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시기 환구단(圜丘壇)에 제사를 올릴 때 연행했던 기악과 노래[樂章]와 춤[八佾舞]
환구제례악은 환구제례(圜丘祭禮)를 지낼 때 사용된 제례악무이다. 〈중화지곡(中和之曲)〉, 〈숙화지곡(肅和之曲)〉, 〈응화지곡(凝和之曲)〉, 〈수화지곡(壽和之曲)〉, 〈예화지곡(豫和之曲)〉, 〈희화지곡(熙和之曲)〉, 〈옹화지곡(雍和之曲)〉, 〈안화지곡安和之曲〉으로 구성되어 있다. 등가(登歌)와 궁가(宮架) 두 악대로 연주하며,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를 예순네 명으로 구성된 팔일무(八佾舞)의 형태로 춤추었다.
대한제국이 탄생하면서 황제국의 위상에 맞는 유교식 제천례(祭天禮)로 환구제례를 제정하였고 여기에 환구제례악을 사용하였다.
○ 역사 변천과정 우리나라에서 하늘에 제사하는 풍습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하였다. 고려시대에도 천제(天祭)를 지냈는데, 1385년(우왕 11) 명나라 사신 주탁(周倬)의 지적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太祖)가 다시 하늘에 대한 제사를 추진하였고 간헐적으로 시행되면서 1464년(세조 10)까지 이어졌지만 제후국이기 때문에 더 이상 거행할 수 없었다. 이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고 대한제국이 황제국임을 선포함에 따라 다시 하늘에 제사하기 시작했고, 이때 새로 제정된 환구제례악이 대한제국 시기(1897~1910)에 연주되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기점으로 환구단에 올리던 제사가 폐지되면서 환구제례악의 전통도 단절되었다. ○ 연주 시기 대한제국 시기 1년에 두 차례, 즉 동지(冬至)와 정월 상신(上辛: 음력 1월의 첫 번째 신일(辛日)에 환구제례를 거행하였고, 이 때 환구제례악이 수반되었다. ○ 연주 장소 환구제례를 행한 환구단 위치는 현재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자리이다. 경술국치 이후 환구단이 헐리고 1914년에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가, 광복 이후에는 조선호텔(전 철도호텔)의 옛 건물을 철거하였다. ○ 제례 절차에 따른 악무 환구제례악은 환구제례의 영신(迎神), 전폐(奠幣), 진조(進俎, 진찬(進饌)에 해당),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 철변두(撤籩豆), 송신(送神), 망료(望燎)의 절차에서 정해진 악(樂)·가(歌)·무(舞)를 연행하였다. 영신은 신을 맞이하는 의례절차이다. 궁가(宮架)가 아악(雅樂)인 "협종궁", "남려궁", "고선궁", "대려궁"의 선율을 연주하였으며, 이를 〈중화지곡〉이라고 칭했다.
전폐는 신관례(晨祼禮)에 포함되어 있다. 신관례는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신을 불러오는 의식으로, 울창주(鬱鬯酒)를 붓고 향을 피워 올리며 옥과 비단을 올리는 행위로 구성되었다. 그중 옥과 비단을 올리는 절차를 전폐라고 한다. 전폐례에서 등가(登歌)가 아악인 "대려궁" 선율을 연주하였는데, 이를 〈숙화지곡〉이라고 불렀다.
진조(進俎, 진찬(進饌)에 해당됨)는 제물을 올리는 절차이다. 소, 양, 돼지가 사용되었다. 궁가가 "황종궁" 선율을 연주하였는데, 이를 〈응화지곡〉이라고 했다.
초헌은 첫 번째 술을 올리는 의례절차이다. 등가가 "대려궁" 선율을 연주하였고, 이를〈수화지곡〉이라고 칭했다.
이 음악에 맞춰 예순네 명이 무무를 춤추었다. 아헌은 두 번째 술을 올리는 의례절차이다. 궁가가 "황종궁" 선율을 연주하였으며, 이를〈예화지곡〉이라고 불렀다. 이 음악에 맞춰 예순네 명이 문무를 춤추었다. 종헌은 세 번째 술을 올리는 의례절차이다. 더 이상 술을 올리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술이기도 하다. 궁가가 "황종궁" 선율을 연주하였는데, 이를 〈희화지곡〉이라고 했다. 이 음악에 맞춰 예순네 명이 문무를 춤추었다. 철변두는 제기를 거둬들이는 의례절차로, 변과 두를 각각 하나씩 약간 옮기는 방식으로 대체하였다. 등가가 "대려궁" 선율을 연주하였는데, 이를 〈옹화지곡〉이라고 칭했다.
송신은 신을 보내는 의례절차이다. 궁가가 "협종궁" 선율을 연주하였는데, 이를 〈안화지곡〉이라고 불렀다. 망료는 축문을 태우는 의례절차이다. 송신처럼 궁가가 "협종궁" 선율을 연주하였고, 이를 〈안화지곡〉이라고 했다.
제례절차 |
악대 |
음악 명칭 |
연주 악곡 |
|
영신 |
궁가 |
중화지곡 |
협종궁, 남려궁, 고선궁, 대려궁 |
|
전폐 |
등가 |
숙화지곡 |
대려궁 |
|
진조 |
궁가 |
응화지곡 |
황종궁 |
|
초헌 |
등가 |
수화지곡 |
대려궁 |
무무 |
아헌 |
궁가 |
예화지곡 |
황종궁 |
문무 |
종헌 |
궁가 |
희화지곡 |
황종궁 |
문무 |
철변두 |
등가 |
옹화지곡 |
대려궁 |
|
송신 |
궁가 |
안화지곡 |
협종궁 |
|
망료 |
궁가 |
안화지곡 |
협종궁 |
|
○ 악장 『대한예전』에 기록된 노랫말은 김영수(金永壽, 1829~1899)가 지은 것이다. 영신에서부터 망료에 이르기까지 각 의례절차마다 노랫말이 있고, 그 내용은 의식의 성격과 관련되어 있다. ○ 일무 환구제례의 일무는 환구제례악을 연주할 때 추는 춤이다. 황제국의 위격에 맞춰 예순네 명이 팔일무를 추었는데, 초헌례에서 무무를 춤추고, 아헌과 종헌에는 문무를 추었다. 무무는 왼손에 방패[干], 오른손에 도끼[戚]를 들고 추었고, 문무는 왼손에 약(籥), 오른손에 적(翟)을 들고 추었다. ○ 음계 환구제례악은 한 가지 선율을 조옮김하여 만든 열다섯 곡의 아악 선율 중에서 “협종궁”, “남려궁”, “고선궁”, “대려궁”, “황종궁”의 다섯 곡을 사용하였다. 궁(宮:do)․상(商:re)․각(角:mi)․변치(變徵:fa#)․치(徵:sol)․우(羽:la)․변궁(變宮:si)의 7음계이며, 선율의 시작음과 끝음이 같다. 악장(樂章)이 있는 경우 한 글자에 음 하나를 배치해[一字一音] 부르며, 곡마다 네 음이 한 구를 이루고[四音一句] 여덟 개의 구가 한 곡을 이룬다. ○ 악대와 악기편성 환구제례악은 등가와 궁가 두 악대로 연주했으며,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노래로 편성되었다. 『대한예전』에 의하면 전폐, 초헌, 철변두에서 사용된 등가는 금(琴), 슬(瑟), 관(管), 약(籥), 지(篪), 적(篴), 봉소(鳳簫), 생(笙), 화(和), 우(竽), 훈(壎), 특종(特鐘), 특경(特磬), 편종(編鐘), 편경(編磬), 절고(節鼓), 강(椌[축:柷]), 갈(楬[어:敔]), 노래[歌]로 구성되었다. 영신, 진조, 아헌, 종헌, 송신, 망료에서 사용된 궁가는 현악기를 제외한 지, 관, 소(簫), 약, 적, 훈, 부(缶), 뇌도(雷鼗), 뇌고(雷鼓), 축, 어, 편종, 편경, 진고(晉鼓), 노래로 구성되었다. 제후(諸侯)의 악대 명칭인 ‘헌가(軒架)’ 대신에 천자(天子)의 악대를 의미하는 ‘궁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하늘에 제사할 때 사용하는 북인 뇌도와 뇌고를 포함시킴으로써 천제(天祭)의 특성을 드러냈다.
환구제례악은 황제의 위격에 맞게 격상된 악대와 춤, 즉 궁가와 팔일무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제례악무와 차별화되었다. 경술국치로 인해 환구제례가 폐지되면서 불과 열세 해 동안 연주되었을 뿐이지만, 대한제국 황제의 위상을 드러내는 데 일조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지닌다.
『대한예전』 『증보문헌비고』 「악고」
김문식ㆍ김지영ㆍ박례경ㆍ송지원ㆍ심승구ㆍ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이정희, 『대한제국 황실음악』, 민속원, 2019. 김문식ㆍ송지원, 「국가제례의 변천과 복원」, 『서울 20세기 생활․문화변천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1.
이정희(李丁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