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조선정악전습소일람
조선정악전습소의 1913년 일람 문서
1911년 조선정악전습소의 창립 목적과 조직, 프로그램, 교사와 학생들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사료로서 1913년에 제작된 조선정악전습소 일람이다. 내용 구성은 조선정악전습소의 창립, 연혁, 규약, 학칙, 직원 및 교사, 악보편집, 정악유지회, 경비, 찬성원 및 유지가 이름, 신구악 졸업생 주소와 이름, 학생 주소와 이름 등으로 되어 있다.
1909년 “유래하는 가악을 유지하며 시기에 적용할 조율도 증보하여 사람의 전진하는 용기를 일으켜 교제하는 심정을 서로 나누고 심장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조양구락부’는 1913년 그 명칭을 ‘조선정악전습소’로 바꾸어 운영 중에 1913년 해당 단체의 현황을 기록해 놓은 일람표로서 원자료는 한국정악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장사훈 필사본은 현재 청주대 도서관 민족음악관에 소장되어 있다.
○ 편찬사항 「조선정악전습소일람」의 원자료는 1954년 한국정악원의 총무이사였던 김인수(金仁洙)가 소장했던 자료라고 하며 현재 청주대 도서관 민족음악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은 장사훈(張師勛, 1916~1991)이 1954년 5월 8일에 필사한 자료이다. 장사훈은 1974년 『여명의 동서음악』에서 이 자료를 토대로 조선정악전습소에 대해 연구 발표한 바 있으나 필사본 자료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1991년에는 『낭만음악』(4권 1호, 낭만음악사, 1991.)에 이 필사본 자료가 영인되어 공개되었다.
○ 구성 및 세부 내용
「조선정악전습소일람」의 목차는 창립, 연혁, 규약, 학칙, 직원 및 교사, 악보편집, 정악유지회, 경비, 찬성원 및 유지가 이름, 신구악 졸업생 주소와 이름, 학생 주소와 이름 등 11개의 항목으로 되어 있다. 항목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 창립
본교는 명치 42년(1909) 9월 15일에 발기회를 본 소 사무원 백용진씨 집에서 열고 명칭은 조양구락부라 하고 구가악을 전습하며 신악을 발전하기로 기원하여 일부를 조직하나니 구가(舊歌) 남창과 여창의 우조 계면조 가사 등이오. 구악(舊樂)은 현금, 가야금, 양금, 생황, 단소와 기타 각종 음악을 포함하며 신악은 풍금과 사현금(바이올린)으로 주장하며 아울러 악리의 서면으로 겸하여 교수하며 음악보를 편집하기로 하다.
제2 연혁
명치 44년(1911) 6월에 조직을 변경하여 명칭을 조선정악전습소라 하고 직원을 약간 이동(異動)하며 교사와 규약은 인구(因舊)하며 사무소를 전 기로소 일부?를 原 내장원(內藏院)에 빌려 얻어 교수실을 신축하고 구옥을 수리 사용하다. 그해 5월에 체신국에서 본 사무소를 인계한 후로 현 무 확정 주소하여 임시로 제동 취운정에 ?활한다.
대정 원년(1912) ?월에 여악을 교수하기 위하여 분교실을 중부 상다동에 설치하다.
제3 규약
國民之立志正氣 移風易俗 於聲音而隨之 故言志而爲詩永言而爲歌彼之管絃者也 康衢之間 童謠熏殿之解民慍與 夫命夔之敎胄子 莫非正氣觀風 而乃至殷周漢唐宋明以來 詩歌樂譜之增補 沿革 數千 其多者 惟聖帝明王之紀勳頌德 賢相宰輔之諷諫讚詞 巖穴賢士之嘉言 善行 閭巷才于之絶妙好辭 幷皆登諸樂府而諧八音 感發人情平舒暢者 以示國家泰平之氣像也...何宰有志紳士集合團錫其嘉名曰調陽俱樂部. 蒐集遺來古跡其歌謠音律樂器 究舊硏新繼述其眞味淸趣且敎授肄習 則其於變風和俗拱竢有助於國民立志之萬一云甭
(번역)
국민이 뜻을 세우고 기를 바로 잡아 풍속을 개량하는 것은 성음에 따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뜻을 말로 하여 시를 삼고, 시를 길게 읊어 노래를 삼아 이것을 관현(악기)에 맞춰 부른다. 오랜 세월 궁전에서 동요를 듣는 것은 백성들의 노여움을 풀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무릇 음악 장관 기에게 명령해서 맏아들을 교육시킬 때, 기를 바르게 하고 풍속을 살피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은, 주, 한, 당, 송, 명 이래 오늘에 이른다. 시, 가, 악의 악보를 증보한 연혁이 수 천 년인데, 그 다수는 오직 성인 황제와 밝은 왕들의 공훈을 기념하고 덕을 칭송하여 어진 재상을 도와 간언한 말이니...유지 신사들이 모여 아름다운 이름을 주니 조양구락부라 했다. 고적을 수집한 이래 가요, 음률, 악기로 옛것을 궁구하고 새것을 연구하여 그 진미와 깨끗한 정취를 이어받아 가르치고 익히게 하여 풍속을 변화시키고 바치고 기다려 국민 입지의 만분의 하나라도 도움이 있고자 한다.
발기인
金景南 河順一 趙南升 韓錫振
李秉文 白瑢鎭 高禹敬 韓圭祐
金顯炷 韓鎭九
총칙
제1조 유래하던 가악을 유지하며 시의에 적용할 조율도 증보하여 사람의 전진하는 용기를 고발하며 교제하는 인정을 통창케 하기로 목적함.
제2조 가요부를 설치함
제1 이습과
제2 교수과
제3조 음악부를 설치함
제1 이습과
제2 교수과
제4조 악기 제조부를 설치하여 각종 악기를 제작 사용함.
제5조 가요와 음악은 남녀를 물론하고 상당한 자격에 지원을 의하여 교수함
제1 서식
지원서 본인이 가요부에 입학코저 하여 지원서를 이에 捏呈(날인 증정?)함. 년 월 일 지원인 주소 씨명 印 조선정악전습소자 |
제2 서식
保護戕 귀소 학원 모에게 대하여 재학문 손해사항을 보호함 년 월 일 보호인 주소 씨명 印 조선정악전습소자 |
제6조 학생의 졸업기간은 양 학기로 정함
제7조 학과과정은 갑을종으로 정함
제8조 학생의 퇴학과 정학은 학감이 명령함
제9조 수업과목이 다음과 같음
1. 졸업증
1. 진급증
1. 보증
1. 수업증
제4 학칙
제1조 생도의 정수는 50명으로 함.
제2조 학생의 구분을 따라서 3학기로 함.
제3조 입학지원자는 입학원서(제1호 서식)와 (제2호 서식) 첨부 차출함.
제4조 입학 허가를 득한 자는 경성 거주하는 부형 대신에 일절 책임 부담한 확실 보증인이 재학증서에 차출함.
제5조 학업성적표는 백점을 만점으로 정하여 각 과의 수료 또는 졸업으로 인정하고 각 교과에 60점 이상을 득한 자는 합격으로 하고 단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소장과 교사가 합의로 附하여 특별 과정의 수료와 졸업으로 인정함을 득함.
제6조 수료 또는 졸업시험 성적 제1학기 및 제2학기 평소 성적에 또 시험 성적 점수를 가하고 다시 2분 점수로 由함.
제7조 본 소장이 전 교과로 졸업자에게 졸업증서를 수여함. 본소장이 각 학년 과정 수료로 인정하는 자에게 수료증서를 수여함. 학년시험과 또는 졸업시험 성적 우등한 자에게 상품 및 상장을 수여함.
제8조 학과
학과 | 조선악 | 서양악 | ||
분과 | 성악 | 기악 | 성악 | 기악 |
歌 | 현금, 가야금, 양금, 단소, 생황, 취악 병 | 성악, 악리, 창가, 곡조 | 풍금, 사현금 | |
교수시간 | 매주 6회 | 매주6회 | 보통 매주 3회 전공 매주 5회 |
제9조 학생 모집기
조선악은 무정기. 서양악은 매년 4월이오 기악은 무정기, 기악과는 본소 성악과 졸업생과 또는 상당한 악리 학력이 있는 자에 한함.
제10조 졸업기
歌, 玄琴/ 1개년
가야금, 단소/ 각 반개년
양금/ 3개월
성악, 풍금, 사현금/ 각 1개월
입학금 | 매인 1원 | |
월사금 | 가, 현금, 가야금, 양금, 단소 | 각 1원 |
성악 | 50전 | |
풍금 사현금 | 1주간 1차씩 4개월간 20전 비 |
취임 년월일 | 受持 敎科目 | 직명 | 씨명 | 본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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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2.29. | 소장 | 서부장 | 한석진 | 청주 | |
1909.12.29. | 교감 | 열사등 | 홍긍섭 | 남양 | |
1911.10. | 학감 | 전군수 | 하규일 | 진주 | |
1911.06. | 양금 교사 겸 | 사무원 | 전감독 | 백용진 | 수원 |
1911.06. | 생황 교사 겸 | 사무원 | 전주사 | 한진구 | 청주 |
1911.03. | 회계 | 전사과 | 유종열 | 강릉 | |
1912.03. | 서기 | 전주사 | 김효연 | 김해 | |
1909.12. | 남창 여창 교사 | 분교실 감독 | 전주사 전군수 | 하순일 | 진주 |
1909.12. | 남창 여창 교사 | 교사 | 幼學 | 이승환 | 전주 |
1909.12. | 현금 | 교사 | 정3품 | 김경남 | |
1909.12. | 현금 | 교사 | 전주사 | 조이순 | 백천 |
1909.12. | 가야금 | 교사 | 아악사 | 명완벽 | 서독 |
1909.12. | 가야금 | 교사 | 아악사 | 함화진 | 양근 |
1909.12. | 가야금 | 교사 | 전참위 | 한규우 | 청주 |
1909.12. | 양금 | 교사 | 전주사 | 김상순 | 김해 |
1909.12. | 단소 | 교사 | 전사과 | 이춘우 | 전주 |
1909.12. | 단소 | 교사 | 정위원 | 조동석 | |
1912.09. | 서양악 | 교사 | 중학교 졸업 | 김인식 | 성주 |
1913.02.02. | 서양악 | 보조교사 | 중학교 졸업 | 염광섭 | 파주 |
1913.02.02. | 서양악 | 보조교사 | 중학교 졸업 | 하대홍 | 진주 |
제6 가악보 편집
편집위원 : 홍긍섭(洪肯燮), 한만용(韓晩容), 함재운(咸在韻)
명완벽(明完璧), 하규일(河圭一), 김인식(金仁湜)
악학궤범 3책, 현금보 / 양금보 : 남창 여창가곡 모두 4책 이상 7책을 함께 편집 영산회상과 民樂을 서양보표에 부호로 해석 채보한다.
제7 정악유지회
明治 四十四年 二月에 本所를 維持發展하기 爲하여 本所 範圍內에 正樂維持會를 組織하다
명치 44년(1911) 2월에 본 소를 유지 발전하기 위하여 본 소 범위 내에 정악유지회를 조직한다.
正樂維持會 趣旨書
樂者는 歌를 和하여 聲을 作하는 機器라. 聖人이 德함을 渙發하심도 管絃의 彼之하고 龍將哲人의 雄氣情操와 閭巷兒童의 風謠 短章도 並皆登採樂譜하여 鼓之風動에 感發人情과 趣向勢道하는 一大 關健이라.
然이나 其中 有正 淫亂聲하니 果然 盛衰興發의 關係가 될 至重 且 大한 즉 此는 賢人 志士의 知音 較正이 아니면 其正音 雅樂을 難以維持故로 今에 一會를 組織하고 命名曰 正樂維持會라 하니 大抵 其委起於調陽俱樂部之創立이오 其結果則在於贊成員之同力이라 是以書之焉.
(번역)
악이라는 것은 노래를 조화롭게 하여 소리를 만들어 낸 도구이다. 성인이 덕음을 환발하는 마음도 관현에 얹고, 용장철인의 웅장한 기운과 깨끗한 정조와 여항 아동의 노래와 짧은 문장도 아울러 모두 악보에 올려 기록하여 그것을 치고 울려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일으켜 느끼게 하고 세상에서의 도리를 따르게 하는 일대 관건이라.
그러나 그 중에도 정음과 난성이 있으니 성하고 쇠퇴하고 흥하고 폐하는 관계가 지극히 중대하고 큰 것인 즉 이것은 어질고 뜻있는 사람이 음을 알아 바르게 고치지 아니하면 그 정음 아악을 유지하기 어려운 까닭으로 오늘에 한 모임을 지직하고 이름을 명하여 정악유지회라 하니 대체로 그 위원회가 조양구락부의 창립에서 일어났으며 그 결과는 구성권들의 찬성으로 힘을 합친데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쓸 따름이다.
이준용(李埈鎔) 박영효(朴泳孝) 윤택영(尹澤榮) 민병석(閔丙奭) 조중응(趙重應)
윤덕영(尹德榮) 유길준(俞吉濬) 이지용(李址鎔) 김종한(金宗漢) 민영찬(閔泳瓚)
박기양(朴箕陽) 김승규(金昇圭)
정악유지회 정관
1. 본회는 정악유지회라 칭함
1. 본회 목적 조양구락부를 유지할달함
1. 본회 위치
1. 본회의 회원은 조양구락부 찬성원과 기타 유지인으로 함.
1. 본회의 임원은 회장 1인 부회장 1인 이사 2인 장재 3인 서기 2인을 둠.
1. 회비는 회원이 각기 월위금으로 부담함
1. 회의는 통상 회와 임시회로 정함
1. 통상회는 매 개월 제2 토요일로 정함
1. 회의 사항은 조양구락부에 관한 일절 사무에 있음
1. 미진 조건은 추후 증삭함
구 임원 | 현 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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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 | 이름 | 직책 | 이름 |
총재 | 이준용 | 총재 | 이강운 |
부총재 | 유길준 | 부총재 | 윤덕영 |
옹무 | 한석진 | 회장 | 박영효 |
이사 | 조남승 한진구 | 부회장 | 조중응 |
회계 | 김영배 한규우 | 이사 | 박기양 김승규 |
서기 | 유종열 | 장재 | 윤치오 한석진 홍긍섭 |
평의원
홍긍섭 정 교 맹덕민 위홍섭
심의성 태규선 최경순 예종석
한만용 석진형 임진수 한용경 정 용
제8 경비
명치 44년(1912) 6월 16일에 정악유지회장 박영효와 부회장 조중응의 에 의하여 이왕직에서 악도 장려하기 위하여 하사하신 금액이 좌와 같음
1. 일시금 2천 4백 엔(円)
1. 월부금 2백앤 (명치 44년 6월부터 대정 2년 10월까지)
1. 정악유지회에서 교부한 금액이 좌와 같음
1. 일시금 1천 9백 55앤
1. 월부금 48앤 (명치 44년 6월부터 대정 2년 10월까지)
1. 찬성금 4백93앤 50전
금 입 합 1만 식 4천40앤 50전
1. 구사무소 전 기로소의 건축 및 수리비 : 9백 33앤
1. 물품 .. 및 서적 구매비 :561앤 75전
제9 찬성원 씨명
崔錫敏 嚴柱承 金然浩 鄭恒植
李濬相 吳圭桓 李秉淑 申奭永
朴弘錫 金元範 劉元杓 金相昱
玄 釆 金鎭赫 金相麟 李鍾國
金善一 韓圭復 安淳煥 金東完
閔元植 高羲誠 柳正秀 具然壽
李奉天 홍충현 오세창 안중기
백연기 윤정석 유성준 성문영
유병연 박홍익 조병택 박종식
김연학 이봉래 장 도 변국준
홍순긍 한용식 백조현 김근성
김 린 김기원 장기호 라수연
김수관 한상용 (50명)
유지가 씨명
이재완 이재극 장석주 이병식
송병준 박재빈 조동윤 심상빈
이기용 손병희 백남신 (11명)
제10 신구악 제1회 제2회 졸업생 주소 씨명
졸업시기 | 분과 | 주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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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졸업생 1912-05-03 |
조선악 | 현금과 | 한진구 | 경성 |
정 용 | 경성 | |||
양금과 | 김상순 | |||
가야금과 | 한규우 | |||
단소과 | 현동철 | |||
서양악 | 성악과 | 하대홍 | 경성 | |
안종건 | 경성 | |||
최용환 | 함남 | |||
인창섭 | 김제 | |||
한윤원 | 경기 | |||
이창호 | 경기 | |||
한진구 | ||||
민영진 | ||||
악리과 수업생 | 함화진 | 경성 | ||
김의균 | ||||
백윤기 | ||||
백종성 | 평북 | |||
한규우 | 경성 | |||
제2회 졸업생 1913년 4월 |
조선악 | 歌, 남창 | 이상준 | |
현금과 | 민병섭 | 경성 | ||
김용적 | 경성 | |||
가야금과 | 육정수 | 경성 | ||
박서양 | 경성 | |||
양금과 | 유명근 | 경성 | ||
임병찬 | 경성 | |||
김정식 | 경성 | |||
이승청 | 평북 | |||
김용면 | 경북 | |||
조종용 | 경성 | |||
치영재 | 경성 | |||
장인석 | 전북 | |||
서양악 | 풍금과 | 염광섭 | 경성 | |
사현금과 | 하대홍 | |||
성악과 | 안태협 | |||
홍영후 | ||||
이규남 | ||||
백윤기 | ||||
오건영 | ||||
제11회 현재 학생 주소 씨명 | 조선악 | 현금과 | 홍석우 서상순 최영재 김명준 이병필 김규진 | |
양금과 | 신성현 오창선 장세환 김승열 조명호 정창윤 이항식 홍혜유 이범옥 서정학 | |||
서양악 | 성악과 | 김승수 백락규 전희철 최양대 이하영 강세경 양용수 서상문 구자영 피병춘 | ||
기악과 |
홍영후 백윤기 한윤원 이경혁 박칠양 최양대 김병호 황덕준 최재덩
김승수 백락규 전희철 손순신 정영준 강세경 이재영
장진섭 조필현 구자영 구자옥 장관현 박민섭
서상문 |
1911년 설립된 조선정악전습소는 1909년 조양구락부를 시작으로 오늘날 한국정악원으로 이어오고 있는 단체로서 조선시대 줄풍류 계통의 음악이 오늘날 전승되는 데 크게 기여했던 단체이다. 그러나 민간단체였고 1920년대부터 1945년까지의 활약도 미진했기 때문에 이 단체에 대한 신문기사 몇 건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인 기록이 매우 미흡한 상태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일하게 남은 공식 기록으로서 1913년 조선정악전습소일람은 설립의 목적과 학칙, 참여한 교사, 졸업생들에 대해 일부나마 알 수 있는 기록으로서 이 분야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강혜인, 「한국 개화기 음악교육 활동의 역사적 의의」,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1990. 노동은, 「해제-조선정악전습소일람」, 『낭만음악』 겨울호(4권1호), 낭만음악사, 1991. 박은경, 「한국 최초의 민간음악교육기관 조선정악전습소 연구」, 『음악과 민족』 21, 민족음악학회, 2001. 신경숙, 「근대 초기 가곡 교습-초기 조선정악전습소를 중심으로」, 『민족문화연구』 47,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2007. 김수현, 「운초 장사훈의 근대음악사 연구성과-『여명의 동서음악』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연구』 70, 한국국악학회, 2021.
김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