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청(才人廳), 악공청(樂工廳), 공인청(工人廳), 공인방(工人房), 장악청(掌樂廳), 취고청(吹鼓廳), 신방청(神房廳), 스승청(스승廳), 풍류방(風流房)
무당과 무부(巫夫)들의 조직체
무당과 무부들이 자신들의 각종 복지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이다.
전국에 존재하는 무당과 무부들의 조직체이다. 신청은 기본적으로 무당과 무부들이 자신들의 각종 복지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이다. 조선시대에 무당과 무부의 신분이 천민이었기에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복지를 향상하고 공동체 친목을 공고히 하기 위해 신청을 조직했다. 이들은 계(契)를 조직하고 계원(契員) 자격으로 참여하는데, 계원의 자격은 세습무계의 무당과 무부로 한정했다.
신청은 주로 전라도 지방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각종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나주, 장흥, 우수영, 진도, 완도, 광주, 전주, 남원 등지에 신청이 존재했고, 이들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장악청, 악공청, 공인청, 취고청 등이었다. 경기도 화성에는 재인청, 한양 노량진에는 풍류방, 함경도 경성에는 스승청, 제주도에는 심방청 등이 존재했다.
신청은 종교적 기능을 갖는다. 신청에는 지역의 역대 무부 이름을 적은 선생안(先生案)을 모셔 놓고 매년 한식(寒食) 등의 절기를 맞아 계원들이 모여 선생들을 위한 제사를 올린다. 신청은 가족공동체의 성격을 갖는다. 세습무계는 대부분 자신들의 집안끼리 결혼하는 족내혼(族內婚)으로 무업을 전승하기에 신청은 가족공동체 조직이기도 하다. 신청은 엄격한 규약을 갖추고 조직을 운영했다. 계원의 길흉사에 상부상조하고, 규약을 위반한 자에게는 벌을 주고, 예능이 우수하거나 효행을 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었다. 또한 신청은 예술 교육기관으로 기능했다. 경기도 재인청의 계원 자격으로 무악을 연주하는 화랑,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등의 곡예를 하면서도 무악을 연주하는 재인, 가무 예능인이며 무악을 연주하는 광대를 언급한 것은 신청에서 각종 예술 교육을 시켰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청은 계원들의 회비로 운영되고 임원을 두어 관리했다. 전라도 나주 신청의 경우,
무부계는 읍내 11호, 읍외 60호의 성년 무부로 구성되었으며 각 집마다 1년에 22전을 갹출하여 기본금을 만들고 그 이자로 신청을 유지하는 비용과 선생안 제비로 충당했다. 기혼자는 반드시 입회할 의무가 있었고, 입회금은 40전이었다. 역원으로는 상석(上座), 1수석(一首席), 삼수석(三首席), 일대방(一大房), 차대방(次大房), 삼대방(三大房), 청수(廳首), 별공원(別公員), 공원(公員), 장무(掌務) 등이 있었고, 계장인 상석(上席), 간사격인 청수, 서무회계격인 공원 및 장무 외는 모두 이름뿐이었다.
신청은 일제강점기 들어 더 이상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주 신청의 경우에는 1930년대에 도단집으로 개축되어 기생들의 음악 학습소가 되었다. 1920년대에 일제가 무속을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인가를 주어 결성된 무당 조직체에 흡수되기도 했다. 최근 전통 예능 공간으로서의 신청이 재인식되면서 신청 문화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전국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주시의 경우 신청을 복원하여 각종 공연 및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화성 재인청의 전통을 복원하려는 (사) 화성재인청보존회는 화성 재인청에 전승되었던 각종 음악 및 무용을 활발하게 공연하고 있다. 통영 신청에서 전승되던 음악을 통영 삼현육각도 각종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신청은 무당 및 무부의 공동체 조직으로서, 소리ㆍ음악ㆍ춤ㆍ놀이 등의 각종 전통공연예술을 보존하여 오늘날까지 전승이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태곤, 『한국무속연구』, 집문당, 1985. 赤松智城ㆍ 秋葉隆ㆍ심우성 옮김, 『조선무속의 연구』, 동문선, 1991. 조흥윤, 『한국의 샤머니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秋葉隆ㆍ최길성 역, 『조선문속의 현지연구』, 계명대학교출판부, 1987. 이경엽, 「재인청의 역사적 전개 양상」, 『남도민속연구』 45, 남도민속학회, 2022.
이용식(李庸植)