 〈발상지무〉, 〈봉래의〉 등의 4종 신악과 〈봉황음〉, 〈만전춘〉의 개작곡 악보가 수록되어있다. 이러한 악보들은 모두 현행 정간보와 같이 정간에 율명을 기입하는 방식으로 기보되었다. 세종이 창안한 이 보법은 1행이 32정간으로 이면에 [3ㆍ2ㆍ3ㆍ3ㆍ2ㆍ3ㆍ3ㆍ2ㆍ3ㆍ3ㆍ2ㆍ3정간]씩 구획된 12대강이 내재해있다.
「속악보」의 수록 악곡들은 현재 〈봉래의〉 중의 〈여민락〉만 〈여민락만〉이라는 곡명으로 연주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세종 말기에 창작된 〈정대업지무〉와 〈보태평지무〉는 1463년(세조 9) 12월에 새로 제정한 교묘악의 〈정대업지악〉과 〈보태평지악〉으로 재탄생된 이래, 면면히 전승되어 현재의 《종묘제례악》으로 연주되고 있다.
(3) 「악장」(「용비어천가」포함)
셋째 부분인 「악장」에는 사직, 종묘, 풍운뇌우ㆍ산천ㆍ성황, 선농, 선잠, 우사, 문선왕석전, 독제, 문소전의 악장이 수록되어있고, 후미에 용비어천가가 서문과 함께 수록되어있다. 사직부터 문소전까지 각 절차와 악장은 다음과 같다.
사직악장은 전폐, 작헌, 철변두의 절차에 부른 악장으로 모두 4자 8구이며, 응종궁으로 노래한다.
종묘악장은 관창(祼鬯), 전폐, 익조(翼祖)제1실, 도조(度祖)제2실, 환조(桓祖)제3실, 태조(太祖)제4실, 공정왕(恭靖王)제5실, 태종(太宗)제6실, 음복, 철변두, 목조영녕전(穆祖永寧殿)에 부른 악장으로 모두 4자8구이며, 협종궁으로 노래한다. 1426년(세종 8)에 당시 종묘의 당상과 당하에 모두 무역을 연주하는 잘못을 지적하고는 당상에 협종을 노래하게 하자는 박연의 건의가 받아들여졌고, 1448년(세종 30)에는 관창과 전폐를 합쳐 하나의 악장으로 개작한 점으로 미루어 여기서의 종묘악장은 세종 8-30년간에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풍운뇌우・산천・성황악장은 전폐, 풍운뇌우신위, 산천신위, 성황신위, 철변두의 악장으로 모두 4자8구이며, 대려궁으로 노래한다.
선농악장은 전폐, 정위・배위 작헌, 철변두의 악장으로 모두 4자8구이며, 남려궁으로 노래한다.
선잠악장은 전폐, 작헌, 철변두의 악장으로 모두 4자8구이며, 남려궁으로 노래한다.
우사악장은 전폐, 구망위(句芒位), 축융위(祝融位), 후토위(后土位), 욕수위(蓐收位), 현명위(玄冥位), 후직위(后稷位), 철변두의 악장으로 모두 4자8구이며, 남려궁으로 노래한다.
문선왕석전악장은 전폐, 작헌[정위ㆍ연국공(兗國公)ㆍ성국공(郕國公)ㆍ기국공(沂國公)ㆍ추국공(鄒國公)], 철변두의 악장으로 모두 4자8구이며, 남려궁으로 노래한다.
둑제[纛祭]악장으로 수록된 정동방곡과 납씨곡은 본래 1393년(태조 2)에 정도전이 지어올린 악장들이다. 〈정동방곡〉은 정도전이 지은 악장에 3자4구마다 후렴구 “위동왕성덕(偉東王德盛)”을 붙여 전 5행을 이루었고, 매 행이 5자4구, 전 4행인 〈납씨곡〉은 정도전이 올린 악장과 완전히 같다.
문소전악장으로 〈환환곡(桓桓曲)〉(4자8구), 〈미미곡(亹亹曲)〉(4자8구), 〈유황곡(維皇曲)〉, 〈유천곡(維天曲)〉, 〈정동방곡〉이 수록되어있다. 〈정동방곡〉을 제외한 앞 네 악장은 1433년(세종 15)에 재작한 악장으로 그 해 12월에 곡 이름을 붙인 것이다. 〈환환곡〉과 〈미미곡〉은 각각 태조와 태종을 제사할 때 당악 〈중강령〉에 맞추어 불렀던 초헌악의 미칭이고, 〈유황곡〉과 〈유천곡〉은 각각 태조와 태종을 제사할 때 향악 〈풍입송조〉에 맞추어 불렀던 아헌악의 미칭이다. 〈정동방곡〉은 둑제의 악장과 완전히 같다.
이상과 같은 악장들은 당상에만 악장이 있고, 사용된 악조는 모두 주대(周代)의 육합제도(六合制度)를 따라 등가에서 음려를 노래한다는 원칙을 준수하였다. 그리고 후미에는 세종대의 역작인 용비어천가 125장이 서문과 함께 수록되었다.
조선조 세종대는 우리나라 음악사상 가장 찬란한 음악문화를 꽃피웠던 시대로서 그 시기에 아ㆍ속을 망라한 음악이 양산되고 음악이론도 정립되었다. 『세종실록악보』는 바로 그 시기에 이루어진 일체의 음악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세종대 음악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현전 고악보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랜 악보라는 점에서도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世宗實錄』 『端宗實錄』
李惠求譯註, 『세종장헌대왕실록 2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1(재판). 정화순, 「“初期 井間譜의 易學的 解釋을 위한 試圖”」, 『韓中哲學』 창간호, 韓中哲學會, 1995. 정화순, 「致和平의 排字方法에 관하여」, 『청예논총』 9, 청주대학교 예술문화연구소, 1995.
정화순(鄭花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